영웅들 1부

내 안의 링에 올려 세운 이름들

by 캔디의 여백

이 글은 흩어져 있던 글을 브런치북의 흐름 안으로 다시 데려온 재수록 글입니다.


구원은 늘, 누군가를 영웅으로 착각하게 했다.
​내 유년의 링 위에는 늘 세 명의 거인이 서 있었다.

역사라는 거대한 책장에서 내가 가장 흠모하던 이들을 불러내 상상의 링 위에 올려세우는 것, 그것이 어린 날 나의 가장 치열한 호기심이었다.

누가 더 강한지, 누가 마지막까지 살아 남을지 나는 그 결말이 보고 싶었다.
그때 내게 영웅은 숭배가 아니라 실험이었다.
내 안의 혼란을 남의 승패로 정돈해 보려는, 나만의 은밀한 시도였다.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영웅을 갈망한다.
어쩌면 나도 그 갈망의 한복판에 있었던 셈이다.


​칼의 시대: 번개와 겨울, 그리고 역사의 무게

​내 유년의 링에 가장 먼저 올라온 이들은 '칼의 영웅들'이었다.

알렉산더 대왕과 칭기즈 칸, 그리고 광개토대왕.

​알렉산더는 '번개' 같은 사내였다. 젊음과 속도, 그 찰나의 정점에 모든 것을 걸고 세상의 가장자리까지 내달렸다.

그는 정복을 통해 자기 내면에서 들끓는 야망을 증명해 보였다.

반면 칭기즈 칸은 '겨울' 같은 사내였다. 개인의 카리스마를 넘어 시스템과 공포, 질서라는 거대한 군세로 세상을 재편했다.



​둘이 맞붙는다면 어떨까.

알렉산더는 초반에 눈부시게 타오를 것이다. 칼날은 눈부신 섬광을 내뿜으며 전장을 찌르겠지만, 전쟁은 한 번의 빛남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칼날은 마모되고 육신은 지치기 마련이다.

반면 겨울은 늦게 오지만, 한 번 오면 결코 물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늘 칭기즈 칸의 손을 들어주곤 했다. 그 지독한 인내와 버팀이 최후의 승자라는 이름에 더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다음 상대인 광개토대왕은 '성벽' 같은 영웅이었다. 그는 단순히 영토를 넓힌 무사가 아니라, 역사의 무게를 등에 업고 땅 위에 경계를 다시 세운 왕이었다.

칭기즈 칸이 대륙을 덮는 겨울이라면, 광개토대왕은 그 겨울 앞에서도 내 백성을 무너지지 않게 지켜주는 든든한 방벽이었다.

​내가 이 대결을 지켜보며 깨달은 것이 있다. 나는 단순히 승패를 확인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내 안의 혼란을 누군가의 승리로 명쾌하게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링 위에서만큼은 내가 제갈량이 되어 세상이라는 판을 읽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주먹의 시대: 곁에 선 신화들

​시간이 흐르자 영웅은 광활한 대륙을 떠나 좀 더 내밀한 공간으로 들어왔다.

칼이 아득한 기록이었다면, 주먹은 마치 옆방에서 들려오는 거친 숨결처럼 가깝고 투박했다.

역사의 무게가 너무 거대해 감당하기 버거워질 때쯤, 영웅들은 내 손이 닿을 듯한 거리로 내려왔다.
​나는 마음의 링 위에 김두한과 시라소니를 올렸다. 김두한은 '산'이었다.

의리와 낭만으로 땅에 뿌리 내린 거대한 바위 같았다.

반면 시라소니는 '바람'이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야성으로 링의 공기를 단숨에 바꿔버리는 존재였다.



둘이 붙으면 어떨까.

김두한은 묵직하게 버티며 상대의 무게를 받아내려 할 것이고, 시라소니는 쉼 없이 몰아치며 빈틈을 파고들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가 더 강한가가 아니었다.
‘누가 마지막까지 서 있는가.’
주먹의 세계에서도 내 질문은 변함이 없었다.
실제로 맞붙을 뻔했다는 최배달과 역도산을 링 위에 올렸다.

최배달이라는 이름 역시 내게는 강한 사람보다 '끝까지 버틴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 이름에는 마지막까지 무너지지 않은 자의 진한 땀 냄새가 배어 있다.

그들의 대결은 기술의 싸움이 아니라, 누가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내느냐는 '버팀의 싸움'이었을 것이다.
나는 누가 한 방을 더 잘 때리느냐가 아니라, 누가 마지막까지 서있느냐는 질문에 답을 얻고 싶었다.



​흔들릴 때 붙잡았던 손잡이, 이소룡

​질문은 영화 속 이소룡에게로 이어졌다. <용쟁호투> 속에서 쌍절곤이 바람을 가르며 돌아갈 때마다, 어지러운 세상이 잠깐이나마 정돈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내 고단한 현실을 대신 이겨준 것은 아니었지만, 그를 탐구하는 동안만큼은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영웅은 내 흔들릴 때 붙잡았던 ‘손잡이’ 같은 존재였다.
이소룡은 누군가를 굴복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가끔 힘들 때 붙들어 주는 버팀목이었다.

나는 그걸 영웅이라고 부르며 버텼다.

내가 찾았던 최후의 승자는 결국, 오늘을 무너지지 않게 하는 힘 그 자체였다.

​그 뒤로 영웅은 더 이상 인간의 체급에 머물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질문의 과녁이 옮겨가기 시작했다.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내가 그 승패에 무엇을 투사하고 있느냐는 쪽으로.

​영웅을 찾는 마음이 커질수록 그들은 더 크고 더 완벽해야 했다.
하지만 결점 없는 완벽함은 본래 인간의 옷이 아니었다. 그렇게 세워진 영웅은 더 이상 나를 다독이는 구원이 아니었다.

어느샌가 그들은 나의 초라함을 판결하는 서늘한 심판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때 내가 원한건 승자가 아니라, 버티게 해줄 손잡이였다.
구원은 늘 멀리 있지 않았다.

내 유년의 링 위에서, 이름들로 위장해 서있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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