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일상과 숨쉬는 여백

장면과 사유로 숨을 고르는 기록

by 캔디의 여백

저는 오래전부터 거창한 사건보다 작은 장면을 더 오래 기억해 왔습니다.

비 오는 날 비닐우산 끝에서 떨어지던 물소리,
문방구 앞에서 동전 몇 개를 꼭 쥐고 서 있던 어린 손의 온도,
해 질 무렵 골목에서 딱지먹기와 팽이치기로 이어지던 비장한 승부 같은 것들입니다.

지나고 보면 사소한 풍경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장면들이 마음에 오래 남아 저를 붙들었습니다.

사는 일은 늘 설명으로만 버텨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날은 한 문장의 위로보다,
한 장면의 기억이 저를 더 오래 살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장면들을 제 삶의 여백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바쁘고 거친 날들 사이에서 잠시 숨을 고르게 해 주는 작은 틈,
무너지지 않게 버티게 해 주는 작은 자리 말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추억만 적는 곳은 아닙니다.

저는 때로 영화와 드라마, 영웅과 악당, 스크린 속 인물들을 오래 바라보며 현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허구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 과장된 얼굴들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
희망과 오해,
구원에 대한 갈증이 더 또렷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장면 앞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현실을 살아낼 숨을 고르곤 합니다.

이곳의 글들은 네 갈래로 흐르게 될 것입니다.

추억은 지나간 숨입니다.
사유는 생각의 숨입니다.
악당들은 분노를 내보내는 숨입니다.
일상은 오늘을 견디게 하는 숨입니다.

이 네 갈래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오래된 골목의 냄새도,
한 편의 영화에서 건져 올린 생각도,
도무지 좋게 말하고 싶지 않은 악한 얼굴도,
아무 일 아닌 듯 지나간 하루의 작은 장면도
결국은 제가 살아오며 붙들었던 숨의 자리입니다.

이 글들은 누구의 말을 대신 정리한 글이 아닙니다.
제가 살아오며 붙들었던 장면과 생각의 기록입니다.

잘 보이기 위해 꾸미기보다,
제가 본 만큼만 정직하게 쓰겠습니다.
때로는 투박하고,
때로는 서툴더라도
제 문장을 너무 번지르르하게 만들지는 않겠습니다.

어떤 글은 골목의 냄새를 데려올 것입니다.
어떤 글은 한 편의 영화에서 시작해 사람의 마음을 오래 비춰볼 것입니다.
어떤 글은 화가 나서 쓰게 될 것이고,
어떤 글은 결론보다 장면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믿습니다.

삶이 원래 늘 그렇게,
설명보다 여운으로 남는 날이 더 많았으니까요.

이곳에서는 크게 울리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대신 조용히,
그러나 오래 남았으면 합니다.

일상은 때로 우리를 지치게 하지만,
결국 다시 살게 하는 것도 일상입니다.

오래된 기억부터 오늘의 사소한 순간까지,
너무 꾸미지 않은 문장으로
이 여백에 천천히 모아보겠습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