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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럭 Jul 09. 2024

네가 뭘 했다고 힘들어.

아무것도 안 했는데, 매사가 지치고 힘들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매사가 지치고 너무 힘들어요. 한 것도 없이 힘들기만 한 저 자신이 한심해요"

"뭔가를 했든 안 했든 힘들다는 신호는 진짜일 거예요. 스스로의 감정을 좀 더 돌봐줄 필요가 있습니다"


진료실에 들어갈 때마다 힘든 점을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솔직히 답하면 비슷한 대화가 오간다.

대학원에 들어온 후 나를 가장 힘들게 한건, 하는 일도 없이 힘들기만 한 나 자신이었다.

물론 한 번도 내가 왜 힘든지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나에게 나는 늘 '하는 일도 없이' 힘들어하는 한심한 백수였다.

선생님의 답을 들을 때마다

'흥, 아니 뭘 해야 힘들다는 걸 받아들이지.

매일 공부도 안 하고 빈둥거리면서 뭐가 힘들다는 거야?'라며 속으로 빈정거렸다.

(마치 제 3자가 되어 내게 말하는 것처럼!)

그도 그럴 것이 내 일기를 쭉 훑어보면 마지막 문장은 대부분

"네가 뭘 했다고 힘들어", "힘들 자격도 없어. 제발 정신 차리자" 류의 질책이다.


그랬던 나였지만 최근 들어 내가 힘든 진짜 이유를 찾아보게 되었다.

선생님 말씀처럼 스스로의 감정을 돌봐주기 위해서라는 서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 도태될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 무기력을 해치우기 위해서는 원인을 찾아 타파해야 한다는 생각이 왈칵 들이닥쳤다.


당연히 어려웠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이유가 없는 무기력이라 생각해 왔으니 그 원인을 찾는 게 얼마나 어렵겠는가.

지금도 내가 찾은 이유가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구색 맞추기용일지도)


나는 늘 방향을 정하지 않고 무작정 달리기만 했다.

대학 때부터 전공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 때까지만, 취업할 때까지만, 대학원 졸업 때까지만,

하며 계속 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멈춰 서서 내게 맞는 방향을 찾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저 멈추면 뒤쳐진다는 생각에 (덕분에 지금은 누구보다 뒤처져있지만)

꾸역꾸역 한 걸음씩 내딛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이길로 멀리 왔다.

둘러봐도 주변에 다른 길 보이지않고, 돌아가기엔 까마득하다.

계속 걸어서 온 곳이 결국 내가 원하지 않는 길의 중간이라니.

맥이 빠질 만도 하다.


게다가 조금만 더 버티자며 끌고 온 몸뚱이가 이젠 서있기도 힘들 정도로 아프기 시작했다.

가벼운 감기였을 때 쉬면서 치료했으면 됐을 것을,

되지도 않는 아집을 부리다가 폐렴으로 번져버린 꼴이다.

차라리 진작 쉬면서 방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봤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이미 몸과 마음이 망가졌으니 작은 일도 힘겨울 수밖에 없다.

이게 내 무기력의 진짜 원인이 아닐까?

어쩌면 다 그냥 핑계이고 합리화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습관 같은 자기혐오가 어디 가겠는가)

하지만 이제 나를 조금은 너그럽게 봐줄 수 있지 않을까.

의식적으로라도 그렇게 봐주려고 노력해 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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