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창 시절 모범생이었다.
반마다 한 명씩 있는, 선생님들의 예쁨을 독차지하던 그런 모범생.
20살 이전까지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았던 경험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나는 늘 최선을 다해 공부했고, 좋은 성적을 유지하며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27살이 된 지금, 나는 백수다.
27살은 참 이상한 나이다. 20대 초반과는 다른 묵직한 책임감과 의무를 지니고 있다.
누군가는 아직 20대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이미 적은 나이가 아니라고 지금도 늦었다며 다그친다.
취업시장에서 여러 번 좌절을 겪고, 점점 뒤처지는 내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해 교육대학원으로 도망쳤다.
내가 다니는 대학원은 주 2-3회 저녁 수업이기 때문에 직장에 다니는 동기들도 많다.
그렇다 보니 대학원은 학생이라고 하기에는 얄팍한 핑계였다.
이런 허울뿐인 학생이라는 타이틀 뒤에 숨어서 백수가 아닌 척해봐야 백수는 백수였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높은 학점을 유지했고, 남들이 딴다는 자격증은 따라따고 공모전이나 대외활동도 참여했다.
(정말 죽어라 했냐고 묻는 양심의 소리는 잠시 못 들은 걸로 하자)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스펙을 쌓기 위해 했던 활동들이 실질적인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나의 가치는 이력서 한 장으로 판단됐다.
취업실패는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저 열심히만 하면 예쁨 받고 결과도 좋았던 학창 시절과 20살 이후의 삶은 달랐다.
나의 무능을 깨닫게 되었고, 사회에서 낙오자가 된 기분이었다.
늘 걷던 꽃길에서 한순간에 진흙탕으로 밀려난 것 같았다.
이 우울한 심정을 130만의 청년 취준생들과 나누며 공감이라도 얻어볼까 하고 자칭 백수가 썼다는 책을 읽어보면 일찍 취업을 했다가 그만둔 케이스가 대다수였다.
(그들의 고통이 나보다 못하다는 뜻은 아니다. 각자의 고민과 고통의 원천이 다를 뿐이다)
나같이 직장생활이 전무한, 순수한 '찐'백수(취준생)의 이야기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백수가 자랑이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아니지만...)
물론 이해가 간다. 내 신세에 대한 글을 쓰느니 차라리 스펙 하나 더 쌓는 게 이득인 시기니까.
그리고 굳이 남기고 싶지 않은 어두운 시기일 테니까.
그래서 내가 한번 끄적여볼까 한다.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나지만 그래도 내가 쓴 글이 단 한 명에게라도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을 전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누군가의 공감과 토닥임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