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망감(hopelessness)

희망이 없음

by 연월

1. 나에게 있어서 과거의 경험은 미래를 위한 좋은 준비가 되었다.

2. 나는 미래가 지금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3. 나는 미래에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4.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마 소용이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마도 그것을 갖지 못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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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질문들은 무망감 검사의 일부이다. 물론 간이검사이므로 정확한 검사는 병원이나 상담기관에서 해보는 것이 좋다. 저 질문들에 대한 나의 답은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그렇다 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해온 모든 일들은 지금의 내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당연히 미래는 지금보다 행복할 수가 없고 좋은 일이 많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젠 미래에 내가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상상조차도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무망감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책이었다. 무망감이 학습된 무기력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때는 무망감이라는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와닿지 않았다. 그저 기대가 없는 상태라면 그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무망감에 잠식한 후로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절절하게 느끼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일말의 희망과 기대가 있었다. 현실을 비관하고 좌절하면서도 어렴풋하게 졸업 후, 어쩌면 졸업 전에라도 취업을 할 수 있고 그러면 지금 느끼는 자기혐오와 절망감은 나아지리라는 희망. 그동안 내가 쌓아온 경험들이 분명 도움이 되는 순간들이 있으리라는 기대.


그러나 지금은 정말 단 한 톨의 희망도 남아있지 않다. 말 그대로 '무망'이라는 이름이 모든 걸 나타내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해도 지금까지 그래왔듯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거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무망감은 아무 근거가 없는 감정은 아니기에 더 떨쳐내기가 힘들다. 내 무망감의 근거는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 그 자체이다. 몇 가지 정리해 보자면, 첫째 내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들은 지금의 내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즉, 여태까지 쓸데없는 일들만 하면서 7년이 넘는 세월을 낭비해 온 것이다. 7년의 공백기가 생긴 거나 마찬가지다. 내가 회사래도 이런 말도 안 되는 공백기가 있는 지원자는 뽑지 않을 것이다. 둘째, 지난 세월 동안 쓸데없는 일만 하면서 얼레벌레 살았는데, 사람이 갑자기 변할 리가 없다. 결국 앞으로도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며 제자리를 맴돌 것이다. 당연히 나아질 수가 없다. 셋째, 앞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성도 없다. 그려나가고 싶은 미래도 없다. 차라리 목표가 있다면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라도 할 텐데 그조차 없으니 당연히 방황할 수밖에.


물론 여기에 반박하고자 할 수 있다. 목표 만들면 되지! 앞으로 변하면 되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노력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삶의 목표를 정하기 위해 대학 때부터 교육대학원 진학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고 도전이 있었다. 그럼에도 뚜렷한 목표를 가져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네가 미래에 대한 말을 하는 걸 못 들어본 것 같아. 그래서 가끔은 미래에 없을 사람 같아 보여서 걱정될 때도 있어" 실제로 한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었다. 그럴 리가 있냐고 웃으며 넘겼지만 순간적으로 속을 들킨 것 같아 많이 당황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또 앞으로 변하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것도 의지박약일 수도 있다. 이 부분을 변명할 생각은 없다. 나름의 최선이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굼벵이의 뭉그적거림이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의지가 생길 수도 있다는 기대보다 생기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이 확신은 내가 변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으로 이어지고, 다시 미래도 지금과 다를 바 없다는 확신이 된다.


무망감의 무서운 점은 내일이 두려워지고 무가치해진다는 점이다. 하루하루가 그저 버텨내는 시간이 되고, 미래가 사라진다고 해도 아쉽지 않다. 우울하더라도 미래에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있다면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그날을 위해 살아갈 수가 있다. 하지만 미래에도 지금처럼 산다고 생각하면 모든 미련이 사라진다. 무망감을 떨쳐내는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당장은 그저 아닐 거라고, 모두 기우일 뿐이라고 다독이며 불안을 잠재울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작은 일이라도 찾아서 하려고 노력한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니까. 뭐라도 해야 작은 변화라도 생길 것이고, 그래야 미래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싹틀 수 있을 테니까. 오늘도 꿈틀대며 하루를 살아낸다.


물론 나에게는 분명한 삶의 이유와 미련이 있으니 버틸 수 있다. 못 버틸 것 같았다면 애초에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찝찝한 감정을 갖지는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