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탐방기(1)
"혼자 우울하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전지현 작가님의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는 책을 읽은 후 나도 언젠가 다녀본 병원에 대한 글을 적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는 목적은 진짜 특정 병원 후기라기보다는 병원마다 이렇게 다양한 의사와 진단, 치료방법이 있으니 하나의 병원만을 맹신하기보다는 각자에 맞는 병원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첫 번째 병원>
신경정신과를 처음 찾아간 건 작년 여름이었다. 집 근처에는 마땅한 병원이 없어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병원에 찾아갔다. 개업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다른 병원에 비해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아늑해 보였고, 무엇보다 뇌파검사를 할 수 있다고 하여 선택했다. 당시에 병원을 가고자 결심한 이유가 바닥을 친 집중력과 주의력 때문에 성인 ADHD를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 감정에 대한 질환은 다른 질병처럼 혈액검사나 초음파 등 검사를 통한 명확한 증상이나 기준이 없기 때문에 진단이 애매하다. 검사도 다 자기 보고식이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결과를 조작할 수 있다. 별것도 아닌데 괜히 엄살부리면서 실제보다 더 안 좋게 답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나마 객관적이라고 생각한 뇌파검사를 통해 결과를 확인받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초진예약은 전화한 날로부터 1주일 후였다.
처음 가본 정신과는 생각보다 평범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화이트 베이지톤 인테리어와 잔잔한 클래식 음악 덕분에 조용한 카페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대기석에는 내 또래 사람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연령대의 평범한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정신과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선입견이 살짝 무너지는 것 같았다. 간호사가 건네준 태블릿 pc로 여러 심리검사를 한 후 다시 기다리다가 의사를 만나기 위해 들어갔다. 가장 먼저 묻는 말은 '어떻게 오게 됐냐'는 것이었다. 그냥 무기력하고 불안한 증상들에 대해 간단히 얘기하고, 주의력과 집중력이 너무 심하게 떨어진다며 ADHD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정도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의사는 뇌파검사를 제안했고 마침 원하고 있었던지라 바로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뇌파검사는 머리에 젤을 바르고 전선을 외계인처럼 덕지덕지 붙인 채로 10분 정도 멍하니 있으면 된다. 문제는 젤 때문에 머리가 엄청나게 떡진다는 것이다. (혹시 뇌파검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모자를 꼭 챙겨가는 것이 좋다) 나는 모자를 따로 챙겨가지 않았기에 그 상태 그대로 집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날 검사시간을 제외한 초진상담은 10분 남짓이었다.
그리고 이틀 후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을 다시 찾았다. 검사 결과 우울증은 아닌데 뇌가 생각하길 거부한다는 애매모호한 진단과 함께 약간의 성인 ADHD '끼'가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ADHD가 심하진 않아서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는데 공부나 집중을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면 불편할 수도 있을 정도라고 했다. 그리고 그럼 우울증은 아니냐는 나의 질문에 의사는 '실제로는 우울이 없는데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우울증은 아니니 우울이나 불안에 대한 약은 안 먹어도 되고 대신 집중력과 주의력을 높이는 약을 처방해 준다고 했다. 그렇게 10분도 걸리지 않은 두 번째 상담이 끝나고 첫 약을 처방받아왔다. 오는 길에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우울증이 아니라는 사실에 혼자 오버한 것 같아 부끄러웠다. 또한 정신과 약에 대한 두려움과 낯섦, 그리고 어쩌면 집중력이 좋아질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가 혼재되어 있었다.
그날 밤 처음 약을 먹었고 문제가 생겼다. 약을 먹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부터 속이 안 좋기 시작하여 밤새 울렁거림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급기야 아침에는 심한 어지럼증을 느끼며 테이블 쪽으로 쓰러졌다. 넘어지면서 모서리에 턱을 찍혀 깊은 상처가 났고 쇄골부근에는 손바닥만 한 멍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빈혈 같다며 내과로 날 끌고 갔고 정신과 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내과 진료를 받았다. 물론 열이나 별다른 증상이 없으니 순간적인 빈혈이었을 수 있다는 진단만 듣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울렁거림이 가시질 않아 저녁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고, 그 후로 한 달간은 갈비뼈가 아파서 크게 숨 쉬거나 웃지도 못했다. 병원에 전화를 걸어 증상을 얘기하자 약 부작용인 것 같다며 다른 약으로 바꿔줄 테니 내원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병원에 모든 신뢰를 잃어버린 터라 다시 내원하는 일은 없었다. 약은 혹시 몰라 한 봉지만 남겨두고 다 버려버렸다. 그렇게 나의 첫 정신과 방문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