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닌지!
정신장애인공동생활가정
정신재활시설 중 공동생활가정은 정신질환으로 가족이 돌볼 수 없는 경우나 혼자서 생활할 수 없는 경우에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공동생활 가정이다. 또한 자립을 위한 중간 단계시설로서 최소 3명, 많게는 4명이 함께 생활한다.
소박하지만 그들의 일상을 나누며 정신장애인의 이해와 시설의 편견을 해소하고자 글쓰기에 영 자신이 없는 나는 큰 용기를 내어본다. 우리 공동생활가정은 미영 씨, 유진 씨, 다혜 씨가 산다.
퇴근 후 9시에 유진 씨한테 전화가 왔다.
'불안해요. 가슴이 쥐워 짜듯이 아파요'라며
고통을 호소해 온다.
다급히 옷을 챙겨 입고 집에 가보니 누운 상태로 가슴을 움켜쥐고 있다.
대화로 해결될 일 아닌 것 같아, 119를 불러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복용하는 정신과 약물을 선생님에게 말하고 신체적 이상이 없는지 일단 검사를 하였다.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급성 불안으로 약을 처방받았다.
3시간 정도 안정을 취한 후 택시를 타고 집으로 귀가했다.
큰일이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피곤함이 몰려왔다.
낮에 집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유진 씨에게 물었다.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그녀는 '옆에 앉은친구와 싸웠어요. 나에게 이유 없이 화를 냈어요'.
'갑자기 잠자리에서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가슴에 통증이 왔어요'라고 말을 한다. 평상시 그녀는 자기표현이 거의 없다. 특히 감정표현이 서툰 그녀이다. 기분이 상하거나 때, 속상할 때 언제든 말을 하도록 다시 한번 언급하고, 그녀가 왜 힘들었는지 물어보고 지지하고 공감해 줬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다.
공동생활 가정에서는 이런 일들이 다반사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위급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전화를 하는 그녀들, 특히 미영 씨는 그 빈도가 심하다.
그녀들이 왜 전화를 해야 하는지 알고 있음에도 잦은 전화는 혹여 큰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전화받기 전 상당한 불안감을 갖는다.
어느 날 친구에게 이 직업의 힘듦을 호소하니 ‘원래 힘든 일을 선택한 것 아냐, 선택해 놓고 무슨 불만이야’라며 핀잔을 준다. 그녀로부터 공감받지 못해 서운했던 생각이 난다.
회의시간에 미영 씨, 유진 씨, 다혜 씨에게 용기를 내어 말을 했다.
'위급상황이 아니면 늦은 저녁에 전화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아주 조심스럽게 표현했다.
위급상황의 구체적인 내용을 말해주고 그 이외의 일들은 출근 후 얘기해 주기를 간곡히 부탁했다. 수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전화를 한다.
이러한 접근이 괜찮은 건지 깊은 고민이 되었지만 회의 시간에 ‘퇴근 후 전화받는 것은 시간 외의 근무이다. 쉬는 시간이다. 천 원씩 선생님에게 줬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들은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는다. 그 돈은 식탁 위에 있는 조그마한 항아리에 넣기로 했다.
효과가 있었다. 횟수가 줄었다.
그런데 또 퇴근 후, 늦은 저녁, 벨이 울린다. ‘천 원 항아리에 넣었어요’라며 전화한 이유를 말한다. ‘가방에 분명 돈을 넣었는데 없어졌어요’라며···
본인에게는 다급하고 절실한 상황으로 매우 불안하기에 전화한 것이다.
그러나 그 불안으로 인해 상대에게 힘듦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고. 스스로 그 불안을 지연시키고 견딜 수 있는 내성을 키워줘야 될 듯 싶었다.
나의 욕구해결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욕구도 배려하는 것도 이곳 공동생활가정에서 배워야 할 것들이다.
항아리에 삼천 원이 들어있다. 좀 더 차면 그녀들과 간식을 사 먹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