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가 정신질환에 좋은 이유
정신장애인공동생활가정
정신재활시설 중 공동생활가정은 정신질환으로 가족이 돌볼 수 없는 경우나 혼자서 생활할 수 없는 경우에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공동생활 가정이다. 또한 자립을 위한 중간 단계시설로서 최소 3명, 많게는 4명이 함께 생활한다.
소박하지만 그들의 일상을 나누며 정신장애인의 이해와 시설의 편견을 해소하고자 글쓰기에 영 자신이 없는 나는 큰 용기를 내어본다. 우리 공동생활가정은 미영 씨, 유진 씨, 다혜 씨가 산다.
평상시 뭔가를 노트에 적는 것을 좋아하는 다혜 씨이다. 또한 크고 작은 노트를 사는 것을 좋아한다. 노트에 노래가사, 자기만의 알 수 있는 내용에 글들, 가족, 지인들 이름 등을 기록한다. 또한 다양한 여자 얼굴을 스케치북에 그려 놓는다. 지인들에게 자신이 기록한 노트를 선물을 한다. 이런 장점을 갖고 있는 다혜 씨에게 필사를 해보는 것이 어떤지 제안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나 이것 하면 선생님 시켜주는 것도 아닌데... '라며 주춤하다가 '한 번 시도해 보겠다'라고 한다.
'생각하는 방'이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책상과 의자, 책이 비치되어 있다. 미영 씨, 유진 씨는 글쓰기에 관심이 없다. 오직 그 방은 다혜 씨만의 공부방이다. 용돈으로 구입한 색깔색깔의 볼펜들이 통에 빼곡히 채워있고, 크고 작은 노트 등이 스탠등 옆에 나란히 놓여 있다.
우연히 얻게 된 동화책들을 그녀가 있는 방, 책꽂이에 꽂아 놓았다. 다혜 씨에게 본인이 원하는 책을 고르도록 하자 '혼자가 아니여요'라는 제목의 책을 뽑아 들었다. 이틀 만에 동화책을 필사 후 어떤 이야기인지가 궁금해 물어보았다. 다혜 씨는 놀라울 정도로 상대가 이해하기 쉽게 요약을 해서 나에게 말해준다. 평상시 지리멸렬한 말을 하곤 할 때가 있었는데, 오늘의 필사에 대한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표현하여 매우 놀라웠다. 그녀의 표정도 밝아보였고 평상시는 힘이 없고 낮은 톤의 소리였는데, 자신감 있는 목소리이다.
책은 내가 가져왔지만, 읽지 않는 동화이다. 오늘 필사한 내용은 애플트리의 "난 혼자가 아니야"라는 책제목이다.
필사의 장점은 집중력을 갖게하고, 하루의 일과를 나름 의미 있게 보내게 한다. 책의 내용을 이해하게 되며 논리적 사고 향상에 도움을 준다. 또 상대에게 전달해 줌으로써 표현력에 도움이 된다.
경험에 따른 '필사'의 효과이다. 필사 시 소리 내어 읽으면서 적도록 하는 것이 관건인 듯싶다. 여하튼 다혜 씨의 다른 면모, 장점을 발견하는 기회였다. 독서를 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정성 들여 쓰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은 것임을 다시 한번 알게 된 기회였다.
나도 다혜 씨와 함께 전현수 박사의 '불교정신치료 강의'를 필사하고 있다. 컴퓨터로 욕심내지 않고 하루 한 장 정도 써 내려가고 있다. 12월 말에 필사가 완료되기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