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 먹도록, 싸우면서 크는 중

— 유난히 조용했던 한 주.

by 강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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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이상하게 조용했다.

포돌이와 싸우지 않아서 그런가?


왜였을까.

돌아보니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가 안 만났기 때문이었다.



이번 주는 프로젝트 마무리 기간.

야근에, 주말 출근에,

일요일 저녁까지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때, 알림 하나가 떴다.

[포돌이 차량 입차 알림]


그리고 포돌이가 나타났다.

(포돌) “밥은 먹고 해야지.”


예전의 워커홀릭 나였다면

“왜 말도 없이 와?”

“나 지금 일하는 중인데?”

그런 말부터 나왔을 거다.


그런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

이거 마무리하고 나가자.”


그리고 진짜, 나갔다.

같이 밥을 먹었다.

그게 다였다.

근데 왠지, 좋더라.



나는 원래,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사람을

무례하다고 느꼈다.


내 일정, 내 흐름, 내 공간.

누가 방해하는 게 싫었다.

그게 연애 중일지라도.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는 그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불쑥, 말없이, 자기 방식대로.

그게 포돌이의 최선이다.



지난주 우리 대화엔 이렇게 남아 있었다.


(포돌) “일요일에 갈게.”

“오려고? 안 와도 돼. 그냥 쉬어.”

(포돌) “그래.”


그리고 그는, 결국 왔다.


“다음 주엔 여유 생길 거야.

금토 양평 가자. 물총 챙기고. ㅋㅋ”

(포돌) “그래.”


그래.

짧은 한 마디.

가끔은 ‘사랑해’보다

더 단단하게 들릴 때가 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양평도 아니고

물총도 없고,

포돌이도 없이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는 다른 약속을 잡았고,

‘물총’이라는 단어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진짜 기억을 못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별거 아닌 말로 생각한 걸까.


뭐든 상관없다.

결론은 무심함.

우리 싸움은 늘 거기서 시작됐다.


그는 아마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걸 끝까지 받아들이진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랑은 포기에서 시작된다고.


하지만 이 나이 먹도록,

포기가 안 되는 나는…


아직 미성숙한 걸까?

아니면

포기는 관계의 끝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이번 주 우리가 안 싸운 이유는

그저, ‘안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래.

안 만나면 안 싸운다.

만나면 다시, 또 싸우겠지.

이상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어쩌면 싸우면서 큰다는 말은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닐지도.


이 나이 먹도록, 우리는

싸우면서 크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이너마더의 회피형 연애 꿀팁


경윤아,

포돌이가 “그래”라고 해놓고

왜 기억 못 하냐고?


그때는 그냥 대화의 흐름에 맞춰

말한 것뿐이야.

의미를 붙인 쪽은 너였고.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이렇게 하자.


약속은 말로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날짜는 그 자리에서 캘린더에 넣게 하고

기대는 애초에 절반만 하자


회피형 연애는

로맨스보다 매뉴얼이 더 중요해.

감정은 잊어도,

일정은 까먹지 않게 해야 하거든.



그나저나,

포돌이가 더 이상 ISTP가 아니니

연재제목 이젠 바꿔야 하는데..


이 나이 먹도록, 시리즈 한번 가볼까요?

《이 나이 먹도록, 회피형 연애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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