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없던 여행, 그리고 계획 없던 MBTI 검사.
포돌이가 갑자기 물었다.
“오징어회 먹으러 갈까? “
“그래.”
이젠
언제 출발할지, 어디로 갈지
굳이 묻지 않는다.
계획이 별 의미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게 됐고,
계획 없이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사실
포돌이가 전날 늦게 퇴근했으니
‘피곤하다고 안 간다 하겠지?’ 싶었다.
그런데 어라, 간단다.
강릉 가는 차 안에서 물었다.
“사실 안 가고 싶었지?”
(끄덕끄덕)
“근데 왜 안 간다 안 했어? 내가 또 난리 칠까 봐?”
(끄덕끄덕)
또 웃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MBTI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사실은 출발 전, 이미 후배한테 신청해 놨다.
요즘 자꾸 궁금했으니까.
나는 그동안
포돌이는 전형적인 ISTP라고 믿어왔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사람.
계획보다 즉흥에 더 가까운 사람.
근데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포돌이는 단순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
어딘가 더 복잡해 보였다.
내가 모르는 마음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
나는 내가 정말 ENTJ라면
포돌이랑 이렇게 정적으로
오래(?) 만날 수 있지 못할 거 같았다.
그래서 한 번쯤은,
확인해보고 싶었다.
포돌이는 mbti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순순히 해 줄리는 없었다.
그래도 대화 중에 틈틈이 물어가며
144문항을 다 채워서 보냈다.
그리고 결과 메일이 도착했다.
열어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두둥!
포돌이는 ISTP가 아니었다.
나도 ENTJ가 아니었다.
포돌이는 INTP였고,
나는 INTJ였다.
나는 지금까지
포돌이를 ISTP라고 믿고
즉흥적이고 단순하다고만 해석했다.
근데 알고 보니 사실
우린 둘 다 생각이 많았다.
다만 포돌이는 결정이 느렸고
흘러가도록 두었던 것이다.
같은 INT라서 많이 닮았고,
P와 J라서 달랐던 거였구나.
⸻
언제가 제일 좋았냐고 물었다.
“울산바위 보였던 카페.”
“나도.”
계획도 없었고,
예상도 없었고,
아무 말도 없었는데
그 순간이 그냥 좋았다.
우린 생각은 많은데
말은 적어서,
그 공백 덕분에
가끔 더 가까워질 때가 있다.
⸻
우린 너무 비슷해서 이해가 됐고,
또 너무 달라서 답답했던 거다.
아마 다음에도
포돌이는 내 예상을 빗나갈 거고,
나는 또 혼자 계획을 세우겠지.
돌아보면,
우리는 서로를 전혀 모른 채
가장 잘 아는 척하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
그게 우리니까.
⸻
이너마더의 회피형 연애꿀팁
경윤아,
MBTI는 상황 따라, 시기 따라 달라질 수 있어.
그 사람의 타고난 기질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지금 그 사람이 어디쯤에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힌트일 뿐이야.
그러니까
‘원래 저런 사람이다’ 하고
너무 단정 지어서 마음까지 가두지 마.
포돌이도 너도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더 유연해.
머릿속 시뮬레이션도 바뀌고
계획도 흐르면서 달라질 거야.
중요한 건 MBTI가 아니라
지금 서로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야.
서로의 공백을 믿고
너무 애써 끌어당기지 않아도 돼.
계획은 세워도 괜찮고,
예상은 빗나가도 괜찮아.
흘러가는 걸 두려워하지 마.
그게 너희 둘이니까.
다음화 예고
그나저나
브런치 연재 제목을 어찌해야 하나요?
istp가 아니었는데….
어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