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어야 했던 순간

《이 나이 먹도록, 왜 회피형인가》

by 강경윤

“이번 주는 안 싸우셨어요?”

요즘 자주 듣는 말이다.

웃음이 나긴 하는데,

대답은 쉽지 않다.


주변 사람들은 묻는다.

“그렇게 싸우면서 왜 아직도 만나?”


특히나 회피형 연애를 유지하다니

그 이유가 대체 뭐냐고 묻는다.


사실 초반엔,

나도 그냥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린 처음부터 결이 달랐고,

나는 그 다름이 별로 좋지 않았다.


헤어질 구실이 필요하다면

그 다름이면 충분했다.


굳이 애써 싸울 필요도 없었다.

말없이 멀어지는 게 더 편했으니까.


그래서 내가 먼저 선을 그었고,

정리하자고 말했고,

그 사람도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


그걸로, 끝일 줄 알았다.


그러다 하루,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단다.


처음엔 믿지 않았다.

타이밍이 너무 교과서 같았으니까.

너무 흔한 변명처럼 들렸다.


그런데 진짜였다.

나도 모르게

그의 일상 한가운데 들어가 있었다.

처음으로 그 사람의 어머니를 뵀다.


마음이… 이상하게 복잡했다.


그가 어머니를 챙기는 모습은

투박하고 조용했다.

많이 말하지 않았고,

다정한 표현도 없었다.


그냥 ‘해야 할 일’을 하듯,

조용히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매일 통화하고,

식사 챙기고,

장을 보고,

말없이 정리하는 사람.


그걸 보고 있는데,

내 안에 오래 닫아두었던 방 하나가

툭, 열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가족’이라는 말 앞에서

늘 조심스러웠다.


어릴 때부터

엄마와 언니를

내가 지켜야 한다고

혼자 마음먹었던 사람이라서.


누군가에게 기대는 건

어색했고,

받는 건 늘 빚처럼 느껴졌다.


그게, 너무 오래된 나의 방식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누군가가 가족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

어느 정도는 질투였고,

어느 정도는 피로였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그냥,

‘나도 저렇게 살았지.’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누군가와 이렇게 닮았다고 느낀 건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말없이 감당하고,

애써 보이지 않게,

그래도 다 해내는 사람.


그날 이후,

나는 이상하게

마음을 접지 못했다.

이 사람만은.


어색한 말투,

불편한 미소,

서툰 손짓.


그 모든 것 안에

진심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설명은 안 되는데,

그냥 알 수 있었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이 사람이라면,

한 번쯤 싸워봐도 되겠다고.


도망가지 말고

조금씩 부딪혀봐도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그때 그 감정은

지금도 종종 날 찾아온다.


싸우고,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고,

정리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또 돌아오게 되는 그 반복.


왜 놓지 못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언제부턴가

그날이 떠오른다.


사랑은 감정이 식어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었어야 했던 순간’을 잊을 때

끝나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그날을 잊지 못하고 있다.



이너마더의 회피형 연애 꿀팁


회피형은 감정을 감추는 게 아니라,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모를 뿐이야.


그래서 ‘사랑해’ 대신

돌아오고, 기다리고, 챙기고, 묵묵히 버틴다.


말로 확인받고 싶을수록,

그 사람은 더 멀어져.


회피형은 감정 대신

책임으로 사랑하고 표현해.


말은 없어도 계속 옆에 있다면,

그건 감정보다 더 오래가는

사랑의 방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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