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인내하자.
슬픈 내용일 수밖에 없다. 인내한다는 것이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길게 간다. 기쁨을 인내하지는 않는다. 누린다고 한다. 그리고 짧다.
며칠 동안, 아마 약 3주 동안 느껴온 부분을, 현재 진행형 중에서 어느 정도 정리하는 부분이 생겨서 써야 한다는 욕구가 비집고 나왔다. 고통의 정도를 나누어서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각자의 사정과 상황에 따라 다르니까 '내 고통을 알아줘!'라고 싶지도 않다. 기쁨도 마찬가지로 고통도 오로지 내 몫인 것이다.
난 초보자이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변명일 수도 있지만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나름 원칙을 가지고 참가하지만 반정도도 지키지 못해도 월 결과는 좋았다. 그런 부분이 아쉬운 부분였는데, 이번에 제대로 겪고 있다. 이 경험들이 내공으로 쌓이고 있다.
스스로 선택의 부분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선 그 선택이 사상누각이 아닌 어느 정도 견실한 내용의 선택여야한다. 그런 선택 기준은 각자들 마다 다르지만 10 사람 중에서 5 사람이 아니라고 본다면 아닌 기준으로 난 판단하고 있다. 그래야만 나 스스로 견디는 의지가 생긴다. 본인 스스로에게 변병할 수 있는 명분인 것이다.
후회가 밀려들어 들어온다. 부라 부라 뭐뭐 했으면, 뭐뭐 했으면 후회가 계속 생겨난다. 내가 묶여있는 동안 봐왔던 다른 것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또 후회가 계속 생긴다. 기회 소득이라는 용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털고 나와서 했었으면 부라 부라 뭐뭐 했을 텐데.'라고 후회한다. 그렇게 했을 때 모두 수익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조바심, 옴짝달싹 못하고 묶여있어서 못 움직이는 그런 조바심. 견뎌내야 한다. 내가 정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정한 목표가 흔들리지 말기를 내 뇌를 세뇌시키고 있다. 해당 목표에 근접해 가는 과정에서 고통 부분을 지나 기쁨의 구간으로 접어드는 순간이 왔다 갔다 하면서 고문을 가차 없이 진행시킬 것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그럴 것이 보인다. 그것도 견뎌야 한다. 견뎌내고 싶다. 기쁨의 고통을 견뎌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