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01
두려웠고, 두렵고, 두려울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언가에 오래 묶여있는 것을 즐기지 않는 탓에 어쩌다 보니 늘 인생에서 3-4년 주기마다 전혀 다른 환경을 만들고 새로운 선택들을 해왔다. 새로움을 꿈꾸고 즐기지만, 또 늘 두려워하는 모순적인 사람이다.
2025년 2월 26일 한국을 떠났다. 여행을 좋아해서 늘설레는 마음으로 탔던 비행기가 처음으로 낯설게 느껴졌다. 짐은 무거웠고 하나도 설레지 않았다. 누가 등 떠밀어서 억지로 가라고 한 것도 아닌데.
특별히 대단한 걸 기대하고 떠나는 것은 아니다. 해외 생활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없다. 비록 어린시절이라 부모님이 모든 걸 해결해주시긴 했지만 제 2 외국어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남들처럼 언어적인 목표가 큰 것도 아니었다. 좋은 부모님을 만나 운이 좋게 언어가 한창 발달할 시기에 해외생활을 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미국 교육과정을 거친 탓에 일반적인 대화에는 큰 무리가 없다.
그러면 나는 대체 왜 떠나는 것일까? 해외를 가는데에 목표가 없으면 버티기 힘들다는 말에 비자를 신청하기 전부터 열심히 고민해보았다. 그렇게 비행기에 탄 이 순간까지도 고민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그냥 해보고 싶었으니까. 였다. 구지 설명을 하자면 나의 시간을 경험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당연히 주어진 아늑한 내 방에서 편안히 누워서 3시간 동안 쇼츠를 넘기는 것보다는 구지구지 무거운 짐을 챙겨 10시간을 날아가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의 경력과 심지어는 내가 살아온 삶조차 인정해주지 않는 곳에서 버텨보는 것.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후자가 내 스스로의 성장에 더 가치있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떠났다.
저녁 8시 반 착륙. 하지만 컨베이어 벨트 고장으로 수하물을 찾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고 나는 12시가 넘어서야 백패커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너무 어두운 시간에 늦게 도착한 탓일까, 도합 30kg 되는 짐을 가지고 약간의 경사면을 약 10분 동안 올라가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화창한 날씨의 내일을 맞이하면 괜찮을거라는 다짐이 무색하게 씻고 나와 침대에 누우니 부정적인 생각은 커져만 갔다. 밀려오는 생각의 쓰나미를 애써 잠재우며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은행 계좌를 여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은행 오픈 시간에 맞춰 가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찍부터 숙소를 나섰다. 너무 이른 시간 탓에 회사원들과 함께 횡단보도를 걷고 있자니, 여기가 멜버른인지 서울인지 구분이 안갔다. 다행히 그렇게 부지런하게 가지 않았음에도 은행에는 대기자가 없었고 순조롭게 은행 업무를 마쳤다.
돈이 생겼으니, 이제 집을 구해야 한다. 내일까지 기다리면 또 눈여겨본 집 매물이 없어질 것 같아 어차피 할일도 없으니 재빠르게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고, 약 2시간 정도 뒤에 인스펙션을 할 수 있었다. 사진으로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뷰도 마음에 들었고, 집에 들어간 순간 좋은 향기가 나서 곧바로 저녁 쯤에 계약하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 중간에 약간(?) 문제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집과 일 중에 하나를 해결했다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나의 입주 날짜는 일주일 뒤였고 그동안은 잡아둔 임시숙소에서 지내야 했다. 남은 일을 열심히 구해보자는 다짐이 무색하게 어림도 없었고 외식 물가가 비싼데 주방을 마음껏 쓸수도 없으니 통장의 돈은 점점 사라져갔다.
집을 너무 빨리 구한 탓일까, 일도 빨리 구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당연히 전공과 커리어를 살리고 싶었기에 구글맵에 나오는 모든 극단의 홈페이지와 메일 주소를 확인해서 사람을 구하고 있는지 일일히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며칠간 알아본 결과 대부분의 극단은 비영리로 운영되며 그렇기에 페이를 받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이걸 한국에서 미리 알아보고 오지 않았을까 자책과 후회를 했다. 나름 수없이 많은 구글링을 하며 열심히 알아봤었는데 가장 기본 스텝을 빼먹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관계자들과 네트워킹을 해두면 언젠간 써먹을 날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포기하지 않고 전부 메일을 돌렸다. 그래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다음 날 2-3군데 극단에서 함께하고 싶다는 답장을 받았고 그 중 한 극단이 집에서도 가깝고 그냥 자원봉사가 아니라 trainee여서 똑같이 보수는 없지만 해외 경력증명서도 발급 가능하다는 말에 나도 좋다고 답변을 보냈다. 사실은 메일을 보내며 1년동안, 혹은 한국에 돌아가서도 다시는 공연을 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 찾아왔고 무서웠다. 내 의지로 공연을 그만둘거야 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의해 공연을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이후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지원한 프로덕션에서 인터뷰 제안 메일을 받았고 참석하겠다고 회신을 보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다른 지역이라는 것. 하지만 우선 인터뷰까지는 줌으로 가능해서 일단은 붙고 나서 생각할 계획이다.
이제 단 하나 남은 문제는 일자리 인데 직종 상관없이 보이는 공고에는 전부 지원서를 넣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회신은 오지 않았다. 내가 너무 자만했던 것일까. 나의 이력서가 부족했던 걸까. 이 다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