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
내가 해외를 나온 이유는 단순히 영어도 아니고 그저 해외에서 살고싶다는 경험적인 것도 아니다. 오로지 커리어를 위해 왔다. 워홀가서는 다 카페같은 알바만 하는거 아니냐고? 난 청개구리 심보가 있는 사람이라 그러기 싫었다. 1년 동안의 내 커리어 공백을 난 절대 참을 수 없다.
누군가는 나에게 몽상가라 말한다. 너무 말도 안되는 큰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실 주변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물어보면 아마 백이면 백 전부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라며 입을 모아 말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내 꿈에 대해서만큼은 이상주의자가 된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나는 브로드웨이에서 일을 하고 싶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최고의 사람들과 일을 하고싶어하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받길 원하는 것처럼.
그렇다면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난 어떤 움직임을 선택해야 할까. 유학은 돈이 많이 든다. 장학금 제도가 많은 것을 알지만 대부분의 장학금은 학교 입학 허가서가 나온 뒤 그 후 문제다. 요즘 시대에는 모두가 미국 유학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고 하지만 내 얕은 지식으로는 아니었다. 그 입학 허가서를 받기까지의 과정도 꽤 비용이 많이 들고, 그 비용을 투자한다고 해서 무조건 입학이 허용되는 것도 아니다. 난 그 불확실성에 돈을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우울했다. 그렇다면 난 뭘 할 수 있지? 좌절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난 벌써 20대 후반이고 지금부터 열심히 달려나가야 10년, 15년 후에는 내가 목표한 바에 겨우 조금은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진 게 없으면 몸으로 때워야 한다. 그래서 난 워홀을 택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비자가 쉽고 빨리 나오는 호주를 선택했다. 가서 그곳에도 한국처럼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테니 무작정 들이받아보기로 했다. 가진 게 없으면 잃을 것도 없기에 이런 터무니없는 용기가 생긴다.
그렇게 나는 내 집을 기준으로 구글맵에 나오는 모든 극단들에게 약 50개가 넘는 메일을 이력서와 함께 보냈다. 취업 사이트에서도 관련 직종에 또다른 이력서 50개를 냈다. 답장은 당연히 없었다.
이건 장기전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당장 집세를 낼 수 있게 알바를 구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또 다른 150개의 이력서를 냈다. 하루종일 이력서만 내다 끝나는 하루들로 가득했다.
이력서를 이렇게나 냈는데 연락이 단 한개도 없다니. 그럼 난 이제 뭘 더 해야하지? 계속 이렇게 이력서만 매일 내야 하는건가? 그렇게 일주일을 보낸 후 내 안의 불안이가 날뛰기 시작하며 정점을 찍을 무렵, 연락이 하나 둘씩 오기 시작했다.
저번 영상에서 말한것처럼 극단에서 트레이니 롤을 제안받아 곧 4월에 있을 프로덕션 미팅에 참석하겠다고 메일 회신을 보냈다. 이와 별개로 알바 트라이얼 연락도 몇개 와서 또 5-6개의 트라이얼과 3-4개의 희망고문 메시지를 견디고 결국 어제 첫 출근을 했다.
그러나 카페 첫 출근을 하고선 역시나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거지 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렇게 괜시리 한국 취업 사이트들을 들어가보다 또 진로에 대한 고민 덮쳐와 막막해진다.
나는 운이 좋게 고등학생이 될 무렵 빠르게 진로를 찾았고 전공을 하고 적성에도 잘 맞았다. 또 운이 좋게 대학 졸업을 하기도 전 23살부터 일을 시작해 경력을 쌓을 수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나는 내 직업이 좋다. 연습실에서 드라마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고,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를 먼저 볼 수 있을때의 기분은 늘 짜릿하고 설렌다.
하지만 좋은 것과 별개로 금전적인 것 뿐만 아니라 다른 현실적인 문제들이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고 이 일을 그만두는 것에 대한 고민이 아닌 어떻게 하면 더 잘 지속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의 시기가 필요하다고 느껴져 그 시간을 벌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그렇게 오늘도 난 토니상을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터무니없는 꿈을 꾸며 잠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