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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 에포크 Feb 02. 2023

'장애우'에 숨겨져 있는 과도한 친절

장애아이 가정의 입장에서 보는 친절의 의미

지난 주말, 친한 언니와 언니네 아들이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여기서는 알기 쉽게, H모자(母子)라고 칭해본다.

(전에도'나의 버팀목이 되어준 삐삐'라는 제목으로 친한 언니에 관해 쓴 글이 있다.) 

나의 동화 같은 우정 시리즈 https://brunch.co.kr/@82a5639e80c0419/6

언니네가 이사를 가서 거리는 멀어졌지만 여전히 자주 소식을 물으며 친하게 지내는 돈독한 사이이다. 아이들도 동갑으로 서로 친하다. 성별이 달라 고학년이 되면 서로 데면데면 어색해할 줄 알았는데 유모차시절부터 친구여서인지 아직까지도 스스럼없이 친하게 지내는 걸 보니 신기하기도 하다.

이사 가기 전 가까운 이웃으로 살 때는, 그야말로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한 사이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누가 집에 오는 걸 싫어하는 예민한 아들도 H모자(母子)는 예외이다. 하도 어릴 때부터 오던 형이라 놀러 와도 큰 거부감이 없는 모양이다. 사실, 다 같이 놀기보다는 형아를 없는 (?) 치지만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영역(우리 집)에 들어오는 걸 허락해 준 것 같다. 우리 집에 할머니도 조심스럽게 오시는 거 보면 대단한 프리패스인셈이다. 

특별히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오후 4시까지 언니와 외출을 했다. 같이 새로 생긴 맛집찾아가기도 하고, 여기저기 윈도우 쇼핑도 하고,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시며 수다를 떠는데 끝이 없다. 

놀러 온 H형도 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잘 논다. 발달장애가 있는 동생이 있다면 으레 신경이 쓰일 법도 한데, 전혀 신경 쓰는 법 없이, 자기네들 노느라 정신없다. 오히려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는 센스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게 (남편의 희생으로) 아이들도, 나도 신나게 놀고 나면 헤어지는 것도 세상 아쉽다. 다음을 꼭 기약하며 웃으며 배웅했다.

출처_게티이미지뱅크




그렇게 헤어지고 난 저녁, 딸과 '친절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들 H모자(母子) 이야기가 나왔다. 벌써 12년도 더 넘는 지기(知己)니까 당연한 것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 이 세상에는 당연한 건 없다.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긴 세월 우정을 이어갈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었을까? 하고 새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되돌아보면 친구를 사귈 수 있 기회들이 몇 번이고 있었지만, 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단절되기 십상이었다. 그때마다 입은 상처는 지금도 마음의 흉터로 남아 아픈 기억이 되곤 한다. 그렇다 보니 마치 장애아이를 키우는 것이 핸디캡(handicap)처럼 되기도 해서 쉽게 새로운 인연을 만들지 못하기도 했다.

장애아이를 키우는 육아이야기를 비슷한 장애 아이가 있는 가정과는 이야기하기가 쉽지만, 비장애가정과 육아이야기를 공유하기는 쉽지 않다.

상처  이들의 저의(底意)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들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다 이런저런 눈치로 자연스레 멀어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또는, 과도한 친절로 서로 격식을 차리다가, 끝내 인연들이 이어지지 못하고 결국, 등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분들을 탓하거나 미워하지는 않는다. 다만, 머리로는 이해는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 현실들이 안타깝고 그저 속상할 뿐이다.

그런데 H언니 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눌 수 있다. 그냥 편하다.

언니 우리 집 아이가 장애가 있다고 어려워하거나 유난스럽게 안타까워하지도 않는다. 그냥 평범하게 똑같이 아이 키우는 육아이야기 중 하나처럼 들어주고 이야기를 나눈다.

소탈한 언니의 성격도 한 몫하는 것이겠지만, 이런 친절과 배려가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애써 '이런 이야기해도 될까? 이런 상황들을 과연 이해해 줄까?'같은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나에게 있어서도 다만 속도와 상황이 다를 뿐, 다 같이 아이 키우는 "육아"이야기들인 게 맞는 거니까.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육아 이야기를 하듯, 장애아이의 일상을 편하게 들어주며 같이 이야기 나누는 언니의 태도가 나에게는 커다란 배려이자 친절이라고 생각한다. 




친절(親切)  친함을 뜻하는 한자 親과, 가까움을 뜻하는 한자 切의 합성어라고 한다. 또한, 친절은 '옳은 의도'를 갖고 행해야 하는데, 그 옳은 의도란 바로 '무의도'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다.(나무위키)


친절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모든 비난을 해결한다.
얽힌 것을 풀어헤치고,
곤란한 일을 수월하게 하고,
암담한 것을 즐거움으로 바꾼다.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Lev Nikolayevich Tolstoy)



보통 장애인에 대한 친절에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동정'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과한 관심과 간섭 등이 동반되기도 한다. 분명 선한 의도라는 사실을 알기에 이런 과도한 친절을 받을 경우, 거절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동정에서 시작된 친절은 겉으로 표가 난다.

이미 눈빛에서부터 우위를 가지고 있고, 안타까워하며 '네가 참 딱하다'라는 듯한 뉘앙스와 그래서 '내가 무언가를 해주겠다'는 의도가 행동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모든 현실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런 친절을 받고 나면 결국 허탈하고 불편한 기억으로 남곤 한다.

만약 혹시나 이 글을 읽으시면서, '친절하게 대해줘도 까다롭게 받아들이네.'라고 생각하신다면, 그 또한 유감이지만, 이런 친절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친절인가에 대해 되묻고 싶다.




장애인의 보호자로서 나는 '장애우'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솔직히, 장애인을 '장애'라는 부정적인 단어로 칭하는 것도 여전히 싫지만, '장애우'장애뒤에 붙는 친구를 뜻하는 '우(友)'라는 글자 자체가  왜 붙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전히 아직도 자주 볼 수 있는 장애우 표지들. (출처_kbs뉴스 취재, 박찬 기자)

지금은 많은 분들이 조심해 주시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자주 쓰이곤 하는 '장애우'에 대해 실제로 알아보니,

장애우는 장애인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1980년대 후반부터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벗 우(友)' 자로 장애인에게 조금 더 다가가는 친근한 표현이라 생각하고 봉사단체, 언론 등에서 사용하며 확산됐다.
그러나 장애우는 나(1인칭)를 표현할 수가 없는 용어다. 사회집단과 계층을 표현하는 개념 또는 단어는 1인칭, 2인칭, 3인칭을 포괄해야 한다. 그런데 장애우를 사용하면 `나는 장애우입니다`라는 말은 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닌 나는 장애를 가진 친구라고 말하는 전혀 다른 말이 된다*. 즉, 장애우란 말은 장애인 스스로가 자신을 지칭할 수 없기 때문에 주체가 될 수 없는 인간이라는 표현이다. 이것 자체가 스스로를 지칭할 수 없는 사람들이란 의미로 지극히 비장애 입장에서 비롯된 단어인 셈이다.
장애가 있다고 '친구'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이미 '동정의 시선'이 담겨있다고 보고 있어 요즘은 지양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실제로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장애인'에 대한 내용은 있지만 '장애우'에 대한 뜻풀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장애우는 장애인을 대체하는 단어 또한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출처_kbs뉴스 취재, 박찬 기자

개인적으로도, 어감상 대단히 친근하고 친절하게 부르는 단어 같지만, 사실 모든 연령대의 장애인이 친구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친구로 대하지 않으면서 친구라고 부르는 것 같아 나는 왠지 모를 가식과 거부감이 들어서 싫다. 

이런 단어가 내포하는 뉘앙스가 내가 기피하게 되는 과도한 친절이다.

장애인과 장애인 보호가정 또한  사회의 구성원 중 하나이고, 같은 나라국민이지만 여전히 동떨어져 있음을 이런 단어로 실감하고는 한다.

이 단어로만 봐도 씁쓸하게도, 우리나라 사회 속에서 장애인이라는 존재는 여전히 잘 모르겠고, 어려우며, 불편한 존재들이라는 느낀다.

언제쯤이면 평범하게 스며들 수 있는 구성원이 될 수는 걸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그저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빈다.

내 곁에 H모자(母子)가 있어줘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감사함을 느끼며, 다시금 과도한 친절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친절에 대해생각해 본다.







-참조자료-


* 대전일보, '장애우 아닙니다. 장애인입니다'기고문, 양종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대전직업능력개발원장, 2020.10.12

**https://mn.kbs.co.kr/mobile/news/view.do?ncd=4380158, kbs뉴스, 박찬 기자, 20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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