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특히나 "빨리빨리"에 특화된 민족이지만 우리 집 경우는 "느려도 괜찮아"가 모토가 되었다.
사실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우리 집 막내 진우(가명)는 느리게 느리게 살아야지만 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나도 대한민국 사람인지라 답답하기만 했다.그러나 진우는 우직하니 자기 속도대로 천천히 한 발짝씩 시간을 보낸다. 고집스러운 황소나 절대 자신의 소신을 꺾지 않는 선비가 떠오른다.그래, 너만의 속도가 있구나?
어느덧 느릿함을 즐기게 된 나.어라? 싫지 않다. 오히려 좋다.실은 그런 느림이 더 편해졌다.
그리고 그 '느림'을 통해 배운 것이 많았다. 그래서 '느리게 사는 것'이 나의 앞으로의 인생 목표가 되었다.
느림을 우리는 자칫 단점으로 분류하기 쉽다. 그렇지만 바쁜 일상 속 우리는 소. 확. 행이니,칠링 Chilling 같은 단어를 통해 힘을 얻는 것을 보면 사실 느림에 대한 열망이 하나쯤 있는 게확실하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기까지는 아이들의 힘이 컸다.
물론 진우(가명)의 인지적, 정서적 성장 제약으로 시작은 됐지만 첫째 유진이(가명)성장이 오히려 촉매제가 되었다. 영원히 그대로일 것만 같은 아이들도 어느덧 성장했구나를 느꼈을 때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돌 틈 사이 끊어질 듯 졸졸 흐르는 아주 조그마한 물일지라도 바다를 향해 흐른다. 바다로 향하는 염원과 시간이라는 자성으로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해당한다. 나의 시간도 같이 흐른다.
그 시간이 내게는 너무나도 아깝고 안타까울 정도로 아름답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느림'은 일을 미룬다거나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게으름이나 나태 같은 것과 다르다. 느림을 즐기기 위해 오히려 더 움직이고 더 부지런해진다. 이러한 부지런함은 조급함과 또한 다르다.
나에게 '느림'이란 순간이라는 잠깐의 시간일지라도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와 너그러움의 한 형태이다.
있는 그대로를 고찰하고 이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몸가짐이자 마음가짐이다.
그리고 온전히 나를 인정하고 온전한 나의 모든 것을 안아주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힘. 그게 내가 느낀 '느림'의 매력이다.그리하여 이 느림으로 나는 '깊이'이라는 걸 얻었다. 속도에 신경 쓰다 보면 그 순간의 깊이를 지나치기 쉽다. 인생을 속도나 길이로 많이들 비유하는 하지만 '깊이'에 대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깊이라는 형태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너와의 대화에서 귀를 기울이는 것, 책 속 한 문장한 문장을 되짚어 보며 읽는 것, 계절의 변화와 색감을 느끼며 산책하는 것,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글을 쓰는 것, 곁의 소중한 사람의 눈을 마주 보는 것, 거울 속 내 모습을 조용히 관찰하는 것과 같은 지나치기 쉽지만 조금만 하고자 하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형태이다.
출처_네이버 이미지
우리는 지나가는 것을 붙잡을 수 없다.
시간도, 인생도.
그러나 그 순간의 깊이를 천천히 느리게 온전히 느낀다면 시간을 기억이라는 추억을 통해담을 수 있다.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도 그러하다. 누구에게나 나와 깊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알면 알수록 새롭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마운 존재들. 부모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아이들일 수도 있다. 모두가 아니어도 그것이 나 자신일 수도 있다. 존재의 아름다움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나 자신과 그들과의 시간들을 자각하면 놀라운 순간이다.
천천히 느려도 그 순간을 진심으로 그 깊이를 헤아리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잠든 아이들을 보며 가만히 이마를 쓸어 올려준다. 속도보다는 깊이 있는 사람이 되야겠다는 생각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