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속도

속도보다 깊이

by 벨 에포크

누구에게나 삶의 속도가 있다.

대한민국은 특히나 "빨리빨리"에 특화된 민족이지만 우리 집 경우는 "느려도 괜찮아"가 모토가 되었다.

사실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우리 집 막내 진우(가명)는 느리게 느리게 살아야지만 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나도 대한민국 사람인지라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나 진우는 우직하니 자기 속도대로 천천히 한 발짝씩 시간을 보낸다. 고집스러운 황소나 절대 자신의 소신을 꺾지 않는 선비가 떠오른다. 그래, 너만의 속도가 있구나?


어느덧 느릿함을 즐기게 된 나. 어라? 싫지 않다. 오히려 좋다. 실은 그런 느림이 더 편해졌다.

그리고 그 '느림'을 통해 배운 것이 많았다. 그래서 '느리게 사는 것'이 나의 앞으로의 인생 목표가 되었다.

어릴적(2~3년전) 유진(좌)진우(우)미술활동작품들: 봄다운것 같아 픽해서 찍어봤습니다 ^^

느림을 우리는 자칫 단점으로 분류하기 쉽다. 그렇지만 바쁜 일상 속 우리는 소. 확. 행이니, 칠링 Chilling 같은 단어를 통해 힘을 얻는 것을 보면 사실 느림에 대한 열망이 하나쯤 있는 게 확실하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기까지는 아이들의 힘이 컸다.

물론 진우(가명)의 인지적, 정서적 성장 제약으로 시작은 됐지만 첫째 유진이(가명)성장이 오히려 촉매제가 되었다. 영원히 그대로일 것만 같은 아이들도 어느덧 성장했구나를 느꼈을 때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돌 틈 사이 끊어질 듯 졸졸 흐르는 아주 조그마한 물일지라도 바다를 향해 흐른다. 바다로 향하는 염원과 시간이라는 자성으로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해당한다. 나의 시간도 같이 흐른다.

그 시간이 내게는 너무나도 아깝고 안타까울 정도로 아름답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느림'은 일을 미룬다거나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게으름이나 나태 같은 것과 다르다. 느림을 즐기기 위해 오히려 더 움직이고 더 부지런해진다. 이러한 부지런함은 조급함과 또한 다르다.

나에게 '느림'이란 순간이라는 잠깐의 시간일지라도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와 너그러움의 한 형태이다.

있는 그대로를 고찰하고 이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몸가짐이자 마음가짐이다.

그리고 온전히 나를 인정하고 온전한 나의 모든 것을 안아주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힘. 그게 내가 느낀 '느림'의 매력이다. 그리하여 이 느림으로 나는 '깊이'이라는 걸 얻었다. 속도에 신경 쓰다 보면 그 순간의 깊이를 지나치기 쉽다. 인생을 속도나 길이로 많이들 비유하는 하지만 '깊이'에 대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깊이라는 형태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너와의 대화에서 귀를 기울이는 것, 책 속 한 문장한 문장을 되짚어 보며 읽는 것, 계절의 변화와 색감을 느끼며 산책하는 것,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글을 쓰는 것, 곁의 소중한 사람의 눈을 마주 보는 것, 거울 속 내 모습을 조용히 관찰하는 것과 같은 지나치기 쉽지만 조금만 하고자 하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형태이다.

출처_네이버 이미지

우리는 지나가는 것을 붙잡을 수 없다.

시간도, 인생도.

그러나 그 순간의 깊이를 천천히 느리게 온전히 느낀다면 시간을 기억이라는 추억을 통해 담을 수 있다.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도 그러하다. 누구에게나 나와 깊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알면 알수록 새롭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마운 존재들. 부모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아이들일 수도 있다. 모두가 아니어도 그것이 나 자신일 수도 있다. 존재의 아름다움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나 자신과 그들과의 시간들을 자각하면 놀라운 순간이다.

천천히 느려도 그 순간을 진심으로 그 깊이를 헤아리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잠든 아이들을 보며 가만히 이마를 쓸어 올려준다. 속도보다는 깊이 있는 사람이 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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