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여전히 낯선 진우(가명)는 울며 등교거부를 몸소 보여준다. 학교가 해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두려워하는지.
진우(가명)는 새로운 사람과 장소를 매우 두려워하고 거부한다.
최근에 생긴 진우만의 특징인데 크면서 자기만의 규칙이 강해진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치료실 선생님도 3~5년 이상 넘으신 분들이고 병원도 꼭 가는 곳에, 같은 선생님을 만난다. 길도 아무리 돌아가는 길이라도 본인이 정한 길로만 가야 한다. 또한 반드시 정해진 하루 일과를 그 시간에 꼭 맞춰야 한다. 이게 무너지면 진우는 분노 발작이 생길 정도로 불안해했다. 여러 사정도 있었지만 이런 진우의 특징 때문에 학교 입학을 1년 유예하기도 한 거였다.
학교 입학할 때는 거의 멘붕상태였다. 학교라는 낯설고 큰 시설에, 한 반에 한두 명도 아닌 수십 명의 낯선 친구들과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진우에게는 그만큼 많은 감각의 자극들이 밀려와 괴로울 수밖에 없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진우에게 학교라니!!!
그나마 다행인 건 진우가 학교라는 곳이 아직 처음이라 스스로의 루틴이나 패턴화 이전의 백지상태라는 것이었다.
고치기 힘든 자기만의 규칙을 세우기 전에 학교에 적응하기 좋은 규칙들을 먼저 루틴화 시켜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진우를 위한 시각자료를 만들었다. 진우와 같은 친구들은 시각적 감각이 특화되어 있어서 시각적 자료가 효과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때문이다.
1. 하루 일과 규칙 표 만들기
우리 집에서 제일 눈에 띄는 벽 칠판에 붙였다. 진우가 스티커 붙이기를 좋아해서 흥미를 주기 위해 함께 스티커를 붙일 수 있도록 했다.
스티커를 붙이며 오늘 하루의 일과들을 스스로 체크할 수 있게 했다.
루틴을 좋아하는 진우에게는 딱이었다. 시간표를 보며 진우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2. 원반 담임 선생님께 상세히 소개하는 글 쓰기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의 특수반 소속이 되면 특수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통합 환경을 위해 일반 반도 들어간다. 일반반을 '원반'이라고 부르고 원반 소속 중심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담임선생님과 상담해야 한다. 특수반은 그저 원반에서 너무 힘들면 가는 피난처 같은 곳으로 진우는 원반 중심으로 학교를 다녀야 한다.
그러므로 특수교육 지식이 없을 수도 있는 담임선생님께 진우의 설명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진우는 아직 말이 원활하지 못해서 자기를 표현하지도 못하고 글도 못 쓴다. 그래서 이해를 돕는 자료가 있으면 도움이 되시지 않을까. 또한 진우의 돌발행동에 당황하지 않고 대처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썼다.
3. 진우의 미션북 만들기
진우는 알고 보면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이다.
본인이 늦되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 없는 수행과제가 주어지면 쉽게 주눅이 들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배우기를 포기하려는 경향이 있다.
초반에 어떻게든 우쭈쭈 해줘서 자신감을 키워주면 그래도 조금은 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모든 아이들이 그러하겠지만 진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선생님들께 검사 도장 같은 것을 받아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만들었다. 일종의 칭찬스티커 북인데, 미션북에 평가 스티커를 받을 때마다 선생님께 조금의 관심과 말이라도 한마디 들을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안 좋은 날도 있다.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그날 학교생활을 나도 어렴풋이 확인도 돼서 좋았다.
비록 시간이 갈수록 선생님들이 귀찮아하셨지만.
다른 일로도 바쁘실 텐데 시간을 뺏은 건 아닌지. 그런 점에서는 죄송한 생각이 든다.
지난 1학년을 이렇게 요란하게 보냈다.
결과적으로는 그래도 만족한다. 원반 담임선생님께서 너무나 좋은 분이셔서 진우에게 충분히 관심과 배려를 해주셨고 원반에서 착한 반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좀 적응하는가 싶었는데... 그러나 2학년이 된 진우는 또다시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선생님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야만 한다. 사실 진우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는 일이고, 유난히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자기 나름대로 1년 동안 열심히 루틴화 시켰던 1학년 때의 모든 것을 다시 리셋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새 학기 첫날, 우렁차게도 울었다는 이야기를 특수반 선생님께 전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