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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해 Feb 05. 2022

중학생 경범죄 고발사건

경찰서에 진정서를 내다

1. 자전거 국토 종주


중3 때 아이는 자전거를 즐겨 타기 시작했다. 그래서 좋은 자전거를 사주고 운동삼아 주말에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를 자주 했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운동 잘하기로 인기 많은 K랑 친해졌다.


여름방학 때  K와 자전거 국토종주 3박 4일을 하겠다고 한다. 중학생을 둘만 보내는 것이 쉽지 않았고  숙박때문이라도 어른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휴가를 내서 차로 따라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국토종주는 시작되었다. K는 깡마른 몸매지만 원체 운동을 좋아해서 일정을 소화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우리 아이는 둘째 날 병이 났다. 열이 오르고, 토하고 남편은 아이를 싣고 병원에 갔고 수액과 영양제를 맞고  일정을 마쳤다. K 아버지와 만났고, 두 부자는 즐거운 저녁식사로 국토종주를 마무리했다.


K 와는 우리 아이는 숨겨진 우정 같은 느낌이었고, 아이들이 페이스북에 올라온 우리 애와 K의 사진이 진실이야? 되묻는 답글이 달리곤 했다.  


 




2.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녁 식사 중  아이의 전화가 울리다가 이내 끊어진다.

“ 누구야? “

“ 몰라, 번호가 없어 “

그 뒤로 두 번인가 더 오다 만다.  뭐지? 스팸인가?   거의 매일 전화가 오다 말고 끊어진다. 나랑 있을 때도 몇 번이나 그랬다. 폰을 보니 대부분  번호를 알 수 없었다. 가끔 번호가 찍혀 있었는데 , 다시 전화하면 받지 않았다. 숨소리만 나거나 멀리서 낄낄대는 소리가 난다. 때론 내 회사 이름을 말하고 끊는데, 이 순간 나는 녹음을 했다. 구체적으로 부재중 전화의 날짜, 시간, 그리고 녹음이 된 경우는 무엇이 들렸는지를 적었다.  약 두 달에 걸쳐  오십 회가 넘는 부재중 전화와 이상한 음성을 낱낱이 기록했다.


뭔가 의심 가는 게 없는지 물어봤다. 모르겠다고 한다.  몇 번 묻자 입을 연다.

자기 페이스북이 해킹을 당해서 이상한 글이 많이 올라왔다고 했다. 일베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이 자기도 일베에 끌어들이려 해서 거절했고, 그 이후로 엄마 이름을 복도에서 불러대기도 하고, 자기 들으라고 욕하기도 했단다. 담임 선생님께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는데,  정확한 근거가 없어서 말씀을 못 드렸고 했다.  


본격적으로 퇴근 후 집에서 아이의 페이스북, 통화기록을 뒤졌다. 해킹당한 페이스북에는 내 이름, 남편 이름, 그리고 동생과 할아버지 욕으로 도배되어있고,  고 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편집해서 기괴하게 만든 사진을 올려놨다. 이런 것이 일베들의 소행인가?  틈틈이 시간을 내어  페이스북 사건과 전화 사건을  모두 정리했다.


오후 반차를 내고, 서초경찰서로 무작정 찾아갔다.  입구에 계신 분이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내가 준비한 자료를 보여주면서 페이스북 해킹을 당했고, 명예훼손 또는 아이의 학교 관련 폭력일 것 같아서 조사 의뢰하러 왔다 말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사이버수사대 쪽으로 안내해줬다. 내 자료를 검토하더니, 페이스북 관련 사건이 많긴 하지만,  페이스북은 한국 회사가 아니라 협조가 전혀 안된고 했다. 그렇지만 일단 상황을 보니 여성청소년 과로 가보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페이스북 신고는 더 이상 진행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든 순간이었다.  전화 사건을 들고 여성 청소년과를 갔다.  입구에서 당직자가 서류를 보더니, 한 담당 경찰에게 안내를 해줬다. 여성청소년과 라는 곳은 여상과 학생을 전담으로 수사하는 곳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심증 만으로는 조사를 할 수 없다고 하였고, 더 정확한 확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경찰서에 가서  소득이 하나도 없음을 후회하고 있었다.





3. 죄를 사하노라


지인에게 상황을 말하니, 진정서를 적성해가란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포맷에 맞게 썼다. 제반 자료를 별첨처럼 붙여서 생전 처음으로 진정서를 만들었다. 경찰서에 가는 것은 매우 귀찮고, 무서운 일이기도 했다. 오히려 무고죄로 내가 고소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던 중 내가 경찰서에 갔다 왔음이 아이 친구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다. 물론 담임선생님께도 말씀드린 상황이었다. 아이는 나를 만류하지 않았다. 너의 괴로움을 내가 돕겠다고 했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네가 영원히  당해도 싼 놈이 돼버린다고 설득을 했기 때문이다.


진정서를 내자 담당 경찰이 의심 갈 만한 친구들이 있나고 물어봐서 아이와 함께 몇 명의 이름을 언급했다. 수시로 전화를 해서 끊고, 페이스북에 더러운 글로 도배한 그들은 어디선가 허술하게  자기가 했던 짓들을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한두 개씩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나의 증거 목록화되었고 그들의 이름이 내 머릿속에 이미 있었다. 며칠 뒤  한 아이에게서 자기가 전화하고 끊은 적이 있다는 자백을 받았다. 그 친구는 우리 애랑 친한 아이이고, 정말 순진한 아이였다. K 친구와 몇 명이 축구를 마치고 우리 아이에게 장난 전화를 하라고 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전화로 그 전화를 했고. 그 아이들이 몇 분 간격으로 전화를 하고 끊고를 돌아가면서 했다는 것이다.  발신자 번호 제한하는 방법을 이용해서 말이다.  그 친구는 그렇게  한두 번 했다고 했다. 그다음 날 자백했던 엄마가 울면서 전화했다. 우리 아이랑 친분이 있는데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다. 나는 자백한 친구가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이 사건을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죄가 있다면 모두에게 인지 시켜주고 싶다고 했다. 어머님께는 미안하지만 사건을 취하할 마음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경찰은 정말 신속하게 그 친구를 경찰에 불러서 조사를 하고, 줄줄이 가해자 명단이 만들어졌다.  죄목은 전화 걸고 끊고를 반복하여 심리적으로 위협을 가한 경범죄였다.  경찰에서 해당 학생들과 부모님을 한날 모았고 예상했던  K가 있었다. K의 아버지와 남편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한 어머니는 우리 남편이 변호사인데, 이런 죄 같지도 않은 걸 가지고 모이게 하냐고 소리 질렀다. 기선 제압할 모양이었다.


경찰이 그 어머니의 고함을 묵살시켰다.

" 잘 아실만한 분이 그러시면 안 되죠! 남편이 변호사이시면 더 잘 아실 거 아니에요? 이건 학교 폭력이에요!"

 

경찰은 간단히 우리 아이의 피해사실을 이야기했고, 경찰이 배석한 자리에서 아이들끼리 한방에서 이야기하도록 하자고 하셨다. 우리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부모들은 봉지커피 한잔 받아 마시고 30분간을 어색하게 기다렸다. 나름 피해자 인데 가해자 부모에게 따질 용기도 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쭈뼛거리며 방에서 나왔다. 아이들이 우리 아이에게 용서를 구했고, 용서를 해줬다. 다음부터 이런 일이 없도록 집에서 교육시켜달라고 경찰은 당부했다.


내가 한 가지만 묻자고 했다. 왜 우리 애를 괴롭히게 된 건지 듣고 싶다고 했다.

경찰은 나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 다 아이들끼리 이야기했다고요. 다시 이야기를 꺼내시면 안 되시죠"

"그리고 이렇게 전화가 계속 오면 아이의 전화번호를 바꾸던지 조치도 생각해보셨어야죠"


조용한 우리 남편이 한소리 했다. 

"경찰 선생님, 피해자가 계속 가해자를 피해야 하나요? 그건 아니죠? 전화번호를 바꾸는 건 방법이 아니죠"

.

경찰도 아무 말을 못 했다.  화해하면서 웃으며 끝내려고 했던 분위기는 다시 팽팽해졌다.

경찰은 다들 돌아가셔도 좋다고 했고, 아이들에게 너희들 이제 친하게 지내라라고 이야기를 했다.

계속 못마땅했지만, 나는 일이 마무리된 것으로 만족했다. 두 달 이상 이 경찰서에 들락날락하고,  근거를 모으고, 엄마들에게 싫은 소리도 듣고 했지만 아이와 나를 위한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더 이상 시끄러운 일이 생기지 않았다.  아이는 더 이상 페이스북을 하지 않았다.

한 달 뒤,

“ 00네는 거지 같은 고물 소나타 타고 다니더라. “라는 캡처 사진이 문자로 왔다.

친구가  우리 아이에게 알려준 것이다.  

경찰서에 15년 넘은 소나타를 타고 갔었는데 그걸 또 시비 걸구 있구나

그래 이 정도면 애교다. 아이고 아들들아~ 언제 철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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