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끝없이 내려앉던 어느 날이었다. 손목을 그어 스스로 삶을 멈추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몸은 다치고 마음은 더욱 깊은 절망에 빠졌다. 결국 나는 두 번째 질병휴직에 들어갔다. 모든 게 무너져버린 것 같았다. 집에 틀어박혀 창밖을 바라보며 흐르는 시간을 멍하니 보낼 뿐이었다. 봄볕이 아무리 따스해도 내 안은 침울한 겨울이었다. 호흡조차 버거운 나날이었다.
하루는 천변을 따라 정처 없이 걷다가 조금 멀리 갔는데, 아파트 단지 앞에 작은 건물들이 몇 개 보여서 계속 갔다. 그러다 "00가정복지상담지원센터"라는 현판에 걸음을 멈췄다. 들어갈까 말까 수차례 고민하다가 결국 문을 열었고 담당 직원분께 사정을 알렸다. 그분은 나에게 잠시 앉아서 차 한잔하면서 기다리라 하고서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지금은 상담선생님들이 다들 내담자들이 있으셔서 어렵겠는데요..."
"잠시만요, 한 군데 더 전화 좀 해볼게요."
직원분의 화색이 밝게 바뀌면서 오시더니,
"이 선생님은 이번에 은퇴를 하셨는데 방문하신 분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자신이 맡으시겠다고 하시네요."
이렇게 선생님과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정처 없이 걷다가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도 우연이었고, 막 은퇴하신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도 우연이었다.
선생님은 어머니처럼 포근한 인상과 따뜻한 미소를 가진 분이었다. 처음에는 그분의 미소조차 내 마음에 닿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천천히 말씀하셔도 돼요, "
그녀의 목소리는 잔잔하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상담이 이어지면서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그녀는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내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고, 내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어느 날은 내가 흐느끼며 절망과 분노를 쏟아냈고, 또 다른 날은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울기만 했다. 그 모든 시간을 그녀는 묵묵히 내 곁에서 함께해 주었다.
6회기 상담이 모두 끝날 무렵, 카페에서 맛있는 차를 사주시겠다면 부르시더니 내게 작은 책을 건네셨다.
“이건 훈이 씨를 위한 선물이에요. 힘들 때마다 한 장씩 읽어보세요.”
그 책의 제목은 <평생 간직하고 싶은 시집>이었다. 집에 돌아와 책을 펴서 넘기는데 그 안에서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가 눈에 들어왔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붙어 서서
결국 그 벽을 넘고야 마는
푸른 넝쿨을 손에 쥐고
우리가 돌아온다.
담쟁이 -도종환
나는 그 시를 읽으며 눈시울 뜨겁게 소리 삼키며 울었다. 그동안 나를 짓누르던 절망은 거대한 벽과도 같았다. 나는 그 벽을 넘을 수 없을 거라고 믿었고, 그래서 아예 포기하려 했었다. 하지만 담쟁이덩굴은 다르다. 작은 빨판 하나에 의지해 벽을 기어오르고, 결국 그 벽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내게도 그런 억척스러운 빨판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이 내게 준 그 시를 붙잡았다.
그날 이후로 마을 골목길에서 담쟁이를 볼 때마다 이 시와 선생님이 떠올랐다. 담쟁이는 마치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넘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버텨야 한다. 벽은 언젠가 넘을 수 있다."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되찾았다.
여러 해가 지났고 열심히 일하며 살다가 나는 또다시
질병휴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기로에 서 있다. 그래서 마음속에는 깊은 불안과 막막함이 자리를 잡고 있다. 책장을 열어 시집을 꺼내 든다. 한 장, 한 장 시를 넘길 때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분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실까? 선생님이 보고 싶구나.
내게 있어 이 시집은 단순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살린 선물이고, 선생님과의 특별한 연결고리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다시 삶의 벽을 오를 수 있도록 해주는 빨판이다. 나는 이 시집과 선생님을 평생 간직할 것이다. 그들이 내 삶에 남긴 흔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