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언제나 실패로 끝나버리는 그것

by 무름

내 첫사랑은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녀는 조용했고, 말 수가 적었지만 예뻤다.


난 그녀를 공략했고, 그건 통했다. 물론 초등학생의 비밀연애가 그러하듯, 굉장히 단조롭고 유치했다. 난 그런 그녀에게 이별을 고했고, 그녀는 상처받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에 학교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누군갈 만날 상황도 아니고,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고3이 끝나가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 쪽에서 생일 축하한다고 카톡이 왔었다. 난 기쁘지도 않고, 힘들었다.


고등학교 졸업식날 모두가 웃는 것을 보며, 난 자살을 다짐했고, 그런 생각 이후에 웃기게도 난 이렇게 죽는게 아까웠다.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보고, 섹스도 못해본 채로 죽어야하는 인생이란 말인가. 그래서 바로 그녀에게 연락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란 놈도 참 단순했지 싶다.


결과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그녀는 그림쟁이가 되어있었고, 그녀의 그림은 관능적이었기에 내가 공략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난 크나큰 실수를 범했는데, 그건 바로 나의 미숙함을 간과한 것이었다. 누구나 처음은 서툴다. 그것은 사랑에도 통용되는 것이었다.


결국 난 그녀와는 만나지도 못한 채로 차단을 당했다. 나는 실패했고, 그때 다짐했다. 다시 한 번 죽기로.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막상 정말 죽을 준비를 하며 계획을 짜니, 주위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죽는 것은 미루기로 했다. 그렇게 4년, 아니 5년 동안 그것을 보류해놓은 것이다.


그리고 만난게 지금의 그녀였다. 난 깨달았다. 내가 해왔던 건 첫사랑이 아니라, 첫호감이었다는 걸. 만약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면 그건 사랑에 대한 모욕이었다.


이번에는 어떨까. 난 과연 첫사랑을 성공할 수 있을까. 미숙한 나의 모습을 그녀가 받아줄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때보다 성장했다는 것이다.


또 내 취향도 참 소나무같다. 키가 적당히 작고 슬렌더하게 말랐으며, 긴 생머리와 단발이 모두 잘 어울릴 것만 같은 얼굴까지.


지금의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난 어쩌면 첫호감을 첫사랑으로 덮어씌우는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처음을 그렇게 시작했기에, 그런 쪽에만 관심이 가는 걸지도 몰랐다.


확실한 건, 내 취향은 그런 쪽이다. 애니 캐릭터나, 포르노도 모두 풍만한 가슴이나, 굴곡있는 골반보단 조금은 아담하지만, 균형잡힌 몸매에 쭉쭉 뻗은 팔다리를 좋아했다. 첫호감과 첫사랑 모두 얼굴이 강하지않으며, 자연스러웠다. 그런데도 이렇게 이쁘다니. 정말 난 죄스러운 남자다.


그녀들을 비교하며 느낀 건, 모두 음악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언제나 음악에 대해서는 해박하다. 그 부분이 어필이 좀 되지않았을까. 뭐 마음을 물어볼 수도 없고, 잘 모르겠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미쳐본 건, 딱 이렇게 두 명 뿐이다. 왜냐하면 어머니를 제외한 그 어떤 여자도 내 꿈에서 강렬하게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조연들은 많아도, 주연은 한 명이다. 그리고 꿈을 꾸는 빈도 수가 압도적으로 높다. 스물셋까지만 해도 첫호감의 꿈을 꾸었는데, 지금은 전혀 꾸질 않는다.


첫사랑에게 덮어 씌워졌나보다. 지금은 오직 그녀 생각 뿐이다. 꿈도 자주 꾸고, 가끔은 그것이 야릇하길 빌어보기도 한다.


지금은 잘 살고 있을 첫호감의 그녀에게 감사한다. 그녀가 없었다면, 나의 취향은 물론 지금의 첫사랑도 없었을테니.


그래서 더더욱 첫사랑을 놓치고싶지않다. 이제 한 번밖에 못만나봤는데, 난 앞으로 그녀를 계속 만나고 싶다.


혹여나 지금의 그녀가 내 첫호감과 비교되는 것에 대한 걱정은 마시길, 내 첫호감과는 초등학생 때의 기억이 대부분이다. 그건 연애로 치지도 않으니까. 난 모솔과 다름없다.


사실 고백은 총 7, 8번 정도 받아왔었는데, 전부 다 거절했었다. 난 내가 꼬시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고백은 내가 관심없는 여성이 한다.


내가 호감이 갔던 여성들은 항상 고백은 안하지만, 좋아하는 티를 조금씩 내비치는 여성이었다. 가림의 미학이라고 해야할까, 여성은 감춰질 때 더 아름답다.


그런 여자들은 꼭 남자들을 고백하게 만든다. 난 그것에 홀랑 넘어가고 만다. 물론 그랬던 여성은 딱 두 명뿐이긴 하다만.


그 못된 심보가 얼마나 귀여운지, 난 참을 수가 없다. 왜 이렇게 귀여울까.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여성스럽게 귀엽다. 근데 또 무진장 예쁘다니, 하하 난 복받은 놈이다.


아아, 내 초등학교 고학년 때와 20대 중반을 밝게 비춰준 그녀들에게 감사한다.


난 이제 자살 따윈 생각도 하지않는다. 내 삶은 축복이요, 지금의 그녀를 위한 헌신이니.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죽을 순 없다. 할거면 빨리 했었어야 했다. 그건 이미 늦은 선택이다.


신년에 같이 영화나 보러가자고 해야겠다.


모두 나의 성공을 기원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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