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남성이란
조금 상스럽지만, 난 변태적인 여성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꽤나 위험하기에 모두가 말은 안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여성이 나에게만 천박하다면, 그것만큼 끝내주는 건 없겠지.
만인에게 몸을 흘리고 다니는 건, 서로 그래선 안되겠지만. 적어도 연인끼리 변태적인 건 허용되지않을까. 내 머릿속엔 이런 성적 판타지만 가득해서 문제다.
사귀는 걸 생각하면, 손을 잡고 포옹을 하며 따뜻한 키스를 나누는 정도를 떠올릴지도 모르지만, 난 아주 상스럽고 천박한 짓거리를 함께 하고만 싶다.
역설적으로 그런 상상만 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를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아닌 다른 남자로부터 지켜주고, 때론 집착도 하며 그렇게 지내고 싶다.
남자들은 모두 쓰레기니 말이다. 드럽고 거칠며, 하나같이 다 여성을 지배하려는 놈들 뿐이다. 정말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저질적인 것이 남자란 생물이다. 아, 물론 나 포함이다.
난 여성을 가끔 때리고 싶은 충동이 드는데, 특히 상대 여성이 감정적인 호소만 하며 징징될 때 그렇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과 상대에 대한 배려를 부모에게 배웠기에 참아왔다. 단 한번도 여성을 제대로 때려본 적이 없다. 남자들과는 중1 때까지 주먹다짐을 종종 하곤 했었다.
근데 꼭 섹스만 하면, 상대의 헐떡임에 흥분되서 상대를 조금 때리고 싶어진다. 자위할 때도 마찬가지로 그런 포르노를 찾아보곤 한다.
막 강하게 때리는 건 내 취향은 아니고, bdsm처럼 정형화된 플레이를 하고싶은 것도 아니다. 그냥 너무 흥분되어서 내 가학적인 성향이 무심코 드러나는 듯 할 때, 난 스스로가 이성을 잃었다는 걸 깨닫는다.
마치 집안에서 뒤돌아 있는 연인의 엉덩이를 찰싹하고 때리고싶은 것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어쩌면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활발하다보니, 젊은 피의 객기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맞는 건 참 아프다. 남자애들과 싸우면서 느낀 건, 나도 이렇게 아픈데, 상대는 오죽할까였다. 그 이후론 잘 싸우지 않았다.
모순적으로 그래서 더 나만 때릴 수 있는 상황을 좋아하는 것 같다. 여자들은 프로레슬링 선수가 아닌 이상, 대부분 연약하니까, 좀 괴롭히고 싶은 마음도 든다.
나는 안맞으면서 상대만을 아프게 한다니, 그것 참 즐겁지 않은가.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대사는 멋진 신세계나 1984에서 나올법한데, 내가 뱉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작은 존재에게 과시하면서까지, 내 힘을 증명하고싶은걸까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더 지켜줘야겠다는 상반된 양가감정이 들었다.
내 속이 너무 복잡했다. 확실한 건, 만약 날 주체하지 못하더라도 적당히 하길 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 또한 언젠가 아이를 낳게되고, 그것이 만약 딸이라면 난 죄를 진 것처럼 마음이 아플 것이기 때문이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건, 힘든 일이다. 그런 고생을 하지않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여성에 대한 선행을 하나씩 쌓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우리 엄마한테나 잘해야겠다.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가 곧 여성을 대하는 태도라나. 그런 말이 나돌기도 하니, 철저히 내 본모습을 감추기 위해 어머니에게 효도해야겠다.
이번 크리스마스 때 스타벅스 아메리카노하고, 케이크 한조각을 선물해드렸는데, 말도 못하게 좋아하시긴 했다. 빼빼로 데이에도 드렸고.
한 때는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 이해한다. 여성은 이해심이 부족하니까. 때론 감정이 앞서는 생물이란 걸 이해한다. 한달에 한번씩 마법에 걸리는 사람들인데 그 호르몬의 변화만으로도 여성은 오락가락한다.
여성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것이 남성의 여유가 아닐까싶다. 만약 당신이 여성에게 이해받고 싶고, 치유받고 싶다면 그건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아주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다. 여성에게 기대는 것만큼은 피해야한다. 남성은 홀로 서서, 그 어떤 풍파도 버텨야한다. 그런 기둥이 되었을 때, 여성은 그 곁에서 쉴 수 있다. 여성을 편안히 해주었을 때, 그들은 가끔 보상으로 자신의 곁을 내어준다.
난 이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젠장할 것.
그러니 모든 남성들이여 고독하게 버텨라.
그 운명을 피하지 말고 마주하며 받아들여라.
그것이 진정한 알파메일이니까.
강한 남자는 말없이 버티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