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여. 이-제↘ 아안녕-
다.신. 나↗를. 찾.지. 말아↘ 줘-
이 음 표기가 맞나?
어떤 추운 밤에도,
어떤 궂은 날에도,
중간 생략.
너를 떠나 살 수 있을까?
나의 가장 오랜 벗이여.
나는 네가 없이는,
내가 아닐 것 같..아흑.......!!
방금 ‘띠링’ 소리 안 났지?
가장 오랜 벗인 ‘슬픔’을 빼면 마치 내가 아닌 것 같아, 슬픔을 떠나서 살 수 있을까? 걱정하는 노랫말이 날카로운 독침이 되어 과속으로 가슴을 쏘아 찌르는 바람에, 갑작스럽게 울컥했고, ‘띠링’ 소리가 났어야 하는 타이밍에 머쓱한 눈물이 멈추며, 내 시선은 계기판 숫자로 향했다.
아무래도 속도위반 카메라 앞에서 속도 줄이기를 놓친 것 같은데...
조만간 엄마로부터 전화가 오겠군...
이런 순간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그런 상태일까?
내 sns 피드들 속에는, 고민 걱정이라고는 없는, 성실히 하루를 보내고, 예쁘고 맛있는 것들을 먹으며, 다양한 외부 활동을 즐기고 유쾌하게 잘 지내는 사람이 살고 있다. 심지어 여러 색을 좋아해 화려하기 그지없고, 순하게 생긴 얼굴에는 미간 주름도 하나 없어 그저 무해하고 해맑은 사람인 듯하다.
그렇게 sns로 보이는 모습으로 충분히 잘 지내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그게 사실상 맞는 말임에도 부정하는 반응이 나타난다. 슬픈 상태를 400팔로워들한테 알릴 필요가 있나? 사실상 슬플 때는 사진을 찍지도 않고 업로드를 하지도 않지 않은가? 그게 한 달에 몇 번이든, 일주일에 몇 번이든 즐거울 때 웃고, 웃으며 사진을 찍은 피드가 쌓인 것뿐이겠지. 나는 혼자 외로이 고독사로 죽을 터이니, 모두 다 슬프고 우울한 나로부터 떠나가고 멀어지라고, 써 붙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매일매일 슬픈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도 떡볶이가 먹고 싶기도 하고, 힘이 되는 가수의 콘서트나 락 페스티벌을 다니고, 기분을 낼 수 있어!
그게 나다. 나의 활기찬 겉모습.
그렇게 언뜻 화사해 보이는 겉모습에 다가오는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다운되는 내 에너지에 본인까지 기운이 빠지거나 본인도 진지해야 하나? 눈치 보는 상황이 불편해 곧 거리를 둘 거라는 것쯤은 예상하게 된다. 또는 위태로운 나를 짓눌러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려 들이대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처음에는 나를 왜 좋아할까? 연민도 사랑이라는 말이 있던데 내가 불쌍한가? 생각했었지만,
그들도 그들의 낮은 자존감을 살려 버티기 위함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겪고 나니 적당한 낌새로 알 것도 같다. 이를테면, 나를 언제 봤다고, 자신의 슬픔 카드를 까 보인다. 가정사.
'나 굉장히 안타까운 상황을 가졌어. 비슷한 그늘이 보이는 너라면 날 위로할 수 있을 것 같아. 위로해줘.' 그럴 때면, 나는 내 슬픔도 감당 되지 않아 버티는 중인데, 어깨가 무거워져 뒷걸음을 치게 된다.
슬픈 티를 내지 않았음에도 내게 슬픔이 보이는 것인가?
슬픈 사람들끼리 부둥켜 안고 울면 슬픔이 사라질까?
미안하게도 아직은 누군가에게 공감해 주고 위로해 줄 여유가 없는 것 같다.
한때 나를 다독였던 책에서, 슬픔은 전부가 아니라 부분이라고 했지만, 부분인 것은 나의 sns 단면 속 기쁨이고, 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여전히 슬픔이다.
태안반도에서 만조의 고립을 희망했지만, 거리상의 이유로 차선, 당진을 목적지로 찍고,
행복이나 사랑이 내 것이라고 맘 편히 맞이해 본 적이 없어서, 받는 사랑이 도대체 믿기지 않아 온몸에 알레르기라도 일으키듯 거부해버리는 나는, 혹여나 누군가, 아마도 같이 지내고 있는 룸메이트가 따뜻한 미역국이라도 끓여 줄까 봐, 잠에서 깨어났다는 티를 내지 않고, 신발을 신을 때 쯤 “어디 가?”라고 묻는데, “바다 보러!” 한마디 남기고 도망가듯 부랴부랴 나와서 끈질기게 붙어있는 내 오랜 벗, ‘슬픔’과 작별하고 싶어, 자우림의 <슬픔이여, 이제 안녕>을 반복 듣기 하며, ‘제발 헤어지자. 아니, 헤어질 수 없어! 그래도 헤어져야 해. 아니, 못 놓아.’ 또한 반복 되뇌어 발버둥 치면서 텅 빈 도로 위를 달리던 생일 아침.
왜 이렇게 생일날 아침부터 못 견딜 만큼 슬픈 기분이 드는 걸까?
전날 밤 11시 반쯤 서프라이즈로 찾아온 친구들을 보고서도 환하게 반겨주지 못했다.
물론, 축하 사진과 영상은 해맑게, sns 프로답게 잘 남겨두었지만 말이다.
내 생일날은 일을 해야 돼서 생일 전날 저녁을 먹자고 했던 그와의 약속 알람이 울리자,
그 약속이 말없이 취소되었음을 다시 한번 새겨져서 일까?
사실상 그가 약속을 앞두고 헤어짐을 말한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톡을 읽지 않는 미세한 전조증상 후에는 반드시 그만하자는 말이 도착했다.
당시에는 바빠서 톡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내 불안이 곧 정답인 것처럼 빗나감 없이 이별이 결론으로 돌아왔다. 크리스마스, 연말 공연, 전시 등 데이트 일정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따뜻한 사람이 되어주겠다고 말 한지 48시간은 지났었나?
어쩜 그렇게 세상은 차갑고 외로운 곳이라고 잘 느껴 보라는 듯, 특별하다면 특별한 날마다 극단적이게 나를 부스러기로 만들어 밀어내고 비련의 주인공 자리를 내어주는 걸까?
직접 얼굴을 보며 투닥투닥 싸우는 것도 아니고, 수화기 너머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목소리로 그동안 쌓아온 서운함을 말하는 걸까? 우선의 상황을 회복시켜보고자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어느 순간 나도 어디서 어긋난 건지, 속을 알 수 없는 혼란에 지쳤는지 통화가 끊긴 소리와 함께 폰을 던져 버렸다.
물론, 푹신한 침대 위로.
뭐가 그렇게 서운할까? 그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여서 서운하다고 했지만,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였기에 이해하려 했고, 이해되지 않는 것도 한 번 더 참으며 미안하다고 말했는데... 아무리 다정한 말투를 썼어도, 그것은 곧 나에게 지키지 못한 거짓말이 되었고, 결론적으로 결정권을 가지고 내게 그것도 3번이나 헤어짐을 안겨줬다.
예전에 스쳐간 비겁하고 볼품없는 어느 인간이 ‘세상의 모든 달콤한 것은 거짓’이라고 일러줬는데,
나는 속고 또 속고, 달콤함에 늘 속아서 내놓은 전부가 찢어 질대로 찢어지면, ‘그래, 거짓이 맞다,맞아!’ 를 재차 확인한다. 사랑에 믿음이 없어 의심하고 견제하는 내가 안타깝고, 그러다가 전부 믿고 잃어버리는 내가 안타깝다. 나는 단지 다정한 게 좋고, 달콤한 게 좋고, 따뜻한 게 좋다.
당연한 건가? 사실은 사랑을 능숙하게, 관계를 좁혀 이어갈 줄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얼마 전 그 이별이 생일날 아침부터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아니다.
신기할 정도로 생일이 되면, 표정관리가 잘 안될 만큼 시무룩해진다.
기억에 남는 생일의 장면을 꼽아보자.
초등학생 때, 초대받은 친구들이 우리 집에 미리 와있었고, 한 명의 친구가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찾지 못하고 전화를 해서 밖으로 배웅을 나갔더니, 나를 많이 괴롭혔던 남자아이가 꽃다발은 들고 서서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누나들 말에 속아 잘못 사 왔다며 멋쩍어 하던 게 생각난다.
이 기억을 봐서는 생일파티를 아예 안한 건 아닐 텐데...
고등학생 때였다. 친구가 나를 앞세워 빈 실기실 문을 열었는데, 불 꺼진 실기실 한가운데 촛불이 켜진 케이크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걸 보고 누군가가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구나 아차 싶어 문을 닫았다.
나를 앞세워 데려온 친구도, 실기실 어둠 속에 숨어있던 친구들도 내 행동에 당황해 서프라이즈는 허무해졌다. 아주 자연스럽고도 당연하게 내 생일 서프라이즈일 거란 생각은 못 했던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 생일 축하받기에 단념되어 왔던 걸까?
이후, 쉬지 않고 연애를 해왔기 때문에 맛있는 식사와 케이크, 선물을 받았을 것이다.
기억 남는 몇 가지, 2년 사귀면서 두 번의 선물이 같은 브랜드의 비슷한 물건에, 영화 한 번을 같이 보러 간 적 없는, 데이트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한테 연인의 생일 선물도 형식적인 것이구나 성의 없음에 실망한 적이 있다. 생일들을 떠올리다 보니, 아주 감동적인 생일을 보냈던 게 생각났다.
20대 중반, 단체 프로젝트로 서울 근교에서 숙박을 하며 지낸 적이 있었는데, 연락도 없이 그곳으로 기타를 메고 찾아와 준비해온 재료로 월남쌈을 해먹고, 쑥스러워하며 노래를 개사해서 불러주던 멋진 연인이 있었다. 이 감사를 잊지 말자. 그 말고는 하루 종일 일을 하며 생일을 보낸 적이 많았다.
거슬러 그날 밤, 그러니까 올해 생일 전날 밤 11시 반쯤 인터폰이 울렸고, 손을 흔드는 친구들의 방문에 머리로는 감동하고 고마워해야 하는 상황인데, 미소를 짓고 분주하게 배달 음식을 테이블에 세팅했지만, 감동의 기분이 들지 못 했던 거 같다. 게다가 내 생일을 이유라고 와서는 왜 다른 친구의 새로이 시작된 연애 담을 듣고 있어야 하는지, 또 다른 친구의 하품을 하며 남은 음식량으로 언제 자리에서 일어날지 확인하는 모습이 보이는지,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형식적인 축하를 해주러 온 게 조금은 이해되지 않고, 이 정도도 감사를 모르는 거라고 스스로를 탓해야 하는지, 화기 애매한 시간 속에서 불편함과 서운함을 느꼈다. 이럴 때면 기분이 얼굴에 드러나는 나로서는, 능숙하게 표현하고 대처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사실 나는 헤어진 연인과 함께 하지 못한 슬픈 생일에 젖어, 아무래도 미련하게 혹시나 하며 기다리던 사람이 따로 있어서였는지, 그 빈자리를 대신해 준 친구들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게 조금 부끄럽다.
성향 차이겠지만, '마음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러 온 거면 그냥 안와도 돼.'라는 생각을 했고, 이런 마음이 미안해서 다음 해부터는 서프라이즈를 하지 못하게 미리부터 혼자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첫 번째는 혹독하게 한라산을 가야겠다.
아무쪼록 찾아온 친구들이 집을 떠나고, 함께 살고 있는 친구가 좀 더 편해서인지 급 신경질이 났다.
“내가 할게. 설거지.” 예민한 상태로 피로감이 몰려왔고, 식탁과 주변을 치울 에너지가 없었다.
그냥 묵묵히 서서 설거지를 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나와 어긋나, 내 생일이니까 본인이 설거지를 하겠다며, 룸메이트와 짧게 고집이 오갔다.
아, 스트레스. 신경질이 밖으로 내보이기 전에 얼른 내 고집을 꺾어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식탁 주변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 빨래도 꺼내야 해!” 설거지를 하느라 손을 쓸 수 없는 룸메이트의 추가된 말에 한숨이 새지 않게 애썼다. “어..” 이런 게 바로 나를 떠난 예민했던 연인이 말한, 배려의 코드가 맞지 않는 경우구나. 신경질적이었던 그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친절하게 나를 배려한 룸메이트를 탓하는 게 아니다. 내가 고의로 그를 힘들게 한 게 아니었던 것처럼.
말을 해주면 좋잖아. 과연 좋을까?
나도 마찬가지지만, 상대의 배려에 그건 날 위한 배려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가족이나, 친구들에 비해 예민한 게 맞지만, 주변에 이런 나를 이해해 줄 만한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게 조금은 숨 막히고 외로운 기분이었다. 그래서 자꾸 예민하고 날카로워 작은 일에 스트레스 받아 마음이 닫혀있는 사람을 만나면, 이해받을 수 있을 것 만 같은 기대감에 끌리는 지도 모르겠다.
헤어짐을 3번 안겨준 그 친구는 늘 서운함을 말했고, 나는 그 포인트를 이해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다.
나보다 더 예민한 그와 지내면서, 잊고 있었지만, 나는 예민한 사람이 맞았고, 설거지를 대신 해 주는 게 아니라, 설거지를 하게 해주는 배려가 배려라고 생각하는, 이처럼 나보다 훨씬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을 만나면, 그만 사랑에 빠져버려 신경질에 치이며 나를 잃어가겠지. 하지만 나랑 맞을 어느 적당한 정도의 예민함과 예민함을 아울러 줄 수 있는 아량까지 넓은 사람을 만나면 좋을 것 같다.
결국 나는 억지로 웃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고, 진심이 중요한 사람이다.
사람도 없는 당진 바닷가 여행에서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흘러 흘러 순수하게 깎여 제멋대로인 돌멩이들의 매력에 빠져 하나씩 주우면서, 돌멩이를 줍던 엄마를 떠올렸고, 사회를 살아가는데 아무짝에 도움도 안 되는 순수한 그대로와 진심을 좋아하는 스스로에게 '나는 왜 이 모양인지' 답답하면서, 엄마를 똑닮은 딸이라는 이유라면 그것 또한 아파서, 버리지도 못할 쓸모없는 돌멩이를 애초에 의미 두지 말자고 바닷가에 그대로 남겨놓았다. 그리고 너무나 보고 싶었다. 엄마도, 나를 많이 사랑해 줬던 그도.
그렇게 조금 더 생각해 본다. 생일이 되면 슬퍼지는 이유.
같이 보내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는데, 정작 곁에 있지 않고 같이 보내고 싶다고 표현하지도 못하는 나.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하게 되는 게 너무나 무서운, 자라지 못한 어린 마음에 지독하게 밀어내고 거부하며 제발 하나도 신경 안 쓰이는 아무 날도 아니었으면 바라는 내 생일이, 사실은 너무나도 사랑받으면서 특별하게 보내고 싶다고, 누구보다 나를 애착하고 나의 생일에 진심이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음에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굴려 애가 타서 슬프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 도망가 혼자 보낸 하루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고, 더해 내가 순진하고 귀여운 탓인지 귀여운 선물을 잔뜩 받은 하루였음을 받아들이며 한 뼘 성숙해진다.
다음 생일은 한라산, 그다음 생일은 또 어떻게든 보내며, 언젠간 스스로도 환영해 주고 축하하고 사랑해 줄 수 있는 날이 오길,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함께 하고 싶다고 표현할 수 있길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