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리메이크)

돌고 돌아 수렴하는 것은 사랑

by Quasar


"A little older, a little wiser, but happy to see you"
조금 더 늙고, 조금 더 현명해지겠지만, 널 만나 반가울 것이다.


인터스텔라 내의 등장하는 브랜드 교수가 읊는 시의 한 구절이다.


왜 이 구절을 가져왔을까?


보통 사람들이 인용하는 구절은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어두운 밤을 쉬이 받아들이지 마세요.


인대 말이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조금은 장황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이 영화는 겉으로는 SF과학 영화지만 그 속은 ‘가족의 사랑’이라는 굉장히 인문학 적인 주제가 내부를 채우고 있다.


때문에 이 ‘인터스텔라’라는 영화를 끝까지 본 몇몇에겐 이런 질문이 생길 것이다.




“그럼 브랜든은?”




단순히 이후 처우에 관한 논쟁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브랜든의 대사 중 하나인


“사랑은 관측할 수 없지만 강력하죠”


라는 대사에 집중하여 나온 의문일 것이다.


자, 여기서 우린 이 영화에서 집중해야 할 키워드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사랑’이다.


‘앵? 너무 당연한 거 아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 이들을 위해 좀 더 디테일하게 말하자면

‘누가 사랑을 가졌는지’를 보면 이 영화의 내용이 깔끔하게 풀린다.


왜 쿠퍼가 선택돼었는지, 왜 브랜든과 쿠퍼만 살아남았는지, 쿠퍼는 왜 브랜든을 살리러 가는지 등등.. 그리고 도일이랑 로밀리는 왜 죽었는지.




이 영화에서 사랑을 가진 존재는 딱 4명이다.


쿠퍼, 머피, 브랜든, 톰


장인어른인 도널드도 사랑을 보이지만 사실상 엑스트라에 가까운 인물이라 재외 한다.


우린 여기서 ‘사랑의 형태’에 대해 집중해 보자.


쿠퍼와 머피, 톰은 가족 간의 사랑이다. 하지만 머피와 톰은 서로 사랑의 방식이 다르다.


머피는 끝까지 잊지 않고 쿠퍼를 찾아내지만, 톰은 쿠퍼를 보내주고 그의 유품에 미련을 가진다.




아마 톰이 자신의 집에 집착을 했던 것도, 농장을 소중히 여기고 쿠퍼의 트럭을 타고 다닌 것도 그 미련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톰의 부분은 놀란 감독의 단점 중 하나인 등장인물의 소격화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지만,


난 오히려 톰의 퇴장이 이 영화의 메시지를 새롭게 구축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저 ‘잊히지 않는 가족의 사랑’에서 끝나는 게 아닌.


‘영속적인 인간의 사랑’에 대해 말이다.




브랜든의 사랑은 형태가 다르다.


그는 자신의 애인인 에드먼즈를 사랑하고, 그를 다시 본다는 생각에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던 인물이다.


또한 브랜든은 이 영화에서 유일무이하게 ‘범 인류적인 사랑’에 대해 제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사랑은 인간이 발명한 게 아니지만 관측이 가능하고 강력하죠”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에요”




이 시점에서, 영화 내의 사랑은 관점이 바뀐다.


바로 관측은 불가능하지만 영화를 구조적으로 관통하는 ‘중력’처럼, ‘사랑’이 영화를 강력하게 관통하기 시작한다.




밀러 행성에서 만의 행성 초입까진 쿠퍼 일행의 시점이 주요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머피가 속았음을 깨닫고 전송한 무전을 쿠퍼일행이 받으면서부터 사랑은 등장인물들을 관통한다.




쿠퍼는 만과의 결투에서 가족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살아 나왔고, 이후 도킹조차 가족이란 일념 하나에 성공시켰다.


이후 태서렉스에서도 쿠퍼는 사랑에서 기반한 믿음으로 소통한다.




머피가 쿠퍼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시계는 고물이 됐을 거고, 쿠퍼가 머피를 믿지 않았다면 그곳에선 아무것도 못했을 것이다.




상대성 이론의 ‘사건’이 뭘 의미하는지 아는가?


전문적인 이야기 다 넣어두고 쉽게 요약하자면, 그 시공에선 어떤 짓을 해도 필연의 사건이 발생한단 뜻이다.


시공의 구조 상 일어날 수밖에 없는 기이한 현상, 그것을 상대성 이론에선 ‘사건’이라 부른다.




여기서 하나 더 추가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인과因果이다.


실제 과학에선 말이 안 될 수도 있지만, 뭐 영화 해석이니깐.


그냥 재미로만 봐주길 바란다.




테서랙스엔 왜 쿠퍼가 들어가야 했을까? 그리고 테서랙스는 왜 머피의 방이었을까.


이 중 하나라도 틀어지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은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쿠퍼가 아닌 다른 사람이 들어갔으면 테서랙스가 달라졌을까? 아니면 쿠퍼가 머피를 신용하지 못했다면 브랜든 교수 같은 다른 사람이 등장했을까.


하는 재미있는 의문 말이다.


난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생각한다.


머피와 쿠퍼의 일은 인과율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고.




아까 상대성 이론의 사건은 필연의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그 필연은 무엇으로 이루어질까?


난 영화적 관점으로 그것이 ‘인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인과는 무엇으로 구성되는진 이쯤 오면 눈치챌 거라 믿는다.




그래, 사랑이다.


사랑은 영화 초반부터 조용히 깔리기 시작해 머피의 속았음을 알리는 무전을 시작으로 영화를 강하게 관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앤딩부까지 이어지며 형태를 달리한다.




바로 그저 가족을 위한 사랑뿐이 아닌, 인간을 향한 ‘영속적인 사랑’을 말이다.


이 말에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쿠퍼가 브랜든을 구하러 가는 건 그냥 동료여서 그런 거 아니야?”


맞다. 그 말엔 틀린 것이 없다.




단, 하나 놓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까 초반에 사랑을 가진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그곳엔 브랜든도 있었다.


처음으로 범 인류애적 사랑에 대해 말했던 인물.


하지만 역설적으로 고립되어 로봇과 함께 누군가 구출해 주기 전까지, 혹은 죽을 때까지 그 행성에 외롭게 살아야 하는 처지.




사랑을 가진 브랜든은 고립되었다.


그렇기에 머피가 죽기 전 말했던 “브랜든에게 가세요”라는 말은 단순한 유언이 아니다.


머피도 사랑을 가진 존재이기에, 꺼져가는 자신이라는 사랑 대신 새로운 사랑을 가진 존재를 구하러 가라는 뜻일 것이다.


때문에 앤딩에서 쿠퍼가 구하러 가는 것은 그저 동료가 아니다.


범 인류애적 사랑을 구하러 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쿠퍼의 모습은 영화에서 말하는 ‘사랑을 찾는 인류’에 딱 부합하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쿠퍼는 그녀를 구하는데 성공했을까?


음.. 오피셜로 나온 건 없지만,


난 그들이 ‘만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다. 그야




"A little older, a little wiser, but happy to see you"
조금 더 늙고, 조금 더 현명해지겠지만, 널 만나 반가울 것이다.


라는 대사가 있으니 말이다.


사랑이 없는 로밀리와 도일은 잃었지만, 사랑을 가진 그 둘은 결국 에드먼즈 행성에서 만났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에로스적 사랑이라곤 생각 안 한다.






여기서부턴 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어두운 밤을 쉬이 받아들이지 마세요.
Old age should burn and rave at close of day;
노년은 날이 저물수록 불타고 포효해야 하기 때문이니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꺼져가는 빛을 향해 분노하고, 또 분노하세요.


등장인물들은 어두운 우주에 저항한다.


하지만 이들은 분노하지 않는다.


브렌든 교수가 읊는 시와는 다르게 사랑을 가진 4명의 인물 중 메인 3인방은 꺼져가는 빛을 향해 분노하고, 또 분노하지 않는다.


일시적인 분노를 가지다가도 이내 정신을 찾는다.


그리고 그들이 끝내 찾은 감정은 사랑이다.




그렇다면 왜 놀란은 저 시를 채택한 것일까? 해당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라는 시는 비관적이고 진취적인 내용이다.


등장인물들은 저 시와는 좀 다른 엔딩을 맞이하는데 말이다.


당장 이렇게 놓고만 보면 영화 속 내용과 앤딩을 일치시키는 놀란 감독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시는 등장인물의 행적을 말하는 시가 아니다.




바로 우리에게 말하는 시이다.


“우린 답을 찾을 거야, 늘 그랬듯이”라는 앤딩의 대사와 함께 말이다.




인과는 사랑이라는 강력한 힘으로 움직이지만


캄캄한 우주 같은 세상은 너의 빛을 꺼트릴 태니 그에게 분노하고, 또 분노하여 저항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마치 등장인물들이 우주에 저항하듯,


시간에 저항하듯,


불가항력적인 것에 저항하여 성취를 이루어낸 모습을 보여주곤 ‘할 수 있어’ 라 말하는 것이 이 영화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라는 시가 언제, 어디서 나왔는지 보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이다.


처음엔 브랜든 교수가 인듀어런스 호를 떠나보낼 때,


브랜든 교수가 죽기 전,


두 번째는 만이 쿠퍼의 핼맷을 깨고 시를 읊어 줄 때 세 번 나온다.


신기하게 모두 다른 의미로 작동한다.




첫 번째엔 여정을 기원하는 의미, 두 번째엔 죽기 전 마지막 위안, 세 번째엔 만에겐 자기 위안이자 쿠퍼에겐 극복의 장치로써


이 시는 다양한 구조로 작동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다양한 형태로 작동한다.


누군가 위로로, 누군가 멋진 구절로, 누군가 피로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결국 여기서도 결과로 수렴하는 것은 ‘사랑’이다.


‘그들은 이제 희망을 찾아 우주로 간다. 그리고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라는 시놉시스의 대사처럼 그들은, 그리고 감독도 희망을 찾다가 결국 사랑이란 결론을 내려버렸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참 특이하면서 멋진 영화이다.


개봉한 지 12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뇌리에 박힌 장면들이 생생한 작품인 만큼


그 메시지도 여전히 남아있다.




겉으론 SF우주 영화이지만


사실은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는 영화.


인터스텔라이다.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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