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관계로 조립한 꿈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영화.
영화의 가장 큰 주제라 해야 하나, 아무튼 한 줄 요약을 하자면 이런 내용 일 듯하다.
‘부서진 가족을 딛고 꿈으로 보상받는 이야기’
개인적으론 샘이 꿈을 ‘이뤘다’의 느낌보단 ‘보상받았다’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기타 작가나 감독 개인의 이야기를 다룬 전기 소재 중에서도 인상 깊은 연출법이라 생각하는데.
보통 시작 > 꿈으로 가는 방향의 작품들은 ‘인물이 어떻게 성장하고 꿈에 다가가는지’에 대해 그린다.
하지만 파벨만스는 그 과정을 ‘인물이 겪는 인생의 고난 속에서 오로지 영화만이 그의 유일한 빛이었다’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니까 다가가는 이미지가 아닌 붙잡고 버티는 이미지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독특하고도 현실적인 무드는 ‘주인공이 오로지 꿈을 보고 버틴다’라는 것에서 기인한다.
샘은 수많은 고난을 겪어도 쓰러질 뿐 꺾이진 않으며 그의 꿈이었던 영화 하나만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는 캐릭터이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가 없다면 샘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불안한 사람이기에.
샘의 인생을 그린 이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앤딩까지 가며 그와 동일한 심정으로 변모하게 된다.
바로 제발 샘이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같이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간 샘이 겪어온 인생사 자체가 앤딩에 등장하는 존 포드감독에게 무개감을 채워주기에, 포드 감독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우리에게도 마치 면접관의 질문처럼 작용한다.
그리고 샘이 감독에게 조언을 듣고 나오는 길에 기뻐하는 샘을 비추며 ‘지평선’을 아래로 내리는 카메라 연출은.
미래의 샘이 감독이 되었다는 것을 은유하는 새련된 연출이라 생각한다.
‘Picture Maker’ 존 포드 감독의 말대로 픽쳐 메이커인 그의 방엔 그림이 가득했다.
실제 스필버그가 들은 것도 픽쳐 메이커였다지만, 난 영화 내적으로 왜 사진대신 그림이 감독의 방에 걸려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니까, 왜 감독은 샘에게 그림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으냐 질문한 이유말이다.
이것은 영화 초중반 모두 종종 등장하던 사진과 엮어서 설명해야 하지 않나 싶다.
샘의 아빠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 가족이나 다른 것을 찍는 장면이 영화에서 나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공통점 아닌 공통점은 ‘가족이 점점 분리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사진을 찍는 순간이 분리를 시키는 것이냐? 하면 아니었다.
사진의 역할은, 왜곡된 사실을 찍을 뿐이었다.
아빠까지 다 찍힌 가족사진 같은 것. 그러나 이후 영화는 지속적으로 아빠와 가족들이 소외됨을 보여주고 그것은 샘의 카메라에 담긴다.
이후 앤딩 부분에서 아빠가 가지고 있던 가족들의 어릴 적 사진도 이런 아빠의 캐릭터를 잘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즉 사진은 아빠가 가진 미련이자,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형태는 많이 서툴지만.
그 편린이라도 찍어 가지고 있으려는 것이 아빠라는 인물인 듯하다.
그리고 샘은 그와 반대되게, 영화 내 진실을 찍는 카메라를 들고 있다.
‘영화는 1초에 사진 24장을 보여주는 것이다’라는 아빠의 말처럼 영화의 재료가 되는 영상들은 사진이 찍지 못하는 다른 공간과 사건들을 찍고 보여준다.
그리고 캠핑장 영화를 찍은 때가 샘이 엄마의 바람을 목격한 시간이었다.
왜곡된 진실을 찍는 사진과 달리 영상은 진실을 찍는다. 그렇다면 그로 편집되는 영화는 어떨까?
영화는 샘의 의지에 따라 그려진다.
때로는 기발하고 웃긴 촬영현장이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전쟁영화로, 불륜 현장이 화목한 가족 캠핑으로.
하지만 저 불륜 현장 영상은 치밀한 증거로 재편집되어 샘이 바람의 진실을 알게 하는 역할도 하였다.
그러니 샘은 그동안 진실을 이용해 생각과 꿈을 그렸다.
때문에 영화 말미에 존 포드 감독이 말하는 픽쳐 메이커와 조언들은 그간 샘이 가진 영화감독으로서의 방향성을 압축해 놓은 말들이라는 것이다.
작 중에서 여러 의미로 엄청난 인물인 엄마에 대해서도 다뤄볼까 한다.
샘의 엄마에 대한 인상은 이러했다.
‘최악이지만 샘을 사랑해서 더 최악이다.’
엄마가 아들을 사랑하는 게 무슨 죄이냐 말할 수 있겠지만 난 샘의 엄마인 이 베니라는 캐릭터의 애정표현이 많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애당초 애정표현인지 가스라이팅인지도 헷갈리지만. 베니는 늘 자신의 감정에 못 이겨 주변인들을 모두 힘들게 만들곤 했다.
그 대주제는 ‘사랑’이다. 하지만 과연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는 의문이다.
불륜 상대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샘에 대한 사랑이 모두 같은 종류의 것인가.라고 한다면 나는 당연히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샘은 그 속에서 엄마의 사랑을 가장한 끝없는 족쇄에 시달린다.
그 족쇄는 결국 앤딩 후에도 풀리지 않은 듯하다.
영화에서 엄마를 묘사하는 방식이, 단순히 나쁜 사람 정도가 아닌 뒤틀린 애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모든 가족이 그러하다. 불륜 상대를 재외 하면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는 미워할 수만은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웃기게도 그 사람들처럼 묘사되는 아빠는 단순하며, 엄마는 감정적이고, 일진들은 충동적이다. 전반적으로 일차원적인 요소가 강하게 부각된다.
하지만 이들은 계속 일차원적으로 남진 않는다. 이들은 모두 반대되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아빠는 단순하게 헌신적이고, 엄마는 감정적이게 사랑하며 일진은 충동적이지만 은혜를 아는 ‘사람’이다.
이것이 이 영화에서 캐릭터를 묘사할 때 사용되는 연출법 중 하나인데, 바로 주인공인 샘을 재외 하면 캐릭터성의 키워드가 2개 이상 나오지 않는단 것이다.
하지만 그 2개로 극과 극의 대비를 주어 인간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럼 그 중앙의 샘은 어떠냐?
샘은 복잡한 사람이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엄마를 용서할 순 없으며 착한 성격을 지녔지만 사회성이 모자라 실수를 많이 한다.
동생에게 ‘이기적이야’라는 말을 듣기도 했으니, 하지만 동시에 우유부단함도 느껴지며 엄마와 아빠의 장단이 고루 보이는 캐릭터이다.
그러나 샘은 처음부터 이러지 않았다.
어렸을 적엔 단순히 영화를 좋아하는 아이에서 가족의 불륜을 겪으며 왜곡된 사랑에 대한 고뇌를 하게 되고, 이 두 가지 요소로 인해 샘은 사회성이 부족한 소년으로 자라게 되었다.
그 사회성이 부족한 소년은 많은 것을 겪는다. 인종차별, 첫사랑과의 연애 그리고 이별, 오묘한 우정 이야기까지
그렇게 수많은 역경을 겪으며 모든 주변이 부서진 샘은 그 파편을 모아 ‘Picture Maker’라는 꿈을 탄생시켰다.
모든 꿈의 여정이 바르고 행복하지만은 않다고 말해주는 영화.
몰아치는 현실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통을 겪는 한 소년의 이야기이자,
결국엔 꿈을 이루지만 주변의 현실은 다 부서진 채 새로운 삶을 맞이해야 하는 쓸쓸함을 보여주는 새련된 앤딩.
부서진 관계로 조립한 꿈에 대한 영화.
파벨만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