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달해 주었다.”
"Prometheus stole fire from the gods and gave it to man.”
“그 죄로 바위에 묶여 영원히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게 된다."
“For this he was chained to a rock and tortured for eternity."
영화의 첫 대사이자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작은 이야기이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추락신화 이야기,
이 이야기엔 수많은 장치와 서사들이 숨겨져 있다. 1부 핵분열과 2부 핵융합, 그리고 오피의 삶까지.
이 영화에 숨겨진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우선적인 열쇠는 챕터에 있다. 1부 핵분열과 2부 핵융합 말이다.
핵분열과 핵융합의 미장센 적 차이는 무엇일까?
영화를 본 모든 이들은 다 알 것이다. 바로 컬러와 흑백이다. 하지만 또 다른 두드러지는 차이점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관점의 차이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무슨 뜻이냐면, 흑백은 곧 스트로스의 시선이고 컬러는 곧 오피의 시선이라는 뜻이다.
물론 주요 타임라인과 상대적으로 부가적인 타임라인을 분리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이보다 더 주요하게 봐야 할 ‘이 영화는 어떠한 구조인가’를 파악하는 대엔 영화 내에서 흑백과 컬러가 언제 등장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생각한다.
그러니 이것을 전제로 천천히 이 영화를 톺아보자.
오피는 상승과 추락을 차례로 겪는 인물이다. 동시에 오피의 인생을 따라가는 영화 또한 그의 그래프를 동일하게 따라간다.
가젯 실험 전 까진 폭발적으로 터지듯 올라가던 그의 위상은 폭탄이 터지며 정지하게 되고,
그 시점부터 오피는 천천히 추락하게 된다.
이 추락은 단순 그의 위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내면 또한 천천히 추락하여 마지막엔 바닥까지 가라앉고 만다.
그리고 그 내면엔 진과 키티가 있다.
오피는 삶에서 수많은 이들을 만났지만, 정말 특별했던 사람이 몇 있었다.
오피를 하이젠베르크와 만나게 해 준 이지.
멘헤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해 준 로랜스.
그의 나락길로 밀칠 푹스.
그리고 그곳에 가시를 깔아놓은 스트로스와
첫사랑 진,
아내 키티까지.
이처럼 오피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삶의 궤적이 변화했었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만남은 곧 변화이다.
때문에 언제 어디서 누굴 만나고 무슨 대화를 나누는 지를 본다면 앞으로의 내용이 유추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게 단점이냐? 하면 하단에 서술할 이유 때문에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남’이란 요소엔 요점이 하나 있다.
바로 흑백과 컬러가 다르게 작용한단 것이다.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난 좀 다르게 생각한다.
이 요소는, 두 주인공인 오피와 스트로스를 갈라놓는 정말 중요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스트로스의 흑백파트에서의 만남은 컬러의 그것처럼 ‘정해진 미래’로 작용하지 않는다.
‘예측 불가의 미래’로써 작동하며, 이는 흑백파트의 청문회에 불려 나온 힐의 증언으로 알 수 있다.
이 지점이 재미있는 것이 같은 과학자 자문위원으로 초대된 텔러는 이미 자리에 참석한 상태로 등장한다.
그는 흑백 파트 내내 어딘가로 이동하는 모습을, 그니까 본인이 스스로 일어나 프레임 밖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힐은 다르다.
힐은 프레임 밖에서 등장해 영화 내에서 청문회 위원들과 ‘만난다’.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 예측불허의 ‘스트로스 스캔들’이다.
그렇기에 컬러는 예측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생각한다.
그 부제인 ‘핵분열’이라는 단어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흑백이 예측 불허인 것도 부제와 관련 있다. 부제가 ‘핵융합’이니 말이다.
조절 가능한 선에서 임계질량을 넘기는 핵분열과,
조절이 불가능한 무수한 폭탄세례 같은 핵융합.
이 부제는 오피와 스트로스에게 딱 맞아떨어지는 부제인 것이다.
자, 그럼 다시 오피에게로 돌아와 보자.
당신은 오피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누구는 냉혈한, 누구는 불쌍한 사람, 누구는 비운의 천재 등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오피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사랑이 많아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아마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그야 오피는 작 중 내내 무언갈 직접적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오피의 사랑은 방식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의 방식은 노력하고 헌신하는 것이라 본다.
산후우울증에 걸린 키티 대신 채면을 구기며 아이를 맡아달라 하던가,
미국에 온갖 험한 취급을 다 당하면서도 ‘나라를 사랑하니깐요’라는 대사 한마디로 이 모든 고난을 일축하는 등.
그의 사랑은 정말 투박하지만 그렇기에 강력한 것이다.
하지만 투박했기에 그는 결국 예언이 틀린 선지자가 되고 만다.
오피가 주장했던 것은 정말 진취적인 사상이었지만, 오히려 진취적이었기에 당시엔 받아들여질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세상은 ‘폭탄의 아버지’를 원했지 ‘평화의 수호자’를 원치 않았으니깐.
하지만 오피는 과연 선하기만 한 사람일까? 그리고 오피에 편에 선 모든 이들은 다 선인일까?
이건 딱 잘라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선과 악의 경계를 굉장히 모호하게 전달하고 있다.
때문에 흑백 논리처럼 누가 선인이고 누가 악인인지를 가릴 수 없다.
오피는 핵을 발명해 수십만 명을 죽였고, 그에 동참한 그로브스와 로렌스는 억울한 청문회에 시달리는 오피를 끝까지 변호하지 못했다.
이지는 끝까지 도와주었지만 ‘과학이 살상무기에 사용되는 것이 싫다’라는 말과 달리 이후 멘헤튼 프로젝트의 자문으로써 오피를 도와주었다.
이처럼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모호성’이 두드러진다. 때문에 이 성질은 우리에게 하나의 결론을 내어준다.
바로 이들이 그저 등장인물이 아닌, 정말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그 당시 ‘실존 인물’로 보이게 만드는 효과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오피의 모든 면을 보여준다.
오피는 헌신적이고 순수했으며 자신의 사람들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는 불륜을 저지르고 대량의 사람들을 학살하는데 일조했으며 공산당과 연루된 불안정한 인생을 밟아왔다.
그 대가로 그는 노년에 청문회에서 심판을 받게 되고 그 과정은 스크린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여기서 영화는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오펜하이머는 이러한 사람입니다. 당신이라면 그에게 보안인가를 내어주겠습니까?”
정답은 각자마다 다를 것이다. 아님 없을 수도 있고.
하지만 등장인물들은 이에 대한 각자의 답을 내렸다.
오펜하이머의 삶을 뒤집은 두 만남이 있다.
진과 키티.
이들은 사랑이란 이름 아래 그의 마음을 뒤흔들어놓기도 하고, 헌신적 사랑으로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역시 ‘동반자’의 역할을 누가 맡았느냐 일듯 하다.
진은 키티에 비해 더 열렬하고 오피의 마음을 뒤흔든 사람이지만 그만큼 핵폭탄같이 불안정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오피가 진을 떠난 것은 단순 보안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은 오피의 동반자가 되어주지 못하기에 결국 오피가 그녀를 떠난 것이다.
대신 그 자리를 키티가 채웠다.
키티는 진에 비해 무미건조한 사람이다. 둘이서 스킨십을 하는 씬도 거의 나오지 않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에 푹 빠진 부부와는 거리가 먼.
상당히 건조한 부부이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의 강한 지지대이다. 특히 키티는 오피가 무너질 때마다 그를 일으켜 새우는 동료와도 같은 포지션이다.
때문에 사실상 영화의 후반으로 갈수록, 오피의 동료는 딱 둘 밖에 남지 않게 된다.
바로 키티와 이지.
그 둘만이 유일하게 오피의 보안인가에 대해 YES를 주장했으니 말이다.
특히 키티는 강력하게 의견을 밀어붙이며 오피가 공산당원이 아님을 어필했다.
그렇다면 ‘그로브스와 텔러는 동료가 아닌가?’라는 의문이 떠오를 수 있다.
좋은 의문이다. 자연스러운 것이고. 난 그에 대한 답을 이렇게 주고 싶다.
‘골든보이가 죽어서’라고.
많은 이들이 고등학교 친구들과 평생 갈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긴 힘들다.
마찬가지로 학창 시절 힘들었던 기억도 평생 따라다닐 것 같지만.. 글쎄,
정말 PTSD가 오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했을 정도로 힘든 정도가 아니라면 그저 지나가는 일 정도로 묻히기 마련이다.
아마 오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에게 멘헤튼 프로젝트는 참 인상 깊은 프로젝트는 맞았을 것이다.
그렇게 꿈꾸던 로스엘러모스와 물리학의 결합이라니, 그에겐 정말 멋진 일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수억 달러가 들어간 프로젝트를 진두지휘 해야 하는데, 자신이 잘못하면 그 돈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리니.
그에게 그날의 기억은 여러모로 강렬하면서도 깊게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피는 그만큼 죄책감에 시달렸다.
폭격에 성공했단 방송에도 전혀 기뻐하지 않고 착잡한 모습을 보였다. 이 시점부터, 그는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골든보이가 일반인으로 내려오는 계기가 발생한다.
그것이 트루먼과의 면담이다.
그곳에서 오피는 직접적으로
“You think anyone in Hiroshima, Nagasaki gives a shit who built a bomb? They care who dropped it. I did. Hiroshima isn't about you.”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사람들이 누가 폭탄을 만들었는지 신경이나 쓸 것 같소? 그들에게 중요한 건 누가 떨어트렸느냐요. 내가 했지. 히로시마는 당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소.”
라는 말을 듣게 된다. 스트로스의 말과는 달리, 이것을 시점으로 오피는 ‘폭탄의 아버지’란 이명을 내려놓고 평화의 수호자로서 수폭을 반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를 아무도 듣지 않았던 이유는 그 당시 정치적, 사회적 이슈도 있었지만
아주 간단하게 오피가 더 이상 모든 게 허용되는 ‘골든보이’가 아니게 되어서이다.
오피는 저 말을 들은 시점부터 철저히 일반인의 자리로 내려온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그의 천재성은 의도적으로 삭제시킨 듯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그의 고뇌와 묵묵히 버티는 모습만이 스크린을 채울 뿐이다.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듯, 마치 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처럼 말이다.
텔러와 그로브스가 오피를 떠난 이유도 그 때문이다.
텔러는 오피에게 끝까지 수폭 개발을 도와달라 요청했지만 오피가 허용하지 않아 사이가 틀어진다.
하지만 이는 영화 내적으론 오피의 심경 변화로 인한 거절이었겠지만,
영화 외적으론 일반인은 더 이상 그 영역에 참여할 수 없다는 표시가 된다고도 생각된다.
그로브스는 더 직설적이다.
그는 대놓고 오피의 보안인가 허용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더 안정적인 인물에게 자리를 맡겼을 것”
이라 대답했다.
그 이유 또한, 그가 죄를 지은 일반인이기 때문이다.
이지가 말했던 ‘예언이 틀린 선지자는 나락이야’라는 말과 같이,
오피의 예언은 이 사회엔 틀리지 않았지만 영화 외적으로 본다면 그저 일반인이 외치고 다니는 시위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앤딩부에 아인슈타인의 말이 더 힘을 얻는 것이다.
“And one day, when they've punished you enough, they'll serve you salmon and potato salad, make speeches, give you a medal. Pat you on the back, tell you all is forgiven. Just remember, it won't be for you. It will be for them.”
그리고 언젠가, 그들이 자네를 충분히 벌하고 나면, 자네를 불러 연어와 감자 샐러드를 제공하고, 연설을 하고, 상도 수여하겠지. 자네 등을 토닥이며 자네는 모든 것을 용서받았다고 할 걸세. 다만 기억하게. 그것은 자네를 위한 게 아니야. 자신들을 위한 것이지.
이 대사는 뼛속까지 ‘넌 골든보이가 아니야’를 짚는 대사이자, 그가 벼락을 훔쳐 몇십만 명의 사람을 간접적으로 학살한 죄를 되새기는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오펜하이머의 대답인
“알버트, 제가 그 계산 문제를 들고 찾아갔을 때 우린 말했죠. 어쩌면 파괴의 연쇄반응이 시작될 수도 있다고.”
“시작된 것 같아서요(I believe we did).”
는 오피가 가지고 있는 죄책감, 두려움 그리고 허망함을 모두 나타낸 복합적인 대사라고 생각한다.
그가 시작한 파멸의 연쇄반응, 그로 인해 정치판에 올라 죽을 때까지 가십거리로 소비되다 생을 마감한 오피의 삶.
이처럼 영화의 책임 소재는 분명하다. 이 영화는 절대 오피를 변호하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을 곧이곧대로 보여주며 우리에게 생각을 물어볼 뿐이다.
“당신은 오펜하이머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영화의 후반으로 가면 흑백파트가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그전까진 불 규칙 하지만 오피의 시선인 컬러파트 위주로 진행되던 영화는 점진적으로 변화한다.
그 스트로스의 시선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단순히 생각한다면 ‘오피를 미워하는 사람’이나 ‘나쁘고 욕심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난 스트로스를 좀 다르게 보고 싶다.
스트로스는 오피의 안티체제이다.
짧게 짧게 나오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우린 이 둘의 관계성을 유추할 수 있다.
부유한 집에서 자라 어릴 적부터 학계에 발을 들인 천재 오피완 달리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구두 수선공으로 성공한 스트로스는 매울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오피는 스트로스가 자수성가했단 이야기를 듣자 “우리 아버지도 자수성가했다”라는 말을 하지만,
자수성가한 사람과 자수성가 한 아버지를 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편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겪어온 환경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스트로스와 오피는 구조적으로 트러블이 나고 차이가 생기는 조합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을 가속화시키는 것이, 수폭이다.
스트로스 입장에선 오피가 기만을 한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좋은 집안과 좋은 머리를 가졌으면서 왜 국가 안보에 동참하지 않지?’ 같은 생각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피의 ‘맥주 농담’으로 터지고 만다.
난 단순히 스트로스가 망신을 당해서 오피를 나락으로 보내려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를 회상하며 스트로스는 이 대사를 한다. “천재가 모두 지혜롭진 않지.”
아마 초반의 스트로스는 오피에게 기대를 품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야 저 대사는 글귀로만 보면 비꼬는 말로 들리지만
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입으로 들었을 때 실망이란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스트로스는 작 중 내내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렇기에 그가 맥주농담을 계기로 삼은 것도 단순 감정이 상해서가 아닌, 그저 트리거였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여태까지 오피의 행보를 보면 스트로스에게 밉 보일법한 행보만 계속 보였으니깐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후반에 감정적으로 변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오피는 다시 원폭을 만들꺼고 후회하지 않을꺼다”라고 주장하지만
그 대사엔 일종의 실망감과 허무함도 꽤나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오피의 삶에 대해 “과학자들을 조종하려 했다”라던지, “자신의 명성을 이용하려 했다”라는 부분도 스트로스는 정말 그렇게 느꼈을 꺼란 생각이 든다.
그야 그는 원래부터 과학계와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강압적인 모습이 자주 비쳤기 때문에 유연한 생각들을 무시했을 수도 있다.
단순히 실망하고 분노한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측해 본다.
어쨌든, 다시 흑백파트 자체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흑백파트의 매인은 스트로스의 청문회이다. 이 영화는 두 청문회와 과거를 기점으로 시점이 바뀐다.
특이하게도 조도나 채광등으로 오피의 심리상태를 표현했던 컬러와 달리, 흑백은 그 연출의 특성상 동일한 연출이 굉장히 재한적이다.
대신 프레임을 통한 연출이 자주 등장한다.
이 파트에서 ‘만남’은 무조건 프레임 밖에서 안으로 등장하는 인물에게 주어지는 옵션이다.
위에서 말했던 힐 말이다.
또한 이 파트에서 대부분의 인물들은 프레임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때문에 화면 구성이 상당히 정적이지만, 놀란 감독은 이 공백을 빽빽한 대사로 가득 채워버렸다.
반대로 컬러는 구성이 비교적 화려하다.
정적이면서도 그 당시의 화려함이 묻은 컷들이 많고 특히 가젯 실험 땐 폭발을 바라보는 오피를 오로지 옆에서만 촬영한 것이 인상 깊었다.
위나, 측면 등 다른 컷이 있었으면 감정이 분산되었을 탠대 그러지 않고 하나의 축으로 쭉 이어지게 만들었다.
가젯 실험 장면은 폭발에 관해 말이 많지만, 개인적으론 ‘약해서 좋다’라고 생각한다.
이 장면에서 매인은 오피의 감정이다. 근대 폭발이 진짜 핵폭발처럼 웅장했다면 그게 살았을까?
버섯구름에 시선이 다 빼앗겨 오피의 감정이 잘 읽히지 않았을 것이다.
뭐 ‘오히려 그럼 더 감정이 살겠지’라 말하면 굳이 더 말하지 않겠다만.
어쨌든 가젯실험의 폭발은 딱 적당한 정도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블록버스터 같은 폭발이나, 디테일한 설정이 아닌 오피의 연대기니깐.
사운드 연출도 인상 깊었다.
정말 폭탄이 터지는 듯한 사운드에, 청중이 발을 구르는 크레셴도는 듣는 사람도 같이 조여들게 하는 멋진 연출이었다.
특히 소리를 완전히 재한하고 폭음처럼 갑자기 들려오는 환호성 파트는 오피의 정신상태를 사운드 적으로 정말 잘 표현해 냈다고 생각한다.
이후 롭과 대화에서 등장한 크레셴도 연출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물론, 그보다 눈에 띄는 것은 대사이다.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모두 다른 뜻으로 쓰이는 "Near Zero"나 가젯 실험 후 등장하는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라는 오피의 미래를 완벽히 예견한 대사.
상단에도 나왔지만 모두 다른 의미로 쓰이는
“You can lift the stone without being ready for the snake that's revealed.”
“드러나는 뱀에 대한 준비 없이도 돌을 들 수 있다네.”
등등..
이렇듯 오펜하이머란 영화엔 대사나 미장센을 통한 수미상관 구조가 정말 많다.
처음엔 웅덩이에 파문이 이는 것을 보던 오피가, 앤딩에선 호숫가에 파문이 이는 것을 본다던지,
드러나는 뱀 대사는 처음엔 양자 물리학에 관해 쓰였지만 이후엔 핵에 관해 쓰인다던지,
"Near Zero"는 처음엔 단순히 대기 연소의 가능성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나중엔 오피가 무시했던 그 확률이 어떤 괴물이 되어 그를 덮치는지 등등.
직접 찾아보면 영화 내 많은 오마쥬들이 숨어 있다.
이잰 결론을 내야 할 시점인 듯하다.
난 이 영화를 “현시대의 차가운 메타포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을 가진 이들이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것이 너무 흔한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것은 그 당시 천재도 빗겨나가지 못한, 아니 오히려 천재여서 받아내야 했던 수모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해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런 천재에겐 결국 키티가 남았다.
그런 고로 이 차가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나를 든든하게 지지해 줄 ‘사랑의 동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