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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Jun 24. 2024

책들의 시간 91. 초록을 입고

# 난다_시의적절_오은의 5월_시인 오은, 초록을 입고

   참 좋은 책을 만났다. 이렇게 우연히 만난 책이 마음에 쏙 들 땐, 귀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이번 책이 그런 선물 같은 책이다. 시인 오은 님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부산 여행을 갔을 때, 지역 문화공간 ‘창비 부산’에서 시인 오은 님과 만화가 재수님이 함께 엮은 그림 시집 ‘마음의 일’을 읽었다. 그때는 오은 시인에 대하여는 전혀 알지 못했고, 만화가 ‘재수’님의 책을 참 재밌게 읽은 터라 익숙한 마음에 그 시집을 읽었다. ‘마음의 일’을 읽고는 오은 시인은 청소년을 위한 시를 적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했더랬다.   

 

   ‘마음의 일’에 나오는 한 장면 그리고 구절,

   <허약한 단어들을 가지고 들어가지만 단단한 문장을 가지고 나올 것이다.>     


   이 구절이 참 오래 남았었다. 좋아서. 그런데 수업 준비를 하면서, 다시 ‘오은’ 시인의 시를 만났다. 학생들이 읽으면 좋겠다 싶은 시들을 고르다가, ‘오은’ 시인의 시를 보게 되었고, 수업 자료로 활용했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초록, 오은, 시의적절, 5월’ 이런 키워드를 가진 책을 만나게 되니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참 좋다.      


1.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


“오늘 참 좋았습니다.” 상대가 마지막 인사를 건넬 때,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 어릴 적에는 ‘참’이라는 부사를 참 많이 썼었다. 일기의 마지막 문장에 으레 ‘참’이라는 부사가 등장하곤 했다. 참 즐거웠다, 참 재밌었다, 참 맛있었다, 참 행복했다…… 무의식 중에 일종의 ‘참’ 효과를 노렸던 게 아닐까. 이 일기에 쓰인 내용이 진짜 있었던 일이라고 선생님이 믿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저도 참 좋았어요.” 참에는 참으로 응대해야 한다. 진심은 그렇게 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참과 참이 만나면 “일을 하다가 이따금 쉬는 시간”을 뜻하는 ‘참참’이 된다. 일로 만났지만 일로만 채워지지 않은 시간이 참 좋다. (26쪽)


   출판사 <난다>에서 출판하고 있는 ‘시의적절’ 시리즈 5월의 책이다. ‘시의적절’은 시인이 바라보는 그달 그날, 즉 달마다 매일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시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하루의 이야기들. 조금 빨리 5월에 만났으면 더 좋았겠다 싶었지만 지금 읽어도 참 좋았다. 그 푸르름을 한가득 담은, ‘초록을 입고’ 제목부터 좋다.

   특히나 이 책은 언어의 사용이 특별한 책이었다. 시인이 매일의 단상이나, 시, 일기, 수필 등을 기록하고 마지막에 ‘오발단(오늘 발견한 단어)’을 적어 주었는데, 그 단어들이 낯설고 신기했다. 우리말의 감춰진 보물을 찾는 기분. 언젠가 박준 시인의 강연에서 들었던 말과 비슷한 말을 오은 시인도 남겼다. ‘시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단어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해 주는 것’이라는.      


   그런 의미에 참 충실한 책이다. 읽으면서 새로운 단어를 발견하는 기분도 느꼈고, 시의적절한 계절의 맛도 보았으며, 싱그러운 초록의 느낌을 한가득 받기도 했다. 인용한 부분은 ‘부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참 많이 사용하는 부사, ‘참’.


   참에는 참으로 응대해야 한다는 작가의 말도 좋았다. 그리고 참과 참이 만나 ‘참참’이라는 새로운 단어로의 연결도 참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단어’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도 했으며, 유난히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있는지에 대하여도 생각해 보았다.

  딸아이는 말할 때 ‘꽤나’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처음 스무 살 아이의 입에서 ‘꽤나’를 들었을 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냥 옛말의 느낌이 들어서, 어린아이가 사용하는 단어로는 잘 못 들어 본 것 같아서. 근데 생각보다 많이 그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잘 듣지 못했던 단어여서 그리 느꼈나 보다.

  “내가 그걸 꽤나 좋아하더라고.” 이리 말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새삼스레 스스로의 모습을 재발견한 아이가 느끼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기분이 좋았다. 나는 어떤 단어들을 좋아할까? 예전엔 같은 단어가 반복되는 그 말의 리듬감이 참 좋아서 ‘담담하다. 심심하다, 곰곰하다, 쓸쓸하다’ 이런 단어들을 좋아했다. 글을 쓰면서 단어가 참 매력적이구나, 또 한 번 느낀다. 많은 단어를 알고 싶은 욕심이 샘솟는다.   

   

2. ‘시로운’ 생각


몸을 움직여야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가만있으면 누군가를 설득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원하는 회사의 문을 직접 두드리지 않으면 입사는 요원하다. 보고 싶은 이를 향해 이동하지 않으면 그리움은 전달되지 않는다. 반대로 마음이 움직여야 몸을 움직이기도 한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데 몸이 선뜻 나설 리 없다. 하기 싫은 일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도, 마주할 상황을 끝끝내 외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몸과 마음은 한통속이다. 그러므로 “움직이자!”라는 말은 의욕 없는 심신을 다그치는 말이다. 상태를 사태로 만들자고 독려하는 말이다. (163쪽)


  작가는 이런 마음을 ‘시(詩)롭다’로 표현하고 있다. 작가의 언어적 감각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기분이 든다. 말 하나로 출발하는 새로운 언어의 탄생. 작가는 또한 ‘시로운’ 생각을 위함이 아닌 향함, 변화를 발견하는 생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 또한 참 좋다.


  내가 발견해야 하는 ‘시로운’ 생각은 무엇일까?

  작가의 표현을 가지고 와서 익숙한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는 것, 주변을 들여다볼 때 심신을 처음의 상태에 가깝게 하는 것을 시로운 상태라고 할 때, 나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워낙 익숙함을 좋아하고, 일상의 틀이 깨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잘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무언가에 대한 갈망과 열망으로 마음을 한가득 채워도 그냥 마음에만 둘 때가 많다. 그런 내가 발견해야 하는 시로운 생각, 변화를 발견하는 마음과 움직임. 그건 무엇이어야 할까? 계속 고민해 본다.      


3. 정리

  책을 읽으면서 참 좋았다. 작가의 언어적 유희를 따라가는 것도 좋았고, ‘오은의 오월’이라는 부제의 느낌도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도 시적인 감각이 살아있는 내용이 많아 그림이 그려지는 순간들도 있었으며, 작가 이름에 대한 일화를 읽을 때는 피식 웃음이 나와, 주변의 좋은 사람들에게 마구마구 말하고 다녔다.

  재미있어서.


  어느새 유월도 끝나가는 지금, 오히려 오월의 초록보다 더 짙고 깊은 여름의 초록이 마음을 흔든다. 뜨거운 계절보다는 머리를 차갑게 만드는 계절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온전히 우리의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음을 잘 알기에, 나는 이 계절을 아주 잘, 멋있게, 그리고 무엇보다 찬찬히 느끼고 싶다. 책을 읽고, 나의 유월, 칠월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부사는 다른 말 앞에 놓여 그 뜻을 분명하게 하는 품사입니다. ‘참’이나 ‘꽤나’처럼 좋아하는 부사가 있는지, 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주 사용하는 부사가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시로운 생각’은 작가가 정의한 새로운 말입니다. 나에게 있어 시로운 생각은 어떤 활동이나 움직임을 이야기하는지, 또는 자신의 어떤 익숙함을 벗어나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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