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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시간 142. 빛을 걷으면 빛

# 북클럽 문학동네 # 이달책7호_빛을걷으면빛_성해나 소설

by 벼리바라기
빛을 걷으면_사진.PNG


젊은 작가 수상소설집에서 작가님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사실 ‘성해나’ 작가님은 내게 낯선 이름이었다. 하지만 북클럽 문학동네의 ‘이달책’이기에 망설임 없이 집이 들었고, 읽고 나서는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총 8편의 단편이 실려 있고, 몇몇의 단편은 읽고 나서는 한참 동안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단편의 경우, 읽는 중간부터 눈물이 나더니만, 다 읽고서는 나도 모르게 울었다. 한참을 울다, 이내 부끄러워져서 방안을 막 서서 돌아다녔다. 읽지 않았다면, 아쉬웠을 책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이상과 현실, 세대, 가족, 비밀,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에 대하여 생각했다. 나는 그 양면적 세계 가운데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했다.


1. 세대 간의 간극


오 년 전 아내와 별거를 시작한 뒤 나는 이곳 금촌동에 단독주택을 지어 혼자 지내고 있었다. 아들은 매달 이틀 정도 묵었다 가곤 했다. 그 애와는 나름 돈독한 부자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생활이나 상황에 대해 공유하고, 인터넷에 떠도는 레시피로 함께 불닭게티인가 하는 것을 끓여 먹기도 하고,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를 보며 밤을 새우기도 하고...... 넉 달 전, 아들의 용돈을 끊기 전까지는 그랬다. (103쪽)

끓는 냄비 안에서 부풀고 부풀다 터지는 만두처럼 픽, 단전에 힘이 빠져버렸다 그 애들은 여전히 폭소하고, 아들은 연신 바지를 추켜올리고. 저게 밀레니얼이구나. 나를 향해 쏟아지는 화면 속 무수하고 끓임없는 하트를 보며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고 중얼거렸다.

그러는 거 아니다...... 니들 정말 그러는 거 아냐. (123쪽) - OK, Boomer 중에서


단편 'OK, Boomer'는 전교조 출신의 교사인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들과 아들의 친구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마음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OK, Boomer'라는 표현이 젊은이들이 부모 세대의 낡은 가치관을 비판하며 조롱할 때 쓰는 말이라는 것도 사실 몰랐다. 소설을 다 읽고 제목의 의미를 찾아보고 알게 되었다. 소설 내용에 완전 딱 맞는 제목이다. 그러면서도 소설을 다 읽고는 마음 한편의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학교에서, 또 집에서 나의 낡은 가치관으로 학생과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그것이 조롱의 대상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 속 아버지는 기타리스트인 아들의 밴드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집을 빌려주기로 한다. 그러면서 좋은 아버지, 깨어있는 아버지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은 전교조로 학교 변화에 앞장섰으며, 그로 인해 공로패도 받은 적이 있고, 요즘 유행하는 음식을 아들과 만들어먹어 볼 정도로 의식 있는 부모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집에 도착한 아들과 아들의 친구는 사사건건 아버지와 갈등한다. 아니,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아들과 아들 친구를 이해할 수 없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 또한 몇몇 부분에서는 아들과 아들의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제대로 예의를 갖춰 인사하지 않는 것, 집을 촬영장소로 허락해 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지 않는 것, 좀 더 공손하게 의견을 말하지 않는 것. 많은 부분에서 '요즘 애들은 왜 그럴까'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가치 있다고 여긴 자신의 공로패를 치워 달라고 말하는 것에 아버지는 결국 폭발하고 만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런 상황조차 '좋아요'의 하트로 표현되는 일상의 노출이고 누군가에 대한 조롱이며, 방송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 픽, 힘이 빠져버린다.


2014년 처음 담임을 맡았을 때, 의욕이 넘쳤다. 아이들을 이해하리라 마음먹었고, 학생들은 변화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지금은 자라나는 중이라 충분히 실수할 수 있고, 나의 자애로운 마음과 다가감과 노력으로 학생들은 변화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해 교원평가에서 학생들은 나에게, 극과 극의 평가를 내렸다. 선생님의 관심과 지지가 도움이 되었다고, 선생님을 만나 행운이라고 그렇게 표현해 준 아이들도 있었지만, 선생님의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웠다며, 선생님의 입장과 생각만을 강요하는 것 같다는 표현도 많았다. 10년이 넘은 교직생활을 통해 나는 여전히 조금씩 그 길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한때는 이상이 너무 원대해 따라오지 않는 아이들을 원망하기도 했고, 때로는 현실에 매몰되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상과 현실은 늘 간극이 있었고, 그 어디 매쯤 나는 확신과 방황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감사함이 나에게는 있다. 그래서 이상과 현실을 늘 고민하는 것일 수도 있음을 잘 안다.


단편 'OK, Boomer'는 나이 든 세대로서의 '아버지'의 입장과 젊은이로서의 '아들과 친구들'의 입장 모두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해 주었다. 그럼 나는, 나이 든 세대로서 어떻게 젊은 친구들에게 다가가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아니, 다가가지는 않더라도 함께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2. 부디 다정한 사람이 되기를.


북아현동에서 신설동으로, 그 옆 신당동으로 이 년 주기로 집을 옮겼지만 엄마가 내 집에 오겠다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느 집 모녀는 이사철마다 함께 매물을 보러 다니고, 집 비밀번호까지 공유한다는데 우리 모녀에겐 그런 긴밀함이 없다. 엄마는 입주 청소를 도와준 적도, 갖은 잔소리를 쏟아내며 해묵은 세간을 정리해 주거나 텅 빈 반찬통을 살뜰히 채워준 적도 없다. 나 역시도 엄마에게 그런 것을 먼저 바라거나 청하는 법이 없었으나 아마 반찬이 떨어졌다고 했더라도 엄마는. 요즘 반찬가게 찬 잘 나오더라. 하고 말았을 것이다. 무심하게, 아플 정도로 무심하게 말이다. (343쪽)

엄마가 짐을 챙겨 현관을 나설 때까지 나는 그쪽으로 시선조차 돌리지 않는다. 엄마도 작별인사 없이 그대로 문을 닫아버린다. 마음 주는 일에 왜 이리도 인색할까, 남도 아닌 딸에게. 엄마와 나 사이엔 여러 겹의 허들이 놓여 있는 것 같다. 넘기도 어렵고 넘어서도 계속해 생기는 낮은 허들. 엄마에게 내 속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미적지근하게 반응하거나 대립을 꺼리며 쉬이 입을 닫아버릴 것임을 예감하게 된 뒤로는 우리 사이에 쳐진 허들을 넘지 않게 됐다.(350쪽)

- '김일성이 죽던 해' 중.


가장 마지막에 실려 있는 단편 '김일성이 죽던 해'는 소설을 다 읽고 결국 울었다. 엄마가 생각나서.

소설 속 주인공 해원은 엄마가 마음을 주는 일에 인색하다고 여긴다. 딸인 자신에게도 쉬이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할 때가 많으며, 살뜰하게 반찬을 챙겨주거나 잔소리를 하거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핸드폰에 이름을 저장할 때도 어떤 수식어도 없이 '해원'이라고만 저장한 것도 속이 상하고, 이사를 여러 번 할 때에도 집에 와 보지 않는 것에도 섭섭함을 느꼈다. 엄마가 사과를 주기 위해 해원의 집을 방문한 날 해원은 줌으로 소설 창작 수업을 진행했고, 엄마는 줌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해원이 숙제로 내 준 '내 인생의 가장 큰 사건 쓰기'에 대하여 엄마는 글을 쓰고 해원은 그 글을 읽고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주인공 해원이 기대하는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하여 나도 오래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친정엄마에게 딸인 나, 우리 딸에게 엄마인 나. 나는 어떤 모습으로 그들 곁에 있을까, 그런 생각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들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던 것은 나도 마음 주는 일에 인색한 사람인 것만 같아서, 그게 미안해서, 엄마에게 미안해서 눈물이 나왔다. 사실 딸에게도 살가운 엄마는 아니다. 참 많이 좋아하고, 나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딸을 통해 알았지만 그렇다고 딸에게 마냥 살갑지 않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사람을 대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나는. 그래서 소설 속 엄마가 이해가 되었다.

친정까지는 기차를 타고는 4시간 정도가 걸리고, 차를 가지고 가더라도 5시간 넘게 걸린다. 예전엔 혼자 자주 내려가서 엄마 밥을 먹고 올라왔는데, 요즘은 친정에 잘 가지 않는다. 방학 때에도 마음을 먹어야 내려갈 때가 많다. 여기서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들도 많고, 주말에 그냥 쉬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친정을 가려고 마음을 먹는 일엔 용기가 필요하다. 이번 방학 엄마와 함께 전주를 여행한 일은 내가 몰랐던 엄마의 모습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책을 다 읽고 엄마와 여행했던 시간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면서 내가 좀 더, 엄마에게 다정한 사람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눈물이 났나 보다. 다정하지 못한 나를 발견해서. 책 속에서 나를 만난 시간이었다.


3. 정리


제목 '빛을 걷으면 빛'은 차도하 시인님의 시 '조찬'에서 인용한 것임을 알았다. 소설을 다 읽고 시도 찾아 읽었다. 시는 참 슬펐다. 요새는 작은 일에도, 작은 글에도, 문장 하나에도 눈물이 핑 돌 때가 많다. 감성이 차 올라일 수도 있고, 갱년기여서 일 수도 있다 생각한다.

실려 있는 단편 중 가장 마음에 오래 머물렀던 작품은 '화양연화'였다. 읽고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소설 속 주인공 이목씨와 경이의 삶에 대하여 응원하고 싶어졌다.

작가님의 말 중 '내가 겪어보지 못한 - 어쩌면 영영 겪지 못할 - 사랑과 생애를 상상과 짐작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오래간 품을 들여 그것을 해나가고 싶다는 염원을 갖는다'라는 말이 참 감사하게 다가왔다. 그리하여 알게 된 어떤 이들의 삶에 대하여, 나는 연민하고 다가가고, 나를 발견하고 응원하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잠잠히, 오래 침묵하며 소설을 되새기고 싶은 날이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나만의 꼰대 기질을 발견해 봅시다. 또한 스스로의 기준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젊은이들의 모습, 그러면서도 참 괜찮다 여겨지는 젊은이의 모습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2. 스스로 생각하는 이상적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모습인지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bookclub_mun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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