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브 JJ 리 만화, 이주혜 옮김_창비
만화 주간이었다. 많은 활자들에 지쳐 조금은 쉬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눈도 생각도 휴식을 주고 싶을 때 그때 나는 만화책을 읽는다. 도서관에서 무작정 만화로 검색한 책 5권, ‘우리의 제철은 지금, 익명의 독서 중독자, 호도, 외꺼풀' 어떤 책은 내용이 너무 무거워 읽어내기가 힘들었고, 어떤 책은 집에서 요리를 해 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중 그림과 내용이 모두 마음에 들었던 책은 ‘외꺼풀'이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데브 JJ 리의 자전적인 작품이면서 그래픽노블 데뷔작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그래픽노블은 그림소설과 비슷한 의미로 문학성이 있는 예술주의 작품을 말한다고 한다. 예전에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외꺼풀'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몰입감이 좋은 작품이었다. 물론 작가님의 그림도 나는 마음에 들었다. 아기 때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도 모국어는 잊어버린 정진(데버라)의 성장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다름으로 인해 차별받고 정체성의 고민을 했던 데버라는 한국적 정서를 가진 엄마의 양육방식과 갈등을 일으키고, 친구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스스로가 잘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간다.
1. 쌍꺼풀 수술
데버라는 미국에서 스스로가 정상적으로 보이기 위해선 쌍꺼풀 수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안은 엄마가 먼저 해 주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쌍꺼풀 수술을 하기로 했으며, 대학생이 되었을 때 한국에서 수술을 한다.
동양인을 조롱할 때 외국인들이 양 눈을 옆으로 찢는 모양을 만드는 것, 동양인에 대한 비하이며 조롱의 행위인 것을 안다. 데브라는 앨라배마에서 살 때 친구들의 놀이에 한 번도 초대받지 못했다. 다른 생김새로 인한 차별과 외로움을 어린 시절에 경험했다. 뉴저지에 이사 왔을 때 데브라는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았지만 차별을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데브라가 쌍꺼풀 수술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외모에 대한 불만보다는 외국에서 겪은 조롱의 경험이 더 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저지는 달랐어요.
아무도 남의 얼굴에 관해 이러쿵저러쿵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때, 제게 말을 걸거나 저를 바라볼 때 그 사람들 마음에 뭔가 싸한 게 지나간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모르는 사람들도. 선생님들도. 다른 아이들도. 그 애들의 부모들도요. (201쪽)
내가 사는 곳에도 외국인들이 많다. 최근에는 아이들도 보이는 거 보니, 직장을 위해 한국에 가족 모두가 이주한 경우인 것 같기도 했다. 저녁에 공원을 걸을 때면, 외국인이 자신의 언어로 통화하는 것도 들을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몰라도 먼 곳에 있는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것이겠거니 짐작한다. 처음엔 외국인들이 지나가기만 해도 주춤 걸음이 느려지고 무성움이 들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마음들이 많이 줄었다. 동네 주민이겠거니 생각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그래도 어색함과 낯선 마음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데브라가 미국에서 겪은 싸한 차별의 시선을 알 것 같다.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태어난 곳은 한국일지라도 세 살에서부터 미국에서 자란 데브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늘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 소속감이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에 안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줄 잘 알기 때문에.
2. 세계가 많아진다는 것.
퀸과 그 애 친구들은 아마 여전히 절 미워할 거예요. 우린 지난 5개월 동안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일에 대처할 다른 방법들을 찾아왔기 때문에 그 애를 보는 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선생님 말이 맞아요. 시간이 약이거나 적어도 상처를 좀 더 견딜 만하게 만들어 줘요.
달리기는 여전히 도움이 되니? 그리고 가끔 집을 벗어나는 것도?
그러길 바라고 있죠. 친구들과 어울리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도 가고, 미술반에서 만난 애들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하려고 뉴욕에 자주 나갔어요. 솔직히, 이 동네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뭐든 할 거예요. (중략)
네 최초의 세계는...... 바로 가족이야. 아마도 엄마겠지. 그다음은 학교고. 언제부턴가 네게 가장 큰 세계는 퀸이었어. 그걸로 충분했지. 그러나 그 문이 닫혔고 넌 전부를 잃은 기분이었을 거야. 그렇지? 하지만 달리기를 시작하고, 뉴욕시에 가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너는 세계를 훨씬 더 넓히고 있어. 달리기의 공간, 뉴욕이라는 공간, 미술반의 공간으로. 곧 대학이라는 공간도 생기겠지. 세계가 많아진다는 건, 이런 원들이 생긴다는 건, 그중 하나가 무너지더라도 지탱할 수 있는 기둥이 생긴다는 뜻이야. 앞으로 넌 아주 많은 기둥을 가지게 될 거고, 어쩌면,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 그 사람을 다시 발견하게 될지도 몰라. 네가 다른 사람과 많이 다르고 또 부서졌던 역사를 지니고 있을지라도..... 네 어머니는 여전히 거기 있을 거야. (247쪽)
데브라는 상담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조금씩 치유해 나간다. 상담가는 데브라에게 ‘세계가 많아진다는 것’에 대하여 알려준다. 데브라가 퀸과의 멀어진 시간을 달리기와 미술로 견뎌왔듯이 자신의 세계를 조금씩 넓혀 가며 지탱할 수 있는 기둥을 만드는 것. 그것이 데브라의 부서졌던 역사를 세우는 길이며, 새로운 시간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길이라는 것을 상담가는 알려주었다.
세계가 많아진다는 것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행복해지는 자잘한 요소가 많은 사람일수록 슬픔이 찾아왔을 때, 그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을 많이 아는 것이란 의미였다. 그래서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수집하기로 마음먹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이 결국 나의 세계가 많아진다는 뜻이겠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다.
많이 지친 날, 만화책을 꺼내 드는 것, 재미있는 소설을 몰입하여 읽는 것,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단단한 세계를 확인하는 것, 참 좋은 사람들과의 수다, 꼼꼼하게 준비하여 능숙하게 진행하는 수업, 달달하고 맛있는 초콜릿을 오래 녹여 먹는 것, 배가 많이 부르지 않게 먹어 기분이 좋아지는 것, 파란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별과 식물들, 오래 좋아했고 좋아하는 사람의 시선이 담긴 사진을 보는 것, 길을 걷다 우연히 뚱뚱한 고양이를 만나는 것 등 나의 소소하고 작은 세계는 기둥을 참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 했던 나만의 노력이 있나요? 어떤 노력이었으며,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나의 세계는 어떤 세계인지, 나는 지금 어떤 기둥을 만들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