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시간 161. 평균율 연습

# 김유진 장편소설_문학동네

by 벼리바라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평균율 연습’이라는 제목을 보고는 멋대로 청소년 소설일 거라고 지레 짐작했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도 여러 번 그냥 넘겼다. 청소년 소설보다는 조금 더 어른의 이야기가 읽고 싶다고 생각했더랬다. 그러다 방학, 여행을 떠나기 전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서 이 책을 함께 빌렸다. 나는 언제든 사람이 책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것이 나의 선택이든, 책의 선택이든 만나야 할 순간에 만나게 되는 책들이 있고, 그건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준다고, 이 책도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1. 수민의 이혼

수민은 퉁명스레 대답하면서도 그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았다. 집에 홀로 남아 불화의 순간을 곱씹고 자신을 학대하고 세상을 원망하다가 자아가 비뚤어진 채 고독하게 늙어가는 것. (중략) 당연하게도 수민을 붙들어준 건 주님의 오른팔도 엄마의 소원등도 아니었다. 수민의 일상을 지탱해 준 것은 각종 요금 고지서와 카드 명세서,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업무 메일들이었다. 그 시기는 프리랜서 편집자라는 직업이 갖는 거의 유일한 장점인 원격 업무의 특혜를 원 없이 누린 때이기도 했다. 메일엔 출판사의 출간 일정, 수민의 미정산 편집비 문의에 대한 답변, 매 교정마다 따라붙는 마감 기한이 적혀 있었다. 세상은 개인의 실패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굴러간다는 자명한 사실. 그런 자각이 아침마다 수민을 책상 앞으로 이끌었다. (35쪽)


수민은 5년을 함께 산 수찬의 이혼 요구를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편집자 일과는 별개로 피아노 조율을 배운다. 피아노 조율을 배우면서 수민은 이때껏 가지지 못했던 기대를 가지게 된다. 손으로 만지작하며 무엇이든 고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 수민은 어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함께 살면서 무분별한 기대를 늘 경계하며 살았다. 수찬과 결혼하여 살 땐 비슷한 이름만큼이나 혈육처럼 오래 함께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이혼으로 인해 그 기대가 좌절로 이어졌다. 수민이 이혼했을 때 직장 동료나 친구, 엄마는 걱정이 되어 계속 전화를 하고 용기를 주는 말을 해 주며, 종교에 의지한 말을 하며 수민이 집 아닌 밖으로 나가기를 권유했다. 하지만 수민은 좌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민은 이혼 이후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과는 달리 사실 아무렇지 않았다. 세상은 개인의 실패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굴러간다는 자명한 사실을 수민은 자각하고 있었다.

이혼을 구체적으로 그려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매번 남편과는 참 다르구나, 이렇게 다른 사람과 함께 나는 살아가고 있구나, 그런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이혼을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는 많다. 그럼 나는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며 자유롭지 못했겠지, 어쩌면 나에게는 결혼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를 가져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친정에 혼자 내려갈 때면, 엄마의 친구들은 내가 남편과 잘 지내고 있는지 왜 내가 친정에 혼자 내려오는지, 궁금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어보신다고 한다. 타인에 대한 궁금함 가운데에는 어쩌면 걱정이라는 이름에 숨겨진 타인의 불행을 통한 자기 위로는 아닌가, 그런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소설 속 수민은 사람들의 많은 걱정 가운데 의연함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부질없다는 생각에 빠져들곤 한다. 요즘의 내가 그렇다. 의연함을 증명하고 싶다가도 그냥, 그냥 말을 멈출 때가 많다.


2. 엄마 임정희의 삶.

임정희는 요즘 자신이 왜 샛길로 빠지는지 알 것 같았다. 이게 다 잡생각 때문이었다. 한번 생각에 빠지면 여기가 어딘지 무얼 하는 중이었는지 다 잊었다. 다행스러운 건 곧 정신이 돌아오긴 한다는 거였다. 물에 빠진 건 놀랄 만한 일이었지만 그 일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임정희는 요즘 하루에도 열두 번씩 죽고 싶었다. 그러다 죽어도 죽기 싫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누구 좋으라고. 임정희는 정신 똑바로 차리자고, 정신머리를 붙잡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중략) 그 이후로 그녀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생겨났다. 주로 실수나 실패에 관한 것들, 슬픔이나 두려움, 위로받고자 하는 마음 같은 것들이었다. (107쪽)


수민의 엄마 임정희는 이혼을 하고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많은 일들을 했다. 드디어 돈이 불어난다고 느낀 순간 정희는 이혼한 남편의 소개로 김사장을 만나게 되고 김사장의 사업에 투자를 하게 된다. 흔히들 말하는 이자 놀이. 하지만 이 년간 꾸준히 이자를 주던 김사장이 잠적하고 임정희는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들, 실수나 실패에 대한, 또는 슬픔이나 두려움, 위로받고자 하는 마음 같은 것. 이 구절에서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나도, 나도 그럴 때가 많아서,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않고 속으로 감추는 일들이 많아서 정희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말하고 싶은 것들을 속으로 생각하고 여러 번 걸러 말한다. 내가 이야기한 것들이 돌고 돌아 여러 사람들에게 들어가도 될 만한 것들만, 그리하여 내 상황의 불행과 어려움과 힘듦이 내 스스로 소화가 되었을 때만 이야기하는 편이다. 또 그렇게 이야기한 것들은 이미 내 마음에서 안정이 되었기에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힘든 일이 아닌 것이 되고 만다. 실수나 실패, 슬픔이나 두려움, 위로받고자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와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결국은 이기고 만다. 그래서 외로워지는 것은 아닐까.


3. 정리

조율 수업의 마지막 단계는 평균율에 관한 것이다. 소리는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진동은 숫자로 환산된다. 따라서 두 음으로 만들어진 모든 화음은 비율을 갖게 되고 역으로 비율에 따라 음을 조절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이쯤 되면 맥놀이는 단순히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게 된다. 모든 화음이 고유한 맥놀이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맥놀이는 간섭 현상에 의한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아름다운 배음의 일부로 인정받는다. 평균율 조율은 이러한 발생에서 비롯된 것이다. (192쪽)


피아노 조율에서 평균율 연습은 각각의 음에서 발생하는 간섭인 맥놀이를 아름다운 배음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결국 각각의 사연을 가진 수민과 수찬과 정희의 삶도 평균율 연습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것은 아닐까? 어릴 적 엄마의 죽음 이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수찬이 직장에서도 수민에게서도 필요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선택과 이혼 후 딸을 위해 돈을 모으는 일에만 집착하던 정희가 사기를 당해 모든 돈을 잃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사실을 딸에게 말했을 때 그들 삶의 맥놀이는 천천히 화음이 되어간다.

남편이 이십여 년을 넘게 다닌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이의 미래와 현실적인 걱정들이 맥놀이처럼 내 안에서 웅웅거렸다. 다른 모든 이에게는 그 사실을 말해도 엄마에게만은 말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보다 걱정할 엄마의 심정을 알아서. 그런데 말끝에 결국은 이야기하고 말았다. 물론 전화할 때마다 조심스레 들려오는 엄마의 걱정이 크나큰 압박으로 다가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말을 하니 후련하기도 했다. 지금 남편과 나와 엄마도 각자의 자리에서 소리를 내고 있으며, 우리는 평균율을 연습 중이다. 우리의 소리가 소음이 아닌, 화음으로 안착하기를 조용히 소망한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사람들의 걱정과는 달리 실제로는 아무렇지 않았던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이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각각의 맥놀이를 화음으로 조율해야 하는 관계가 있다면 어떤 관계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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