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책장으로부터, 신유진 에세이, 오후의 소묘
전라도 지역을 여행하면서 신유진 작가님을 만난 적이 있다. 신유진 작가님의 남편분이 한다는 카페에 간 적이 있는데, 가면서도 간절히 바랐다. 우연이라도, 정말 우연이라도 작가님을 보고 싶다는 마음. 그때 ‘페른베’를 정말 재미있게 읽어서 작가님이 보고 싶었다. 작가님의 강연도 들었던 터라 혹시나 사인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런 마음으로 책도 챙겨서 떠난 길이었다.
여름날 카페에서 채 읽지 못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드니 작가님이 있으셨다. 조심스레 다가가서 책에 사인을 받았다. 그 기억을 가지고 다시 선택한 책이 ‘사랑을 연습한 시간’이다. 많이 기대하며 읽었다. 술술 읽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천천히 읽었다. 읽으면서 엄마가 생각났다.
딸과 엄마의 이야기, 엄마의 책장으로부터 시작된 엄마의 이야기와 나중에 그 책을 읽은 딸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엄마를 이해하는 시간이 어쩌면 삶에서 ‘사랑을 연습한 시간’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펼쳤다.
1. 나로 살아가기 위한 애씀
그렇다면 하찮은 이야기를 해 보면 어떨까. 중요하지 않고, 딱히 아름답지 않고, 큰 의미 없는 것부터. 거기에 무엇이, 누가 있는지를 바라보면 가려진 것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진짜 의미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당신에게 하찮은 것은 무엇인가? 여기, 내가 잘 아는 하찮은 이야기가 있다. 밥 이야기다. 스무 해 정도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사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그놈의 밥, 지겨운 밥”이었다. 엄마는 하루에 대략 여섯 번씩 밥상을 차렸다. 새벽에는 출근하는 사람의 밥을 챙겼고 아침에는 등교하는 아이들과 시부모의 밥, 집에 있는 사람의 점심과 퇴근하고 돌아온 사람의 저녁을 챙겼다. 엄마는 아침에는 점심을, 점심에는 저녁을, 저녁에는 다음 날 아침을 걱정하면서 말했다. “사람이 참 하찮은 것에 매달려 살아.” (20쪽)
내게 밥은 하찮은 것이 아니다. 밥을 차려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지 결혼을 하고 알았다. 다만 지금도 밥을 차린다는 것이 내겐 정말 큰 숙제 같아서, 그 일을 해 온 사람들이 다가갈 수 없는 영역의 독보적 자리를 지키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엄마, 내겐 엄마가 그렇다.
지금도 본가에 가면 가방을 내려놓고 벌러덩 소파에 눕는다. 그런 나를 위해 엄마는 생선을 굽고, 미역국을 끓이며, 나물을 무친다. 그리고는 어느새 차려지는 근사한 집밥. 엄마 밥이 먹고 싶어질 때가 많다. 특히나 밥을 차리는 것이 감당할 수 없는 큰일이 되어버린 내겐 더 그러하다.
결혼 초 남편은 내게 자주 말했다. 아침밥을 먹고 싶다고, 아침밥을 차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그 일을 못했다. 저녁을 차린 기억도 손에 꼽을 만하다. 결국 남편은 밖에서 밥을 먹고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고, 나는 혼자서 대충 차려먹는 날이 많아졌다.
정말 편하고 좋다.
“여자들은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하는 작가님의 어머니, 그 말을 듣고 자란 작가님. 하지만 작가님은 하찮은 것들로 채워져 크고 의미 있는 것들을 말하는 그런 작가님이 되신 것 같다. 별거 아닌 것들이 별것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런 이야기들을 쓰는 사람. 이 책이 그러하듯이.
여자에게 주어진 삶들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문화와 환경을 벗어나지 못한 채 여자에게 주어진 역할들을 수행하며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남편이 결혼 초 “우리 엄마는 안 그랬는데.”라는 말을 달고 살았었다. 그게 알게 모르게 나에게 죄책감이 되어 밥을 차려주지 못하는 것이, 또는 집 청소를 잘하지 못하는 것이 남편을 밖으로만 돌게 만든 건 아닌지 마음속 죄책감을 가진 적이 있다. 세월이 지나 지금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밥을 차린다는 것이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듯, 청소를 하는 것도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며, 남편이 밖으로 나도는 것이 내 책임도 아니며 남편의 선택이라는 것도 이제는 잘 안다. 나는 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결국 별것 아닌 것들로 별것이 되기 위해 지금도 나아가고 있음을 잘 안다.
2. 우연의 힘
엄마는 버리는 것에 미려니 없는 사람이고, 누구보다 잘 버려서 책을 버리는 것에도 거침이 없었다. 엄마가 버린 책들을 목록으로 만들면 애서가들은 눈을 질끈 감을 것이다. 버려진 책들 가운데 눈에 띄었던 것은 단연 버지니아 울프의 책이었다. 그전까지 한 번도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했던 작가의 책이 그 순간 내게 어떻게, 왜 와닿게 됐는지 설명할 재간은 없지만, 인생의 많은 것들이 그렇듯 책과의 만남도 나에게 맞는 속도와 적절한 때, 그리고 마법 같은 우연이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우연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다. 우연은 비장하지 않지만 삶의 어떤 것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운명만큼 힘이 세다. 우연히 만났지만 만남 이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것들이 있고, 내게는 버지니아 울프의 만남이 그중 하나다. (90쪽)
책 속에 적힌 작가님의 문장이 좋았다. ‘우연’이 비장하지 않지만 삶의 어떤 것을 바꿔놓을 수 있고, 운명만큼 힘이 세다는 말이 좋아 몇 번이고 읽었다. 작가님이 버지니아 울프를 만난 건엄마가 버린 책 중 하나에서였지만 이제는 그 만남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작가님에게는 ‘우연’이 책과의 만남이었지만, 나도 요즘, ‘우연’에 대하여 생각한다. 우연한 사람과의 만남. 책과의 만남, 영화와의 만남. 그런 그 모든 만남.
남편이 참 좋았다. 그에게는 나무의 냄새가 났다. 그래서 그와 함께 있는 순간이 나에게는 쉼 같았고, 음이온이 나오는 어떤 장소에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지만 내겐 공간으로 기억되는 시간들이었다. 남편과의 만남은. 그때는 참 마법 같은 만남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되돌릴 수 없는 만남이라 속이 상한다. 이렇게 우연은 운명만큼 힘이 세며,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놓았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내게 결국 책임감임을 알게 만들었으며, 그래서 이젠 겁이 많아졌다.
3. 정리
‘사랑을 연습한 시간’은 신유진 작가님이 어머니와의 일화와 함께 읽은 책들에 대하여 적은 글이다. 사실 참 유명한 여성 작가님들에 대한 책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지만 내가 읽어 본 책은 많이 없었다. 그중 오래 기억에 남는 부분은 ‘전혜린 작가님’의 책에 대한 이야기였다. 새끼를 낳은 강아지 이야기를 들은 작가님의 어머니는 작가님과 함께 어미 강아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먹을 것을 어미 강아지에게 주며 말했다. “엄마는 채워야 해. 채워야 줄 수 있어.” 그러면서 이야기하셨다. 전혜린이 딸을 낳고 딸 이야기를 쓰지만 그 글은 딸 낳은 전혜린의 글이라는 이야기, 참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 ‘여자’의 이야기들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결국 여자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며 나의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나는 참 많은 이야기들을 읽어내고 있구나, 그런 마음도 들었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자신에게 가장 하찮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그 하찮음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자신에게 다가온 마법 같은 우연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