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리바라기 Apr 24. 2023

책들의 시간 31_이토록 평범한 미래

# 이토록 평범한 미래_김연수 소설_문학동네


  며칠 전 상담 선생님이 사람마다 고통을 느끼는 기준이 다르다며,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로 다가올 수 있음을, 그래서 아이들을 잘 지켜보고 잘 관찰해야 한다며 모든 선생님들께 메시지를 보내셨다. 그 전날 연예인의 자살 소식이 뉴스를 통해 전해졌고, 딸아이는 심장이 쿵 했다며, 이렇게 슬픈데 가족들은 어떻겠냐며 내게 카톡을 보냈었다. 유난히 ‘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리는 요즘. 마음이 아프면서도 그런 소식들이 몰고 오는 또 다른 여파에 겁이 나기도 하는 나날들이다. 

  그때 만난 책이 김연수 작가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 사실 김연수 작가님의 책이 나는 참 어렵다. 동경은 하지만 잘 읽히지는 않는 책이 김연수 작가님의 책이었다. 대학교 때 ‘7번 국도’를 읽었더랬다. 그리고는 일찍 결혼한 나는 7번 국도로 신혼여행을 갔다 왔었다. 그 뒤로도 김연수 작가님의 책을 읽을 때면, 인물관계가 너무 얽히고설켜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들고, 때로는 그림까지 그려가며 그렇게 읽었었다. 그래서인지 잘 읽게 되지 않는 책들이 많았다. 하지만, 2022년 소설가가 뽑은 소설, 1위에 김연수 작가님의 단편집이 뽑혔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때부터 다시 읽고 싶었다. 하지만 빌리기가 어려웠다. 서점에서 여러 번 들었다 놓았다도 했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아니라 선뜻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다. 어렵게 빌린 책. 그리고는 읽고 나서, 아주아주 생각이 많아졌다.      


1. 평범한 미래를 상상하는 힘. 


 “오래전에 비트겐슈타인의 책에서 ‘그러나 당신은 실제로 눈을 보지는 않는다’라는 문장을 읽고 그 혜안에 놀라서 뒤로 넘어갈 뻔한 적이 있어요. 우리는 원하는 걸 다 볼 수 있지만, 그것을 보는 눈만은 볼 수가 없죠. 보이지 않는 그 눈이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을지를 결정하지요. 그러니까 다 본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 눈의 한계를 보고 있는 셈이에요. 책을 편집하다 보면 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의 모든 문장은 저자의 생각을 뻗어나갈 수 있는 한계의 안쪽에서만 나오죠. 그래서 모든 책은 저자 자신이에요. 그러니 책 속의 문장이 바뀌려면 저자가 달라져야만 해요.”

  “그렇다면 제가 달라져야 이런 풍경이 바뀐다는 뜻인가요?”

  “그게 내 앞의 세계를 바꾸는 방법이지요. 다른 행동을 한번 해 보세요. 평소 해보지 않은 걸 시도해도 좋고요. 서핑을 배우거나 봉사활동을 한다거나. 그게 아니라 결심만 해도 좋아요. 아무런 이유 없이 오늘부터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기로 결심한다거나, 아주 사소할지라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결심하기만 하면 눈앞의 풍경이 바뀔 거예요.”(27쪽)


  책의 제목이자 첫 번째 단편, ‘이토록 평범한 미래’의 첫 문장은 ‘모든 게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1999년에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생각한다.’로 시작한다. 여자친구의 부탁으로 동반자살을 하겠다고 결심한 남자의 1999년, 그 해의 일과 그 이후의 일. 그리고 여자친구의 어머니가 썼다는 소설의 내용, 그 소설을 발견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이 책의 내용을 이룬다. 여전히 많은 인물들의 등장과 생각을 따라가는 과정이 내게는 수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을 다 읽고 나서는, 요즘 계속 일어나는, 어쩌면 계속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 유난히 더 부각되는 듯한 그 ‘자살’에 대한 생각을 조금은 정리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다 끝났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조금은 위로가 될 수 있는 해답이 이 책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1999년 여름, 1학기 종강 파티가 끝나고 지민이 내게 자신은 곧 죽을 사람이라고 말할 때만 해도 나 역시 이런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다. 어릴 때 내가 상상한 미래는 지구 멸망이나 대지진, 변이 바이러스의 유행이나 제3차 세계대전 같은 끔찍한 것 아니면 우주여행과 자기 부상열차, 인공지능 등의 낙관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35쪽)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에 대하여 추측하는 것조차 자살을 한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상처와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잘 알기에 조심스럽다. 하지만 혹여, 세상이 끝났다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과거로부터 이어온 현실에 대한 절망이 죽음을 향해 이끈다면 미래는 어쩌면 극단적인 절망과 낙관이 아닌 평범한 것임을 기억해 낼 수 있으면 좋겠다.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평범한 미래. 그 미래를 상상하는 힘. 그리하여 다시 살아냈으면 좋겠다. 더 나아질 것임을, 더 괜찮아질 것임을, 평범한 미래로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  

    

2. 정신적인 삶, 그리하여 감사함을 선택할 수 있는. 


  내가 출판사에 편집자로 취직했을 때, 할아버지는 무척 기뻐했다.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하면서 이 우주를 인식하기에는 육신의 삶이 너무나 짧기 때문에 인간은 말과 글을 통해 서로 협조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해 나갈 시간을 단축해야만 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백 퍼센트 동의했다. 덕분에 책은 우리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222쪽)


  단편 ‘이토록 평범한 미래’와 맥을 같이 하는 단편이 있다. 책에 실려있는 마지막 단편,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라는 단편이다. 책을 읽으면서 소설가가 보여주는 확실한 색깔을 발견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참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다.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나는 보통 나의 경험을 공감받듯 책 속에서 발견할 때 그때 책이 확 재미있어진다. 책의 첫 장면에서 나는 엄마에게 들었던, 아빠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보여주었다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래서일까, 책에 확 몰입하게 되었다.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는 병원에 계신 할아버지가 아무도 없는 곳을 보며 누군가 있다는 듯이 혼잣말을 하는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부분으로 시작한다. 할아버지가 자주 말씀하시는 단어, ‘바르바라’와 ‘토마토’. 주인공은 할아버지와의 대화 녹취록을 들으면서 할아버지의 삶에 대하여 다시 되돌아본다.      


  하지만 이후 사십여 년에 걸친 공부를 통해 이성으로 신의 존재나 부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네. 그래서 나는 신을 직접 체험한 신비주의자들, 예컨대 아빌라의 테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등에 관한 책을 읽었지. 그리고 서서히 깨닫게 됐네. 지금 이 순간, 신은 늘 현존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이 그치면 바로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생각이란 육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걱정과 슬픔, 외로움과 괴로움으로 이어질 뿐이지만, 그 생각이 사라질 때 비로소 정신의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그 정신의 삶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서로 겹쳐지며 영원히 이어진다는 것을. 그럼에도 이 현상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는 매 순간 육신의 삶으로 되돌아가 다시 기뻐하고 슬퍼하고 미워하고 화낼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겹쳐진 정신의 삶, 그 기저에 현존하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므로 나는 노력하기로 했지. 이 삶에 감사하기로. 타인에게 더 다정하기로, 어둠과 빛이 있다면 빛을 선택하기로.(242쪽)


  할아버지와의 녹취록을 들으면서 주인공은 정신적 삶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할아버지는 육체적 삶이란 것이 80년 세월이라면, 정신의 삶은 그보다 더 많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경험하게 되는 240년의 삶이라 말한다. 책을 통한 경험, 그리고 타인의 이야기를 통한 경험, 그것이 과거를 이해하게 하고, 현재를 살아가게 하며, 현재를 산 누군가에 의해 미래에도 그 이야기가 이어지는 삶. 그걸 정신적 삶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할아버지는 수녀의 삶을 선택한 여동생의 죽음을 거치면서 신의 존재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또 여동생과 신부님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을 우연히 기차에서 발견한 뒤, 그 순간을 스쳐오면서 시간과 공간을 이어져오는 정신의 삶에 대하여 노력하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선택한 삶이 타인에게 다정한 삶과 감사, 그리고 빛을 선택하는 삶. 

  단편 ‘이토록 평범한 미래’와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가 비슷하다고 느꼈던 이유는, ‘미래’를 아는 정신의 삶이 평범한 미래와 이어진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결국, 평범한 삶이라면, 선택의 순간에 더 나은 선택을 통해 정신의 삶 기저에 현존하는 사랑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렇다면,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이 삶에 감사하기로, 타인에게 더 다정하기로, 어둠과 빛이 있다면 빛을 선택하기로 작은 다짐을 해 본다.      


3. 정리. 


  늘 어려웠던 김연수 작가님의 책이었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 나는 또 하나의 위로를 경험한다. 책이 주는 위로. 내가 받는 이 위로들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자살을 할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결심하게 되는, 또는 순간의 선택을 하게 되는 많은 사람들에게, 평범한 미래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음을 조심스럽게 말해주고 싶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여태껏 우리가 생각했던 미래의 모습은 어떠하였습니까? 만약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면, 어떤 모습의 미래일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정신의 삶’과 관련하여, 나의 경험은 아니지만, 책을 통한 또는 이야기를 통한 과거 어떤 경험이 나의 삶에 미치고 있는 영향이 있다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작가의 이전글 책들의 시간 30_길 위에서 내일을 그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