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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Jan 01. 2024

책들의 시간 66. 겨울을 지나가다

# 겨울을 지나가다_조해진 소설_작가 정신


  모진 겨울을 지나가고 있다. 왜 이리 아픈 날들이 많은지, 폐 엑스레이 사진은 괜찮았는데 기침은 한 해 동안 멈출 듯 멈추지 않고 지속되었고 결국은 응급실 진료를 받았다. 다행히 건강은 아무 이상 없었지만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으며, 주변 사람들과 구급대원, 의료진에겐 미안함과 감사함이 쌓여 마음의 빚이 늘어난 경험이었다. 나의 겨울은 견디고 견디다가 터져 나온 눈물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그런 시간 가운데 만난 책이 소설, ‘겨울을 지나가다’      


1. 시간이 담긴 그릇


  엄마의 전 생애를 몽타주 기법으로 편집한 기억은 파일들은 오직 엄마만이 온전히 소유하고 있을 테니까. 엄마를 전율하게 한 가장 첫 번째 감각은 무엇인지, 성장기에는 어떤 미래를 생각하며 불안을 견디었는지, 순도 높은 행복을 느낀 날들은 생애에서 며칠이나 되는지, 그런 걸 아는 사람은 엄마 자신 뿐인 것이다. 어느 초여름에 베어 먹은 복숭아의 떫은 단맛이 어떻게 엄마의 몸 안에 퍼져갔는지, 배를 앓던 날의 베개 너머 꿈의 입구는 어떤 세상을 열어주었는지, 첫딸을 처음 품에 안은 순간 뜨겁게 눈물을 쏟아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런 것도, 박물관이나 도서관이 그 안의 기록물과 전시품, 서적과 함께 사라지듯 엄마가 엄마의 시간을 안고 이 지상에서의 자취를 거두어간다고 생각하면…….

  허무했다.(14쪽)


  주인공의 겨울은 엄마의 죽음 이후 엄마가 운영하던 식당과 엄마의 집에서, 엄마가 키우던 강아지와 함께, 엄마가 남겨놓은 김치를 먹으며 그렇게 흘러간다. 소설 제목 ‘겨울을 지나가다’는 참 정직하면서도 주인공의 마음이 봄으로 향해 가는 여정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을 보면서 문득문득 얼마 전 보았던 영화 ‘3일의 휴가’가 생각나기도 했다.


  엄마의 죽음을 주인공은, ‘엄마가 엄마의 시간을 안고 이 지상에서 자취를 거두어간다’고 표현했다. 이 표현에 문득 눈물이 나서 책을 덮었다. 지금 우리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아이는 아이의 시간을 채워가고 있고 나는 내 시간을 채워가느라 부모님의 시간을 잃어버리면서 살아갈 때인 것 같다. 사랑은 결국 내리사랑이라 엄마에 대한 걱정과 관심보다 내 아이에 대한 관심이 더 커서 나는 늘 엄마의 존재를 잊고 산다. 그러다 문득 아플 때면, 엄마가 먼저 생각나고, 엄마가 보고 싶고 그런 마음에 휩싸인다. 얼마 전 엄마랑 통화하는데 엄마가 많이 아프셨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에게 왜 병원을 안 가냐고, 병원을 가라고, 짜증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이내 후회했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엄마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아파서 한 시간을 엄마를 부르며 뒹굴었다.”

엄마도 엄마를 찾는구나. 그런 마음,      

 

 나는 왜 엄마의 시간을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나는 내 시간은 그냥 살아내고, 아이의 시간은 감동스럽게 지켜보면서 엄마의 시간은 왜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우리 엄마의 시간.

  어느 겨울밤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항아리에서 홍시를 꺼내 반으로 갈라 숟가락으로 떠 드셨다. 그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엄마는 옥상 위 항아리 안에 홍시를 차곡차곡 쌓아두셨다가 하나씩 꺼내 드셨다. 나에게 겨울은 엄마의 그런 모습이 기억나는 계절이다. 더 시간을 거슬러 가을 어느 날, 하늘이 참 맑아 구름이 예쁘게 보였던 어느 날. 엄마가 옥상에 올라 천고마비의 계절이구나, 이렇게 말씀하셨던 어떤 순간. 나는 아빠를 더 많이 닮았다고들 하지만, 엄마의 감수성은 생활 속에 묻혀 잘 나오지 않았지만 분명 엄마의 감수성이 나의 삶에 더해졌음을 이제는 안다. 엄마의 시간을, 나는 귀를 기울여 들여다보아야겠다.      


2. 봄이 오는 소리


  어제 정미와 걸었던 둑길에서도 디졸브 되는 화면처럼 닫혀가는 겨울과 열리는 봄을 목격했다고 나는 영준 씨에게 말했다. 둑길에 쌓인 눈은 남아 있거나 녹아 있었고 둑 아래 작은 천은 살얼음을 띄워놓긴 했지만 그 주변이 거의 다 해빙되어 있었다고도. 나와 나란히 서 있던 정미가 부리가 노란 검은 머리새를 발견하고는 꼬리를 흔들며 짖었는데, 정미의 입가에서는 마치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한 듯 아주 짧은 입김만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금세 흩어졌다. 존재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 사라진 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녹은 눈과 얼음은 기화하여 구름의 일부로 소급될 것이고 구름은 다시 비로 내려 부지런히 순환하는 지구라는 거대한 기차에 도달할 터였다. 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부재로써 현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 이번 겨울에 나는 그것을 배웠다.

  슬픔이 만들어지는 계절을 지나가면서. (132쪽)


  소설의 구성은 동지에서 시작하여 대한을 지나 우수에 이르러 끝이 난다. 우수(雨水). 24 절기 중 두 번째 절기. 우리가 봄비라 부르는 그 어떤 신호, 주인공의 엄마의 옷을 입고, 엄마가 걸었던 거리를 걸으며, 엄마가 키우던 강아지 정미와 산책하며 슬픔을 슬픔으로 극복하고 있다. 엄마의 부재를, 부재하면서 현존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우리는 종종 슬픔과 아픔이 잊힌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게 시간이 약이라고 그렇게 위로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 말이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잊히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슬픔을 감추는 방법을 터득해서 적절히 숨기는 것이라고, 때로는 기억으로 인해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라고. 그래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살고 싶어 한다고 늘 생각해 왔으니까. 엄마 자신을 위해서 병원을 다니고 치료를 받은 거라고 믿었으니까. 실은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서 다만 버틴 것일 뿐, 대체 언제부터 엄마가 죽음에 투항한 상태였는지 나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26쪽)


  주인공이 엄마의 죽음 이후 아프게, 정말 아프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엄마가 죽음과 끝까지 대항한 것은 혼자 남은 딸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주인공에게는 먼저 결혼한 동생도 있었지만, 엄마에게는 자신을 간호하는 혼자인 그 딸이 늘 마음에 걸렸나 보다. 그래서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 버티고 싶었나 보다. 주인공의 슬픔은 엄마를 이해함으로써, 더 깊어졌다. 미안함에.      


3. 정리


  2023년도가 저물고 2024년도가 시작되는 지금은 동지(冬至)를 지나 대한(大寒)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대한(大寒), 24 절기 중 마지막 스물네 번째 절기가 대한이다. 정말 추운 시간도 있었고, 마치 봄 같은 따뜻한 시기도 있었지만, 아직 대한이 오지 않았으니 더 큰 추위에 대비해야겠지, 그런 마음을 먹게 되는 계절, 여전히 겨울. 어제는 눈이 많이 와서 집 밖을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비가 내려 눈이 다 녹은 오늘은 하늘이 맑고 청명해 해가 저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번 겨울을 지나며 나는 삶의 소중함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다. 우선 가치를 어떻게 두어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고 있다. 유난히 아팠던 올 한 해, 아픔에 겁을 먹게 되었고, 아플까 봐 겁이 나는 것이 어떤 것이지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선뜻하지 못하는 일이 생겼고, 두려움에 머뭇거리는 일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나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소중한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나게 되고, 그 무게가 겁이 나면서도 2024년도에 더 깊이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소중한 누군가의 시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그 사람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면 나눠 봅시다.

2) 지금 겨울을 어떻게 지나고 있으며, 어떤 봄을 맞이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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