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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Feb 12. 2024

책들의 시간 72. 신을 구한 라이프보트

# 신을 구한 라이프보트_미치 앨봄 지음, 장성주 옮김_윌북


  이번에 읽은 책은 미치 앨봄의 ‘신을 구한 라이프보트’이다. 번역 제목보다 원제가 더 좋게 느껴지긴 했다. ‘THE STRANGER IN THE LIFEBOAT’.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아주 오래전에 읽었다. 그냥 기억이 좋아 이번 책도 기대감을 가지고 읽었다. 하지만 이번 책은 나에게는 조금 아쉬운 책이다. 기대하는 바가 커서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책을 다 읽은 지는 며칠 되었으나,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느라 글을 쓰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하고 싶은 이야기의 맥을 못 잡았다. 막 딴지를 놓고 싶은 나쁜 마음이 내 안에 가득하여서.  

    

1.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러나 ‘릴리’가 죽고 나서 릐폴뢰르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하느님이라고? 요즘 세상에 누가 하느님을 찾는단 말인가? 장모가 일광욕 의자에 누워 잠들었을 때 하느님은 어디에 있었을까? 딸아이가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빠졌을 때 하느님은 어디에 있었을까? 어째서 하느님은 그 아이의 조그만 발을 반대 방향으로, 안전한 쪽으로, 집 쪽으로, 엄마와 아빠가 있는 쪽으로 돌려놓지 않았을까? 도대체 어떤 신이 어린애가 그런 식으로 죽게 내버려 둘까?

  보이지 않는 힘은 어떠한 위안도 주지 않았다. 르플뢰르에게는 그랬다. 오로지 눈앞에 놓인 문제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만 중요했다. (273쪽)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감히 정의 내리지 못한다. 내 정의에 하나님의 존재가 가려질까, 좁아질까, 아니면 내가 정의 내린 하나님으로만 존재하실까, 그런 두려움 때문이다. 크고 넓은 어떤 존재를 내가 정의 내리는 것이 어리석다 생각할 때가 더 많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신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갈 때가 많다.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으로 인해 오히려 믿지 않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많은 것,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냥 ‘딴지’이다.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 신의 존재에 대하여. 


  이 책은 여러 시점과 시간을 교차하여 서사를 이끌어가는 책이다. 바다에서의 사고로 인해 보트에 탑승한 몇몇의 사람들, 그중 ‘벤지’. 아내가 죽고, 아버지의 존재를 알지 못하며, 어머니의 정신착란을 견디며 살아갔던 벤지의 이야기와, 어린 딸이 바다에 휩쓸려 죽고 난 다음 모든 일상이 무너져 더 이상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육지에서의 ‘르플뢰르’ 이야기가 함께 교차하여 나오고 있다. 딸이 죽고 난 다음 르플뢰르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의 위안을 믿지 않았다. 

  이 책이 나의 기대를 채워주지 않았던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의 위안, 나는 그 힘을 강렬하게 느끼고 싶었나 보다. 환상이라고 할지라도, 현실의 삶에서 환상을 느낄 수 없으니, 나는 어떤 기적들을 소설 속에서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바다에서 표류하여 작은 보트를 의지한 사람들이 신이라 주장하는 사람을 태웠을 때 그 ‘이방인’이 보여주는 어떤 힘들, 생과 사를 다스리며 삶을 성찰하고 반성하게 하며, 결국은 변화를 이끌어 사람들이 고난의 순간에 죽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어떤 모습들이 결말로 그려지기를 바랐나 보다. 신은 그러한 존재라 생각하기에.      


  “벤저민, 누가 죽으면 사람들은 꼭 이렇게 물어요. ‘하느님께서 왜 저들을 데려가셨을까요?’ 그보다 더 나은 질문은 이거예요. ‘하느님께서 왜 저들을 우리에게 주셨을까요?’ 우리가 무슨 수로 저들의 사랑과 기쁨과 즐거운 순간들을 함께 누릴 자격을 얻었을까요? 당신도 애너벨과 그런 순간들을 누리지 않았나요?”

  “날마다 누렸어요.” 난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어. 

  “그런 순간들은 선물이에요.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끝나는 게 곧 벌은 아니에요. 나는 결코 잔인하지 않아요, 벤저민. 나는 당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당신을 알았어요. 당신이 죽은 후에도 당신을 알 거예요. 당신을 위한 나의 계획은 이곳에 국한된 게 아니니까요. 시작과 끝은 지상의 개념일 뿐이에요. 나는 계속돼요. 상실감은 당신이 지상에 있는 까닭의 한 부분이에요. 상실감을 느낌으로써 당신은 인간의 삶이라는 덧없는 선물을 만끽하고, 내가 당신을 위해 창조한 세계를 어떻게 아끼고 간직할지 배워가는 거예요. 하지만 인간의 형상은 영원하지 않아요.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요. 영원이라는 선물은 영원의 몫이에요. (323쪽)


  한참을 오래 생각해야 발견하게 되는 구절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신의 선물이지만, 그들과의 이별이 신의 벌은 아니라는 구절. 지상의 개념으로 신을 생각하지 말라는 구절. 상실감을 통해 인간이 덧없는 삶을 느끼고, 신이 창조한 세계를 아끼고 간직하기를 바라는 신의 마음. 어렴풋이 이해는 하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어렵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저들을 주셔, 저들의 사랑과 기쁨과 즐거운 순간들을 함께 누릴 자격을 주셨다는 말. 그 말이 내내 마음에 남아 일상의 감사함을 회복하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2. 정리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던 단어가 ‘기적’이라는 단어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순간에 기적처럼 다시 살아나는 일, 이 책은 그런 기적을 기대하게 되는 책이다. 그러면서 때로는 기대를 저버리는 기적의 유형에 실망하게 되는 책.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면, ‘기적’이라는 것을 우리가 선택할 수 있을까? 기적의 유형이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고 ‘기적’이 아니라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어느 날, ‘당신을 지탱하는 힘은 일상의 기적처럼 51억의 비싼 두 다리입니다.(서울신문, 강동삼)’라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박완서 작가님의 수필 ‘일상의 기적’을 인용하여, 오름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소개한 글이었다. 한참 책에 대하여 생각하던 중에 만난 기사에서 내가 책에서 발견하고 싶은 부분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이 책은 일상의 기적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책을 다 읽고 ‘기적’이라는 것이 죽음에서 살아난 어떤 기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도 기적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좋았다. 내 주변을 둘러싼 기적 같은 사람들, 기적 같은 일들, 기적 같은 시간들. 평범한 일상이 기적으로 다가오는 시간들. 책이 완벽한 어떤 감탄과 감동을 준 것은 아니지만 잔잔하게 밀려드는 생각에 젖어들게 한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일상 속에서 ‘이건 신의 선물이다’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일상의 기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나눠 봅시다. 자신의 삶에서 기적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 시간,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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