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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라헬 Aug 13. 2024

건진국수는 사랑을 실고

라헬의 국수사랑

 건진국수 는 사랑을 실고 

    

   육 개월 동안 매달려왔던 때늦은 공부. 아니 시간을 지우기 위한 방편이었던 한식조리기능사 시험이 어제 끝났다. 합격여부는 제쳐두고라도 스스로 등에 졌던 선물 같은 짐. 그 짐을 내려놓으니 홀가분하고 섭섭한 마음도 든다. 이래서 시원섭섭 이라는 말이 생겼을 테다. 

   허나 생각해보니 뿌듯한 시간이었다. 온 맘을 다해 대견하다며 등을 두드린다. 수강생중 최고령임에도 부구하고 게으름 피지 않고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공부했으니까. 그랬던 나에게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며 과분한 칭찬까지 넉넉하게 하면서. 시험 후 어제부터 오늘까지 이틀을 꼬박 잤다. 거의 20시간 이상을.


   오전 글쓰기 화상수업 후 배고픔과 더위에 짓눌려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며 머리를 굴린다. 힘 안들이고 시원하면서 맛있고 배부른 것은 무엇일까. 문득 얼마 전 냉동실에 얼려둔 해물육수가 떠올랐다. 틈틈이 읽어왔던 ‘안도현의 발견’ 이라는 책의 내용 중 맛의 발견 쪽, ‘건진국수’ 부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올여름이 가기 전 꼭  경험해 봐야겠다는 기억에 초점이 맞춰진다. 


   ‘건진국수’는 한마디로 차가운 냉 칼국수인데 소면대신 밀가루에 콩가루를 듬뿍 넣고 반죽한다고 한다. 충분히 치댄 반죽을 홍두께로 밀어서 알맞게 썬다. 썬 국수를 삶아서 차가운 멸치육수에 말아 먹는 냉국수의 이름이다. 갖은 양념을 넣어 만든 양념장의 농도는 특히 빡빡해야 제격이란다. 게다가 얇게 채친 애호박볶음과 얌전하게 부쳐서 채친 황백지단 고명은 ‘건진국수’의 화룡정점임을 작가는 누누이 설명했다.


   옳다! 지금이 바로 ‘건진국수‘를 먹어야만 하는 시간이다.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만 하 룻 동안 못 먹어서 먹고 싶은 음식을 단 일 초 만에 생각해낸 의지의 한국인인 나. 시간이 아까운 듯 온 몸을 불사르며 국수 만들기에 몰입한다. 물론 손칼국수를 민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일 임은 당연하다. 메밀국수로 삶을 준비를 한다. 꽁꽁 언 육수는 전자랜지로 해동 시킨다. 마음이 바쁘다. 시장 끼 가 더욱 기승을 부리며 나의 침샘을 자극하니까. 먹는 것에 목숨을 거는 내가 어떻게 만 하루를 잠만 잤을까. 

   대식가인 내가 배고픈 것을 참아냈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며 눈알을 히득댄다. 더하여 이제껏 참아온 모든 것들에게 애정 어린 연민의 눈빛을 흘린다. 참는데 이골이 난 나였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을 거슬려 올라간 자신이 대견하기까지 한 심중은 무엇이라 표현해야할까. 정신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양념장을 만든다. 

    삶아서 얼음물에 꼬들꼬들하게 행군 메밀국수. 예쁘게 따리를 틀어 사기대접에 담는다. 그사이 잽싸게 부친 황백 지단과 볶아놓은 애호박도 국수위에 아름답게 올린다. 차가운 육수를 붓고 그 위에 빡빡한 양념장을 듬뿍 올리며 입맛을 다신다. 이십 여 분만에 만들어진 ‘건진국수’는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니. 메밀국수의 꼬들함 은 함흥냉면의 식감보다 좋았고 해물육수의 시원한 맛은 슴슴한 평양냉면육수의 그 맛보다 더 훌륭했다.


   어쨌든 곱빼기로 거하게 배를 채운 후 ‘건진국수’와의 첫 대면을 성공리에 맞춘 것에 감격했다. 배부른 행복을 감지한 내 몸을 대자로 눕힌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강동구에 ‘건진국수’집을 차려도 좋겠다는 생각 말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의 인연들에게 대접을 꼭 하리라며 새끼손가락을 건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이런 생각이 문득 났다. 나는 왜 맛있는 것을 먹거나 보면, 그리고 요리를 할 때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각날까.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좋은 것을 볼 때 생각되는 사람.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생각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내 사랑의 대상이라고.

   아! 맞다. 내가 몸담고 문예창작반을 사랑하고 그 안에 속한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맞고 또 마땅한 것 같다. 요리를 하면서도, 먹으면서도 그네들을 언제나  생각하니 말이다. 모국에서의 나의 지경은 매우 좁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서일까 그들이 나의 전부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을 테다. 생각을 모은다. 이만한 사람들이 또 어디에 있을까하며 한사람, 또 한사람 얼굴을 그리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비록 소리 없는 목소리지만 내가 전하고 싶은 감사에 사랑을 더 얹으면서.


   언제 뉴욕으로 돌아갈게 될지 모른다. 어쩜 계속 이곳에 있게 될는지도 모르지만 늘 그네들은 내 안에 있을 것이다. 좋은 곳에 있을 때, 맛있는 것을 요리하고 먹을 때마다 그네들은 내 가슴에 있을 테니까. 실기시험 후의 후련하고 나른함에 취해 ‘건진국수’로 위로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멀리 있는 아들들과 그네들이 내 안에 있음은 사랑이리라. 


   내 안의 사랑을 확인 시켜주는 지금. 이 시간이야말로 내겐 너무도 귀하고 소중하다. 일자산 자락에서 봄밤을 맞은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여름. 올 봄, 봄밤에 이어 미나리와 매생이로 시작된 나의 글, 글은 고추장찌개를 거쳐 시래기 밥과 건진국수로 올 여름을 마감 한다. 

   세월은 거침없이 흐른다. 예전에는 유유히 흐르게 보이던 강물도 요즘에는 부쩍 그 흐름이 빠르게 느껴지기만 하니까. 거침없이 흘러왔던 나의 삶. 이젠 차분하고 아름다워야 만 할 테다. 숨차게 살아냈던 시간은 추억으로 남기고 주위를 돌아보며 천천히 걸어야겠다. 안성맞춤 인 나만의 신발을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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