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교양 있는 아줌마
Nov 25. 2022
나는 어떤 모양새로 말을 할까.
말소리의 높낮이의 변화는 그리 크지는 않으며
톤은 저음에 가깝고, 목소리의 크기는 큰편이다.
나의 말투에는 또한 다양한 지역의 사투리와 표준어가 뒤섞여 있다.
서울 말을 쓰는 단아한 이미지를 선호하는 나의 꾸민 모습과
고향 말을 쓰는 우왁스러운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과
타지역에서 살면서 수년째 듣고 있는 말을 종종 흉내내는 나의 따라쟁이 모습이 옴팡지게 혼합되었다.
나의 말버릇은 딱히 모르겠다.
"아이들이 가끔씩 엄마 왜 이렇게 무섭게 말해?"라고 할 때 좀 억울한 감이 있다.
나는 단호하게, 명확하게, 알짜배기만 말한다고 했는데, 아이들은 나의 말투가 무섭다며 잉잉거렸다.
아마 의식적으로 점잖게 말하고자 한 나의 심리가 반영되었기에 그런 느낌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정말 무의식적으로 나누는 대화에서도 아이들은
내 말투에서 채근한다고 느끼는 듯했다.
첫째 땡땡이에게 지금 배고픈지 물어보고 저녁을 준비한 후 "땡땡아, 어서 저녁먹어~"라고 했는데
땡땡이는 나보고 재촉한다고 뭐라한다.
그 뒤에도 숙제를 다 끝낸 것 같아서
"땡땡아, 이러닝은 끝났어?라고 하면
"아니 지금 하고 있잖아 ~ 왜 물어봐~~마음 급해지게~"
라고 말하니 당황스러웠다.
내 말의 뉘앙스에 늘 그런 다급함이 있나 보다.
말은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매개체이니
시간에 쫓기는 급한 마음과 성격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을거라 생각된다.
이 점을 알아채지 못하고 나는 자칭 부드럽게 물었는데
왜 아이들은 내가 말만 하면
화내면서 받아치는지, 방어적으로 말하는지 의아스러웠다.
마음이 편해야 말도 편안하게 나온다.
엄마 마음이 평온해야 아이들도 그 감정을 전달받는다.
나는 내 표정을 못보지만, 아이들은 내 표정을 순간순간 본다.
말투는 차분하게 한다해도 표정과 분위기는 숨길 수 없다.
아이들은 시간이 흘러 팩트로서 과거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그때의 무드, 분위기, 느낌적인 느낌, 엄마의 손길, 표정으로 포장된 감정으로서 과거를 회상한다.
성격이 급한 나는 말의 속도도 빠르고 ,
감정기복이 어느 정도 있기에 어투도 롤러코스터다.
화가 났으면서 늘 "아니야, 엄마가 화난게 아니라 너한테 알려주려고 하는 말이야." 라며
이성적인 척 혼자 해봤지만, 아이들은 다 느껴지는가보다.
말투에서도 엄마의 간장종지그릇 사이즈가 나오는 것 같다.
쏘아붙이는 말투, 다급하게 긴박하게 옥죄는 말투,
힐난하는 말투, 미간을 찌부리는 표정,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 나홀로 엄근진 표정.
다 나와 아이들 사이에서 불필요한 감정싸움만 유발하고 그저 나의 기분을 그대로 노출하는 어투일 뿐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나와 대화가 안된다고 벽을 치면 어떡하지 생각하니 막막하다.
순간순간 나의 이런 말본새들이 내가 아이들에게 노력한 것들은 다 휘발되게 만들고 나와의 추억까지 망칠까봐 두렵다.
마음을 고쳐먹어야 내 말에 진심이 깃들 것이고,
아이들은 내 말을 성심껏 받아줄 것이다.
뜯어고치지 못하는 성격은 어떻게 해야할까?
그건 좀 의식적으로 과장되게 차분하게 늘려서 친절한 어투로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땡땡아, 엄마는~ 지금~ 쵸큼~ 바쁜데~ 있다가~ 이야기~ 할까아아아아?" 찡긋.
아휴...........................
증말 엄마가 되어보니 나를 더 잘 알게 된다.
거미줄처럼 고칠점 투성이라는게 함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