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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Man Oct 04. 2023

베네치아의 커피와 음식 이야기 2

히맨の이탈리아 기행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는 자가용 같은 이동수단인 곤돌라는 관광객에게는 이동수단이라기보다는 그저 체험해 보는 관광상품이다. 곤돌라에 한번 타보는 가격은 자그마치 80유로였다. 겨우 20분 남짓 타보는데 한국돈으로 10만 원이 훌쩍 넘는 묵직한 가격을 듣고 내가 잠시 고민하자 뱃사공이 뭐라고 말했다. "비싼 것 같나요? 손님, 이 곤돌라 하루 빌리는 데 얼만 줄 아십니까?" 내가 정확히 알아들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뱃사공은 젠틀한 어조로 그렇게 말하는 듯했고 나는 왠지 모르게 그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탄탄한 몸매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마치 빠삐용에 나오는 죄수복 같은 두꺼운 빨간색 가로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것이 모든 곤돌리에들의 정해진 복장인 듯했다. 그는 프로페셔널하고 정직해 보였다.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곤돌라 투어를 시작했다. 나는 이런 관광객 투어에는 돈을 잘 쓰지 않는 편이었지만 베네치아에 와서 곤돌라를 타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뱃사공은 소리도 내지 않고 능숙하게 노를 저어 일단 마르코 폴로의 집을 소개해 줬다. 베니스 공항 이름도 마르코 폴로인 것을 보면 이 도시의 최고의 스타는 역시 그분인 듯하다. 12세기 우리가 아직 '고려'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을 때 그는 베네치아를 떠나 몽골제국까지 여행했던 탐험가이자 상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의 주인공 이름이 '마르코'였다. 그리고 그 영화의 배경이 바로 이탈리아 아드리아해였던 것을 보면 분명 연관이 있어 보인다. '붉은 돼지'의 주인공 '마르코'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공군 조종사 출신의 파일럿이다. 극 중에 나오는 소녀가 세상에 파일럿만큼 멋진 남자는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나도 한때는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베니스의 상인이자 탐험가였던 마르코 폴로의 생가를 지나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베네치아에 그냥 어쩌다 오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과연 우연이었을까?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나는 겨우 13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에 왔지만 그가 원나라를 떠나 베네치아로 돌아올 때까지는 얼마의 시간과 노력이 걸렸을까? 마르코 폴로가 이 시대로 돌아와 비행기를 탄다면 어떤 느낌일까? 나는 곤돌라에 앉아 비행기를 조종하는 마르코 폴로를 상상했다. 그러고 있자니 희미하게 옅여져 가던 옛 꿈이 마음속에 슬그머니 생각났다. 언젠가 비행기를 조종해보고 싶다는 꿈.


곤돌라는 그렇게 마르코 폴로의 생가를 지나 날렵하게 움직이며 베네치아의 이곳저곳을 유영해 나갔다. 곤돌리에는 너무 수다스럽지도 너무 조용하지도 않았다. 그는 질문하면 대답했고 필요한 정보만을 제공했는데 곤돌리에가 되려면 6개월간 400시간의 트레이닝을 마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곤돌리에 면허는 400개로 제한되고 하루에 나오는 곤돌리에는 150명으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뱃사공이지만 연봉이 2억 원이 넘는다고 하니 보기보다 굉장히 프로페셔널한 직업이었다. 하늘에 작은 경비행기 조종사가 있다면 베네치아의 물길에는 곤돌라를 조종하는 곤돌리에가 있다.

 

나는 2~30분 정도 만족스럽게 곤돌라 투어를 마치고 제대로 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서 리알토 다리 근처로 이동했다. 리알토 다리는 베네치아 대운하를 건널 수 있었던 유일한 다리로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도 등장한다. 식당은 운하 바로 옆에 녹색 테이블을 나란히 줄지어 둔 고전적이고 정다운 느낌의  레스토랑이었다. 지배인은 친절하게 메뉴를 설명해 주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메뉴를 고르고 있는데 내가 앉은 테이블 옆으로  계속해서 곤돌라가 지나다녔다. 가끔 어떤 곤돌라에 탄 사람들은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곤돌라에 서서 오페라 아리아를 열창하는 여자가 있었고 아코디언이나 기타로 누군가가 옆에 앉아 반주를 했다. 음악이 있는 곤돌라는 10분 간격으로 내가 앉은 테이블 옆을 지나갔다. 눈과 귀가 즐거웠다.  이제는 입이 즐거울 차례, 나는 오븐에 구운 생선과 감자 그리고 베니스의 명물인 블랙 파스타를 주문했다. 블랙파스타는 오징어 먹물로 만든 검은 소스를 올린 스파게티로 별로 맛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어디에나 팔고 있어서 한 번쯤 먹어봐야 할 것 같았다. 저녁에는 해산물 요리를 몇 가지 주문했는데 제주도에도 많이 나는 딱새우가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오징어와 생선, 갑각류도 아주 맛있었다. 해산물에는 쇼비뇽블랑을 한잔 마시고 블랙 파스타를 마실 때는 레드 와인도 한잔 마셨다. 마지막으로는 샤르도네 스푸만테(이탈리아산 스파클링 와인, 스페인산은 스파클링와인은 '까바'라고 한다.)도 한잔 마셨다. 상쾌한 마무리였다.

 

그렇게 식사를 하는 중에도 물길에는 계속해서 곤돌라가 지나다녔다. 곤돌라 안에 있는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거나 노래를 불렀다. 악기를 연주하고 리듬을 탔다. 요즘 해수면 상승하여 우기 때나 도시가 침수되어 거리에 발목까지 물이 찬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베네치아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서 맥주를 마시고 와인을 마시고 파스타와 피자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며 살고 있었다. 나는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이제는 천천히 미로처럼 좁은 골목들을 걸어 보았다. 골목들은 대게 양팔을 벌리면 닿을 정도로 좁았다. 베니스에서는 자전거도 오토바이도 별로 보지 못했다. 물길이 아니라면 걷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단 걷기로 한날은 모든 짐은 숙소에 두고 최대한 가볍게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가벽게 동네 구경 사람구경하며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거나 디저트를 먹는다. 그럴 때마다 틈틈이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구글맵에 위치를 활성화시키고 다음 계획을 짜나간다. 사실 계획이라 봤자 다음 숙소를 예약하거나 이동수단을 예약하는 정도이다. 나는 식당이나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핸드폰에 물어보는 대신에 최대한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같은 호스텔에 묵는 여행자도 좋고 현지인도 좋다. 더듬거려도 좋다. 영어든 이탈리아어든 심지어 한국말로 라도 그냥 물어본다. 그렇게 사람들과의 만남에 나를 최대한 노출시킨다. 물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모바일로 검색하는 것에 특화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행 중에는 최대한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한다. 어쩌면 그저 디지털 부적응자일지도 모른다. 뭐 각자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검색을 잘하는 사람은 좀 더 맛있는 식당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와서 설령 맛없는 한 끼를 먹는다고 해도 다른 사람과 함께 먹는 것이 낫지 않은가? 만약 혼자 여행을 왔다면 대부분의 식사는 혼자 하게 될 것이지만 현지 사람들이나 여행자 친구를 만나서 함께 이야기하며 식사를 하게 된다면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혼자 하는 여행은 대부분의 시간이 외롭지만 그러다가 가끔 생기는 작은 이벤트들은 평소보다 특별하게 느껴진다.


베니스에 도착한 둘째 날 밤 호스텔에서 만난 독일친구가 저녁식사 모임에 함께 하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나는 흔쾌하게 초대를 받아들이고 그날 저녁 본섬의 어느 골목길 구석에 있는 핏자리아에 갔다. 일행은 우리 말고도 더 영국인 남자 한 명, 미국인 남자 한 명, 캐나다 여자 한 명까지 총 5명이었다. 어떻게 모이게 된 모임인지는 몰랐다. 이 친구들도 서로 처음 보는 사이 같았다. 내 룸메이트인 독일 친구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였고 일행 중에는 30대도 40대도 있었다. 다양한 나이 때의 다양한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끼리 모여 영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나이 차이가 느껴지지 않고 모두 그냥 친구가 된다. 특히나 여행할 때는 그렇다. 꽤나 붐비는 식당이었기 때문에 실내에는 자리가 없어서 우리는 야외 테이블에 앉았는데 오히여 더 정취가 있었다. 각자 메뉴를 살펴보고 취향껏 피자를 주문했다. 나는 풍기(버섯) 피자를 시켰다. 이탈리아에서 버섯은 고기요리로 분류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채식 피자에는 꼭 버섯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친구는 야채와 해산물 들어간 피자를, 어떤 친구는 살라미가 올라간 피자를 시켰다. 나는 테이블 위에 올라온 모든 피자를 주욱 살펴본 뒤 고기가 듬뿍 들어간 피자를 시킨 영국친구에게 “네가 이겼다.”라고 말했다. 함께 있던 친구들 모두 웃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내게 뭘 제일 좋아하는지 내게 묻는 다면 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라고 말하고 싶다. 피자가 나왔을 때 처음에는 너무 사이즈가 커서 다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한입 먹어보니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갔다. 피자는 내가 이때 껏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큰 기대는 없었는데 너무 맛있다고 말하니까 장소를 결정한 내 독일 룸메이 트는 구글 리뷰가 아주 좋았었다고 말했다. 검색은 역시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 나는 검색을 잘하는 친구를 만나 맛있는 저녁을 먹게 된 것이 뿌듯했다. 웨이터는 하우스 화이트 와인을 유리로 된 저그에 듬뿍 담아주었다. 우리는 신선한 와인을 각자의 잔에 가득 따라 "살루때"라고 말하고 부딧치며 우리들의 아름다운 베네치아의 밤을 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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