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eMan Sep 21. 2023

사고나서 후회되는 것들 1

히맨の이탈리아 기행

"이걸 도대체 왜 샀을까?"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후회되는 순간들이 있다. 후회할 짓을 하지 않으려 매 순간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려 하지만 마치 체스보드 위의 말들처럼 움직이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때로는 뼈아픈 후회와 반성을 하고 나서도 똑같은 실수들을 반복한다. 하지만 체스게임이 그렇듯 그런 경험들이 쌓여가며 조금씩 나아진다.


 

내가 최근에 사고 나서 제일 후회한 물건은 1년 전에 산 가방이었다. 작년에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면세점구경을 하다가 발견한 검은색 비즈니스 가방이었는데 한 손으로 들 수도 있고 어깨끈을 달아 등에 맬 수도 있는 제품이었다. 마음에 들어서 한참을 만지작 거리다 가격표를 보고는 조용히 원래 자리에 내려놓고 나왔었다. 면세점 직원들이 보기에도 내가 보기에도 그 가방은 나에게 썩 잘 어울렸었지만 그 가격은 당시 내게 너무 큰 사치라고 여겨졌다. 나는 제주도 시골마을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값비싼 가방을 사용할 일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몇 달 동안 계속 머릿속에 그 가방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결국 그 가방을 사버렸다. 내가 고민하던 사이에 환율 때문인지 100달러 정도 가격이 올라있었다. 최소한 충동구매는 아니었다. 몇 날 며칠도 아니고 몇 달을 고민하다가 구입했으니 이건 사야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구매합리화를 해보려 하지만 나는 그 가방을 사고 나서 지난 1년  동안 밖에 딱 두 번 들고나갔다. 쓸 일도 없는 가방을 자그맣지 미화 1750달러, 한국돈으로 2백만 원을 넘게 주고 사다니 분명 뭔가 씌었던 것 같다. 왜 비싼 가방은 내구성도 약한 것인가? 벽에 조금만 닿아도 스크래치가 생길법한 연약한 재질이기 때문에 혹여 흠이 날까 봐 자주 들고 다니지도 못하고 집에 모셔만 두고 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라면 팔면 되는 데 나는 그것도 잘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거실 한구석에 놓여 있는 그 검은 가죽 가방을 보며 후회한다.

 


 

그전에 내가 가진 가방이라고는 5년 넘게 사용한 검은색 잔스포츠 백팩이 유일했다. 그 가방은 출근할 때나 여행 갈 때나 항상 매고 다녀서 이제는 낡을 데로 낡은 물건이지만 아직 기능적으로는 쓸만하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옆에 놓여있다. 이 백팩은 마치 내가 20대 때 처음 구입한 자동차를 닮았다. 중고로 600만 원을 주고 산 배기량 800cc의 작고 아담한 검은색 경형승용차. 아주 유용하고 경제적이지만 어쩌면 초라하고 볼품없던 나의 첫 자동차. 반면 거실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저 고급 소가죽 가방은 내가 5년 전에 구입한 새 자동차를 닮았다. 나는 더 나은 새 자동차를 구입하고 나서도 15년 된 나의 첫 자동차 역시 아직 가지고 있다. 두 가지를 소유한다는 것은 어쩌면 욕심일 것이고 누군가는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같은 종류의 물건을 두 가지 소유하는 것을 즐긴다. 밝은 새것과 어두운 헌 것, 마치 프로야구 선수들의 홈, 어웨이 유니폼처럼 나는 하나는 편하게 쓰고 또 하나는 소중하게 아껴 쓰는 것을 좋아한다. 5년 전 그때도 굳이 새 자동차를 살 필요는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당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을 읽다가 그 소설에 등장하는 자동차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이다. 등장인물 중 한 캐릭터가 “이 자동차의 방향지시등 소리는 오르지 이 자동차만이 낼 수 있죠.”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부터 그 자동차가 궁금해졌고 서서히 빠져들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그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당시에 나는 잠잘 곳도 없어서 빠듯하게 운영하던 가게 창고에서 주워온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자고 심지어 가게 뒷주방에서 샤워를 하는 신세였기 때문에 번쩍거리는 새 자동차를 주차할 공간조차 없었다. 그러나 나는 정말 진심으로 그 차가 갖고 싶었다. 어린 시절 그토록 갖고 싶던 장난감을 지금 가져봐야 소용없듯이 나중에 내가 여유가 생긴다 한들 내 인생의 황금기가 될지도 모르는 지금 이 순간 합리적이라는 이유로 이미 10년이나 탄 800cc 경승용차를 계속 타려니 왠지 모르게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5년이 지난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그 자동차를 또 살까? 아마 사지 않을 것이다. 사고 나서 꽤나 후회했고 대가들을 치렀다. 하지만 그때는 맞았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사람이 늘 합리적으로만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산 것 중에 가장 후회했던 물건은 바로 베네치아에서 구입한 클래식 기타였다. 여섯 개의 나일론 줄로 이루어진 가볍고 포근한 소리를 내는 보드라운 디자인의 아이보리색 악기였는데 나는 그 악기를 구입하고 난 바로 다음날부터 이것은 내 물건이 아니다는 것은 깨달았다. 일단 악기를 케이스에서 잘 꺼내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물건은 딱히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것이기 때문에 꺼내지 신경이 않는다는 것은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라도 볼 수 있다. 심지어 나는 악기를 구입한 첫날 그 악기를 호스텔의 로비에 깜빡 잊고 놔두고 다음날 체크아웃 할 때까지 무심하게 두었다. 누군가 훔쳐갔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그만큼 나는 그 악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 왜 애초에 그 기타를 사게 되었을까?


 

나는 베네치 아아의 미로 같은 골목들을 탐험하다가 우연히 한 악기점에 들어갔다. 좁은 골목 사이에 자리 잡은 그 작은 가게에는 천장에 줄지어 매달린 아름다운 어쿠스틱 기타들과 여러 가지 근사한 악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쇼윈도 밖에서 구경을 하다가 유독 하모니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독일의 호너사에서 만든 황금색 10홀 다이아토닉 하모니카였는데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자세히 보니 역시 한정판이었다. 나는 첫눈에 그 하모니카가 마음에 들었다. 그 하모니카는 C장조였는데 나는 이미 C키 하모니카를 하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왕이면 다른 음계의 하모니카를 사고 싶었다. 하모니카라는 악기는 음계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음계의 하모니카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가게에 있던 그 황금색 하모니카는 오로지 C키뿐이라고 했다. 한정판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 상점에만 없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전 11화 베네치아의 커피와 음식 이야기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