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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Man Aug 21. 2023

베네치아의 커피와 음식 이야기 1

히맨の이탈리아 기행

베니스에서 처음 마신 커피는 '아메리카노'였다.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에 도착해서 바깥으로 나왔을 때 눈앞에 보였던 풍경은 내게 약간의 혼란을 주었다. 역 앞에는 큰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시간이 꽤 지난 뒤에야 그것이 바다란 것을 알았다. 물의 도시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물이 강물인지 바닷물인지도 모를 만큼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베니스에 도착했던 것이다. 물길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배들이 지나고 있었고 아름다운 다리 넘어 햇살이 눈부시게 내려쬐는 오전이었다. 사람들은 운하옆으로 늘어선 카페들과 식당에서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일단 배가 고팠고 와이파이도 필요했기 때문에 비교적 사람 많은 카페를 골라 야외 자리에 앉아서 메뉴를 살펴봤다. 역 근처에 있는 식당들은 베네치아에 막 도착한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곳이라서 '아메리카노'라던지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라던지 하는 메뉴들이 주를 이뤘다. 나는 그 식당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시 일어나서 다른 장소를 찾아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아메리카노와 훈제 연어와 아보카도를 곁들인 음식을 주문했다. 이탈리아에서 아메리카노 마신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탈리아의 카페에서는 대부분 에스프레소뿐이다. 에스프레소는 영어로는 '익스프레스'라는 뜻이니 당연히 핸드드립이나 모카포트에 비해 추출시간이 빠르고 간편하기 때문에 값도 싸다. 보통 시골에는 한잔에 1유로. 도시에서는 1.5유로 정도다. 전망 좋은 카페 야외테이블을 이용한다면 가끔 자릿세를 내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왠만하면 3유로를 넘지 않는다. 나는 원래부터 에스프레소를 좋아했는데 이탈리아를 다녀와서는 이제 잘 마시지 않는다.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카페에서 파는 에스프레소 가격이 너무 비싸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장소만은 아니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이해한다. 우리 나라 커피 가격에는 암묵적으로 공간에 대한 이용료가 붙어있는 것 같다. 아무튼 베네치아에 도착해서 오랜만에 마셨던 아메리카노 맛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음식도 그저 그랬다. 어딜 가나 역이나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이탈리아에 있을 때는 매일 3잔의 커피를 마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커피를 마실 생각에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나는 카페인에 중독되어 있었다. 이탈리아는 어디나, 정말 어디에나 카페가 있다. 그냥 아무 데나 가서 마셔도 된다. 커피 맛은 다 비슷비슷하게 훌륭하다. 카페들은 새벽부터 구워낸 크루아상이나 도넛, 머핀 같은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빵들을 쇼케이스에 넣어두고 손님들을 기다린다. 일용직 노동자처럼 보이는 남자들이 허름한 차림으로 하나둘씩 카페에 들어와 커피를 주문하고 간단한 아침식사를 한다. 에스프레소와 크루아상이라고 해서 고상한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나라에서 새벽에 노동자들이 지하철역 근처의 노점에서 토스트와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는 것 같은 풍경이다. 대부분은 앉지도 않고 그냥 서서 먹는다. 그들은 대부분 후다닥 식사를 마치고 5분도 안되어 입 주변에 설탕을 묻힌 채로 카페를 떠났다. 나는 급한 일이 없기 때문에 앉아서 느긋하게 마신다. 평소에는 설탕섭취를 줄이려 노력하지만 에스프레소를 마실 때는 설탕이 꼭 필요하다. 가루보다는 각설탕이 좋고 가능하면 덜 달고 천천히 녹는 비정제 설탕이 있으면 좋다. 풍미가 있는 설탕을 한두 개 넣고 천천히 녹여 가며 마신다. 데미타세(이탈리아어로 작은 잔이라는 뜻의 에스프레소 전용잔) 안에 절반쯤 덮인 크레마는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윗입술에 가득 묻혀서 코로 혀로 입천장으로 목구멍으로 전달시킨다. 싱글몰트 위스키를 니트로 마시듯이 입안에 감도는 황홀한 향을 음미한다. 쌉쌀하고 클래식하고 우아하고 정돈된 이탈리안 에스프레소. 야들야들한 크루아상을 한입 베어 문다. 진한 에스프레소 한 모금을 더한다. 첫 번째 커피는 이렇게 마신다. 정말 좋아하는 시간이다.

 

두 번째 커피는 보통 파니니와 함께 먹는다. 파니니는 이탈리아식 샌드위치다. 주로 치아바타에 블랙 올리브 살라미 모차렐라 치즈 루꼴라와 토마토소스가 들어간 것을 나는 좋아한다. 아침부터 이곳저곳 둘러보다 보면 금방 허기가 지는데 약간 이른 점심식사를 하며 또 커피 한잔을 마신다.

 

세 번째 커피는 늦은 점심을 먹을 때나 가끔 기름진 저녁식사를 마친 후 마신다. 이를테면 티본스테이크를 먹고 나서 라던지 아니면 오일파스타나 고기가 많이 올라간 피자를 먹고 나서 약간 느끼할 때 에스프레소 한잔을 곁들이면 그야말로 화룡점정. 더 부러울 것이 없다.



나는 한국에서는 드립커피를 하루에 한잔, 가끔 두 잔 정도 연하게 마신다. 또한 되도록이면 빈속에는 마시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이탈리아에 있을 때는 하루에 3잔씩 마셔도 속이 불편하거나 수면에 방해가 되거나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서양음식이 한식보다는 덜 담백하고 육식 위주여서 그런지 오히려 커피가 몸속에 기름기를 닦아 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탈리아 사람들도 빈속에 에스프레소를 마시지는 않는 것 같았다. 설탕 없이 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드물었다.


식사를 마치고 소화도 시킬 겸 걸어서 베네치아를 둘러봤다. 베네치아는 걸어서 충분히 다닐 수 있을 만큼 아담해 보였지만 막상 걷다 보면 상당히 넓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많은 여행자가 그런 생각으로 하염없이 걷다고 자기도 모르게 엄청나게 지쳐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베네치아에는 자동차가 없다. 역 주변에 버스는 있지만 그것은 다리를 건너 내륙으로 가는 교툥수단이지 베네치아 섬 안을 돌아다니지는 못한다. 일단 자동차가 다닐 도로가 없다. 물의 도시를 이동하는 법은 오로지 배를 타고 물길로 이동하거나 걸어 다니는 방법뿐이었다. 수상버스 요금은 하루권이 25유로, 이틀은 35유로, 3일은 45유로였고 한번 타는 데는 9.5유로였다. 구석구석 다닐 생각이라면 적당히 걷고 수상 버스를 활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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