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eMan Sep 11. 2023

베로나의 어느 선술집

히맨の이탈리아 기행

술집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친구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표정과 목소리는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지만 왠지 모르게 선량해 보이던 그는 픽사 애니메이션 카 시리즈의 서브 캐릭터인 '메이터'(주인공의 베스트 프랜드로 나오는 녹슨 견인차)를 연상하게 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으니 이 글에서는 그를 그냥 메이터라고 부르겠다.


 베로나는 이번 여행 계획에 없던 도시였다. 원래는 피렌체에서 볼로냐를 거쳐 동북방향으로 이동하려 했는데 숙소를 잘못 예약하는 바람에 도시에서 80km 떨어진 어느 시골 마을에 가게 됐고 경로가 북서쪽으로 미묘하게 틀어져버리며 마치 운명처럼 나는 베로나에 도착했다. 베로나라는 도시의 이름은 이탈리아에 가기 직전, 동네 단골 카페 사장님께 딱 한번 들은 적이 있었다. 내가 이탈리아에 간다고 하니 카페 사장님 부부 두 분도 얼마 전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다녀왔고 로마, 피렌체도 인상적이었지만 베로나라는 도시도 좋았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도시의 이름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베로나 포르타 누오보 기차역에서 예약한둔 호스텔로 가려다가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잠시 헤맸었는데 곧 다시 반대로 갈아타서 시내 중심부로 오게 되었다. 도시는 첫인상은 한적하고 차분했다. 어쩌면 조금은 따분한 분위기였지만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피렌체는 건물들이 높고 골목들이 좁아서 걷다 보면 마치 미로 속을 헤매는 것 같고 좀 답답한 느낌이 들었는데 베로나는 골목들이 널찍하고 건물들도 대부분 서너 층정도로 그렇게 높지 않아서 훨씬 트여있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로마나 피렌체보다는 관광객 수가 훨씬 적었다.(대신 그만큼 볼거리도 적었다.) 베로나의 랜드마크는 역시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아레나(고대 로마 시대 원형 경기장)였는데 이미 콜로세움을 보고 온 내게는 아레나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굳이  내부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한 바퀴 돌아보고는 아레나가 잘 보이는 브라광장 분수대 앞에 앉아 포카치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책을 좀 읽다가 숙소로 이동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레나가 콜로세움과 다른 점은 아직도 오페라 공연 등을 개최하며 현재까지도 그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말하자면 로마의 콜로세움은 은퇴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베로나의 아레나는 지금까지도 현역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아레나 내부에 들어가 보지 않은 것을 약간은 후회했다.


 예약해 둔 숙소는 아레나에서 도보로 이삼십 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천천히 걸어 도착한 호스텔은 기대보다 훨씬 깨끗하고 프로페셔널했다. 안내 데스크의 대머리 아저씨(직원인지 오너인지는 알 수 없었다.)는 나의 파란색 새 여권을 보더니 한국여권 색깔이 바뀌었냐고 물었다. 아마도 전에 왔었던 어느 한국인 여행자의 초록색 여권을 기억해 내며 그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듯했다. 먼저 다녀간 한국 여행자가 좋은 인상을 주고 갔었는지 아저씨는 유난히 내게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시간은 오후 한시쯤이었고 체크인 시간은 세시였지만 청소가 이미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얼리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융통성 있고 유연한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항상 기분이 좋아진다. 도미토리에는 당연하게도 아직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제일 맘에 드는 창가자리의 아래층 침대를 골랐다. 샤워실은 두 개, 화장실이 하나 있었고 침대는 여덟 개가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매트리스는 다섯 개만 놓여있었다. 짐작건대 최대 8인실이지만 웬만하면 5인 이상은 받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빈 공간들 역시 내 기분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침대 머리맡에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자물쇠가 담긴 큼직한 사물함도 있었고 현관문은 주기적으로 변경하는 비밀번호로 굳게 잠겨있어 안전했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나서 여독을 풀 겸 한숨 자려고 누웠는데 얼마뒤에 누군가 방에 들어왔다. 어마어마하게 큰 백팩을 멘 금발머리의 백인 여성이었다. 나는 피곤했지만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아서 깨어있는 상태였다. 그녀는 피곤했는지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도미토리에 한동안 정적만 흐르다가 역시 또 커다란 백팩을 멘 젊은 백인 남자 한 명이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그 백인여성의 옆침대에 자리를 잡더니 얼마 안돼 서로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안 자고 있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니면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었는지도. 남자는 독일인이었고 여자는 노르웨이 사람이었는데 그동안 서로 어디를 다녀왔고 베로나에 오기 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거침없이 나누었다. 두 사람 다 영어가 모국어는 아니었겠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약간의 열등감과 함께 살짝 주눅이 들었다. 본의 아니게 자는 척을 하며 남의 대화를 엿듯는 모양새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결국 낮잠 자기를 포기하고 일어나 세면대로 가서 세수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그 백인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챠우"라고 짧게 인사했다. 그녀도 나를 보며 친절한 표정으로 "차우"라고 대답했다. 나는 조용히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와 세탁기에 밀린 빨래를 돌리고 호스텔 밖으로 나왔다.


호스텔은 포르타 베스코보 역 근처였는데 모로코계 이민자들이 제법 많이 보였다. 산책을 하며 만난 사람들과 잠깐씩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이 동네가 낮에는 평화롭지만 늦은 시간엔 약간 우범지대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겉보기에는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것 같은 기차역 주변에 공원같이 긴 둑길이 있었는데 그쪽은 밤에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어두워지기 전에 식료품을 파는 곳들을 둘러보며 저녁으로 먹을 음식과 맥주 따위를 구입하고 돌아오는 길에 헤어컷을 했다. 피렌체에서 앞머리가 너무 거슬려 내가 직접 자르다가 실패를 했었는데 바버샵을 발견해서 반가운 마음에 바로 들어갔다. 헤어드레서는 꽤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내 머리를 다듬어 나갔는데 완성된 스타일은 그렇게 썩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그래도 내가 만진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숙소에 돌아와 보니 또 다른 두 명의 게스트가 방안에 있었다. 브라질에서 온 '페르난도'와 필리핀계 미국인 '지그'. 페르난도는 건설 노동자로 취업을 위해서 베로나에 왔다고 했다. 곱슬머리의 덩치가 큰 백인이었는데 영어를 거의 할 줄 몰랐고 그래서 그런지 나보다도 더 낯을 가렸다. 지그는 굉장히 활달한 성격의 게이였다. 첫날에는 아무런 대화를 안 했었는데 다음날 아침 내가 처음으로 지그에게 ' 굿모닝'이라고 인사를 하자 그는 나에게 아메리칸이냐고 물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대답하자 지그는 이탈리아에서는 아무도 자기에게 굿모닝이라고 인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왜 금발머리 여성에게는 '차우'라고 인사하고 필리핀계 남자에게는 '굿모닝'이라고 인사했을까? 딱히 별 이유는 없었지만 나의 그 인사 한마디에 그는 내게 호감을 느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그가 대화를 주도해 나갔다. 먼저 왔었던 노르웨이 여성의 이름은 '우다'였고 젊은 독일 친구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우다는 내게 악수를 청하며 정식으로 인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호스텔로의 조그맣고 귀여운 정원에서 아침을 먹고 점심때는 시내에 나가 함께 걸었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사귄 친구들이었다.


지그는 모두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때로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이를테면 "베로나에 하루 더 있기로 했다."라는 말을 각자의 언어로 말해 보자는 제안을 한다거나 너희 나라에서는 아침식사로 무엇을 먹니 같은 질문을 던지며 마치 사회를 보듯 자신 있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마치 홍석천 같은 그를 바라보며 나는 감탄했다. 그는 우리 룸메이트가 아닌 다른 낯선 여행자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질문을 하고 인스타그램으로 친구를 맺었다. 호스텔 밖에 나왔을 때도 우리는 그냥 지그만 따라다니면 됐다. 어차피 다들 이 도시가 처음이기 때문에 누군가 이끌어 주기를 바랐었는데 그가 아는 것도 우리와 별다를 게 없었지만 두려움 없이 우리들을 끌고 다녔다.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하고 그것만은 나름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는 항상 어렵다고 느낀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외국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 답답했지만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한국말을 쓸 때도 사람들과 잘 소통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영어를 잘한다고 외국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것은 아닌것이다. 지그 친구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고 배려심도 있었다. 그는 특히 나에게 관심이 많았었는데 내가 전날밤에 갑자기 이발을 하고 나타나고 방에 들어와선 조용히 옷만 주야장천 갈아입고 도대체 어디를 그렇게 싸 돌아다녔는지를 궁금해했다. 그래서 나는 모닝커피를 마시며 룸메이트들에게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전날밤 나는 로마와 피렌체에서 산 새 신발과 새 옷들로 잔뜩 꾸미고 나와 어느 술집에 갔었다. 그곳은 작고 아늑했으며 관광객은 거의 없고 로컬 사람들로만 가득 찬 그런 가게였다. 내부는 10평도 안 되는 아담한 공간이어서 주인장 혼자 운영하고 있었다. 작은 바에서 맥주나 칵테일, 와인 등을 팔고 있었고 테이블은 두세 개 밖에 없었다. 바깥에도 테이블이 서너 개 있었는데 사람들은 대게 손에 술잔을 들고 앉거나 서서 잡담을 나우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지나가던 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이끌려 그 술집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조금 멋쩍어 우물쭈물 하다가 레드와인을 한 잔을 주문하고 적당히 자릴 잡은 뒤에 사람들과 가게 내부를 구경했다. 남자들은 캐주얼한 복장이었지만 여자들은 거의 원피스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기타를 든 남자가 경쾌한 스타일의 블루스음악이나 스탠더드 한 팝음악을 연주하면서 노래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각자 얘기를 하다가도 연주가 끝나면 열렬히 박수를 치고 호응을 해 주었다.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한 남자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그가 바로 메이터였다.

얼핏 보기에도 메이터는 나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이는 아저씨였지만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나를 친근하게 대해 주었다. 그가 조금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얘길 하면 하면 시큼한 맥주 냄새가 풀풀 풍겼고 내 얼굴에 침이 튈 것만 같았지만 그는 입을 가리거나 거리를 두지 않고 처음 만난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낯가림이 있는 나는 적당히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말에 대충 대꾸를 해줬다. 그는 취해서 기분이 좋아 보였지만 비틀거리거나 눈이 풀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는 한쪽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이 가게는 매월 격주마다 수요일에 오픈 마이크를 한다고 내게 알려줬다. 내가 갔던 그날 밤이 바로 그 격주마다 돌아오는 수요일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저 오늘 아침 베로나에 도착했고 이 근처에 숙소가 있어서 밤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이 가게가 마음에 들어서 들어왔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라니..


'굳까르마!'라고 메이터가 윙크를 하며 말했다.


몇 명의 연주자가 바뀌고 어느 순간 메이터가 직접 무대에 올라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무대 앞 보면대 위에는 검은색 태블릿이 있었는데 악보를 띄워놓고 볼 수 있었다. 그는 이글스나 데이비드 보위 같은 전 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는 흔한 노래들을 흥겹게 불렀다. 그리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행복해 보였고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함께 행복해졌다. 그렇게 무대에서 내려온 메이터는 나에게 기타를 건네며 한곡 해보라고 부추겼다.


나도 기타를 칠 줄은 알았고 노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분위기를 이어갈 자신이 없어서 거듭 사양했는데 메이터의 끈질긴 요구에 망설이다 결국 무대에 올라갔다.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노래는 내가 쓴 곡들 밖에는 없었다. 내 노래는 신나는 곡들이 아니기 때문에 괜히 분위기를 망칠까 봐 조마조마 한마음이 들었지만 의외로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어떤 친구는 내 노래가 가사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가슴이 찢어졌다고 말했다. 설마 진짜 그러기야 했겠나 싶지만 아무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고 다정하게 나의 볼품없는 재주를 치켜세워줬다. 나는 그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물며 몇 명 사람들에게 아폴로스피릿쟈를 몇 잔 더 얻어 마시고 나서야 술집에 있던 사람들과 하나하나 포옹하고 악수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나도 그 공간과 닮은 술집을 제주에서 7년째 운영 중이다. 우리도 오픈마이크가 있고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정기적으로 공연을 열어왔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마치 이 술집에 오기 위해 베로나에 온 것만 같았다. 아무튼 전날밤에 내가 다녀온 그 술집 얘길 호스텔의 친구들에게 들려주자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그 가게의 이름과 위치를 알려달라고 했다.


  언젠가 다시 그 술집에 가볼 수 있을까? 간다면 수요일에 가야지. 가면 그때 만났던 메이터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내가 그 술집에 가고 싶어서 베로나에 가려는 것처럼 누군가는 내가 운영하는 술집에 오기 위해서 제주도에 오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적지 않는 사람들이 베로나에서의 나처럼 제주에 놀러 왔다가 나의 공간에서도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기도 했었다. 요즘 부쩍 하루하루 출근길이 버겁다는 생각도 들지만 내가 하는 일도 분명 가치 있는 일이고 한때는 무엇보다 하고 싶었던 소중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내 공간을 찾아 주는 사람들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항상 머물러 있을 때는 떠나고 싶지만 떠나오면 집이 다시 그리워지는 것이다.






이전 06화 여행의 이정표가 바뀌다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