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브랜드가 도달해야 할 가치는?
광복절 새벽. 모두가 잠든 고요 속에서, 시간은 멈춘 듯 흘렀다. 이런 순간에는 평소라면 묻지 않았을 질문들이 불쑥 떠오른다. AI가 모든 것을 대신하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노트북 화면의 빛이 어둠을 비추며 번졌다. 나는 AI에게 물었다.
"브랜드가 뭐라고 생각해?"
기업의 정체성, 소비자 인식의 총합, 차별화된 가치 제안. 교과서와 회의실에서 수도 없이 들어왔던 정의가 매끄럽게 답으로 돌아왔다.
"그럼 사람들은 왜 특정 브랜드를 선택할까?"
기능적 혜택, 감정적 만족, 사회적 인정. 이번에도 정교하고 완벽했다.
하지만 그 완벽함이 오히려 불안했다. 모든 것이 설명되는 세상에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
창밖으로 스며드는 새벽빛을 바라보다 깨달았다. AI는 브랜드에 관한 모든 답을 알고 있지만, 정작 브랜드가 사람 마음속에서 '살아나는 순간'은 붙잡지 못한다는 것을. 어쩌면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인간의 영역일지 모른다.
사람들이 브랜드를 처음 만나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친구가 추천한 앱을 설치하는 순간, 우연히 들어간 카페의 분위기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소셜미디어에서 낯선 브랜드의 문장이 시선을 붙잡는 순간. 이 작은 찰나들이 모여 브랜드가 된다.
인지과학자 다니엘 카너먼의 '피크-엔드 법칙'이 여기서 중요한 통찰을 준다. 사람들은 경험 전체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강렬했던 순간(피크)과 마지막 순간(엔드)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일관된 브랜드 경험보다는, 기억에 남을 강렬한 순간 하나가 브랜드 인식을 좌우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역설이 있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사람들은 더 선택하기 어려워한다. 이른바 '선택의 역설'이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모든 장점을 나열하고, 모든 기능을 강조할수록 기억에 남지 않는다. 사람들은 '완벽한 브랜드'보다 '한 가지로 선명한 브랜드'를 선택한다.
애플은 '심플함', 볼보는 '안전', 나이키는 '도전'. 이들은 수많은 가능성을 버리고 단 하나의 가치에 집중했다. 그 집중이 차별화를 만들고, 차별화가 선택의 이유가 되었다. 결국 브랜딩의 본질은 가능성을 넓히는 일이 아니라, 가능성을 좁혀 단순화하는 일이다.
AI는 이 역설을 모른다. 더 많은 정보, 더 정교한 분석, 더 완벽한 결과가 더 나은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브랜딩은 무엇이 될 수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이어야만 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디자이너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의미를 만든다. AI는 데이터를 근거로 가장 적절한 색과 폰트, 레이아웃을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디자이너는 묻는다. "이 색이 주는 감정은 이 브랜드의 마음과 닿아 있는가?" "이 작은 움직임 하나가 사용자의 기억을 남길 수 있는가?"
브랜딩은 기능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설계하는 일이다. 웹사이트의 여백 한 칸, 버튼을 눌렀을 때의 작은 반응, 로고의 곡선 하나가 사람의 마음속에 오래 머문다. 디자이너는 그 사소한 차이 속에서 브랜드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AI가 평균을 설계한다면, 디자이너는 기억을 설계한다. 평균은 누구에게도 거슬리지 않지만, 누구의 마음에도 남지 않는다. 반대로 약간의 불편함, 낯섦, 틀어짐은 감각을 흔들고 오래 각인된다. 디자이너는 바로 그 흔적을 다루는 사람이다.
AI는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다. 혁신적이면서도 친근하고, 트렌디하면서도 신뢰할 만하다. 그러나 그 완벽함이 문제다.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결국 잊힌다.
진짜 브랜드는 불완전하다. 오래된 찻집 벽에 걸린 낡은 시계처럼, 조금은 느리게 가고, 설명되지 않는 매력을 품는다. 그 불완전함이 인간적인 온기를 만들고, 기억을 남긴다.
일본의 와비사비 미학이 이를 잘 보여준다. 불완전함, 무상함, 미완성 속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 금으로 깨진 도자기를 메우는 킨츠기 기법처럼, 결함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강조함으로써 더 큰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디자이너는 그 불완전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틈새에서 브랜드만의 개성과 이야기를 발견한다. 불완전함을 의미로 바꾸는 것, 그것이 디자이너의 일이다.
AI는 마찰을 제거하려 하지만, 브랜딩에서 마찰은 결함이 아니라 기능이다. 사람들은 매끄럽게 지나간 순간보다, 예상치 못한 순간을 더 오래 기억한다.
카페에서 커피가 조금 쏟아졌는데 바리스타가 웃으며 손수건을 내민 장면, 공연 중 마이크가 꺼지자 관객이 합창해준 순간. 브랜드 경험은 흠 없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대응에서 생겨난다.
의도적인 불편함이 브랜드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AI라면 결코 택하지 않았을 선택들이다.
AI 시대의 브랜딩은 오히려 더 인간적이어야 한다. 모든 것이 최적화되고 예측 가능해질수록, 인간의 불확실성과 직관은 더 큰 가치를 갖는다.
브랜딩은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다. 오직 선택만 있을 뿐이며, 그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을 지는 것은 인간뿐이다.
디자이너는 그 선택의 최전선에 서 있다. 보이지 않는 의도를 형태로 만들고,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언어와 시각으로 바꾸는 사람. 그것이 디자이너가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AI가 효율의 길을 닦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의미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브랜딩은 예술이고, 예술의 본질은 질문이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에 대한 의문, 아직 없는 것을 상상하는 용기.
AI는 과거를 학습하지만, 디자이너는 미래를 만든다. 그 미래가 브랜드가 되고, 브랜드가 사람들의 삶을 바꾼다.
AI가 답을 계산하는 동안, 우리는 질문을 만든다. 그것이 브랜딩이고, 그것이 디자이너가 존재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