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본 연재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 종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작가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에세이임을 밝힙니다."
한 평 남짓한 고시원 방. 창문 하나 없는 이 '관(棺)' 같은 방의 유일한 빛은 스마트폰 액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르스름한 블루라이트뿐이다.
편의점 야간 알바를 마치고 돌아온 청춘은 퉁퉁 불어 터진 컵라면에 물을 붓는다. 젓가락이 익기를 기다리는 3분 동안,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타인의 인생을 훔쳐본다. 1초에 한 번씩,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세상은 화려하게 바뀐다.
액정 속 세상은 매일이 축제다.
그곳에는 야근도, 연체된 공과금도, 곰팡이 핀 벽지도 없다.
'#오마카세', '#호캉스', '#데일리룩'.
해시태그 하나하나가 훈장처럼 박혀 있다. 동갑내기 친구는 오늘 또 골프를 치러 갔고, 건너 건너 아는 동생은 포르쉐 핸들에 손목을 걸치고 허세 섞인 한숨을 내뱉는 사진을 올렸다.
"아, 차 막혀서 짜증 나."
그 짜증마저도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사진 속 그들의 손목에는 롤렉스가 감겨 있고, 테이블 위에는 에르메스 가방이 무심한 척 놓여 있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우리는 그들을 현대판 귀족, 혹은 동화 속 세상에 사는 '청담동 앨리스'라 부른다.
그 화려한 사각의 프레임을 보다가 시선을 돌리면, 눈에 들어오는 건 누렇게 뜬 벽지와 널브러진 전공 서적,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1,500원짜리 컵라면뿐이다.
순간, 뱃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른다. 라면 국물 탓이 아니다.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이름의 맹독이다. 내가 흘린 오늘 하루의 땀방울이, 저 액정 속의 화려한 연출 컷 앞에서 한없이 초라한 쓰레기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화려한 사진 프레임 바깥의 진실을.
SNS 속 '청담동 앨리스'의 절반은 가짜다.
그들이 무심하게 올려놓은 명품 가방은 하루 대여료를 내고 빌린 '렌탈'일 확률이 높고, 포르쉐 운전석 샷은 쏘카나 지인 차에서 각도만 비틀어 찍은 '허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최고급 호텔의 애프터눈 티 세트는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서너 명이 돈을 모아 시킨 '엔빵'의 결과물이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0.1초의 찰나만을 편집해서 전시한다. 구질구질한 출근길, 상사의 고함 소리, 카드값 독촉 문자는 프레임 밖으로 정교하게 잘라낸다. 그곳에는 오직 '성공한 나', '여유로운 나'라는 가짜 자아만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 '편집된 가짜'가 '날것의 진짜'를 공격한다는 점이다.
고시원에서 밤새워 공부하고, 코피 쏟아가며 일하는 청춘의 '진짜 노력'은 인스타그램에 올리기엔 너무 칙칙하고 볼품없다. '좋아요'를 받을 수 없는 삶은 실패한 삶 취급을 받는다. 보여주기 위한 삶(Display)이 살아내는 삶(Live)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가짜 앨리스들은 빚을 내서라도 '있어 보이는 척'을 하며 자존감을 채우지만, 정직하게 땀 흘려 미래를 준비하는 진짜들은 그 가짜들 앞에서 "나는 패배자"라며 고개를 숙인다. 이 얼마나 기막힌 아이러니인가.
라면 면발을 씹으며 생각한다.
저 액정 속의 앨리스도, 지금 이 순간 사진을 찍고 나면 텅 빈 방으로 돌아와 나와 똑같은 라면을 끓이고 있을지 모른다고. '좋아요' 개수에 목매며 불안에 떨고 있는 건 오히려 그들일지도 모른다고.
스마트폰 화면을 껐다. 방은 다시 암흑에 잠겼다.
화려한 가짜 빛이 사라지자, 그제야 내 방에 가득 찬 라면 냄새가, 땀에 젖은 내 작업복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비릿하고 구질구질하지만, 이것은 살아있는 냄새다.
렌탈한 가방은 반납해야 하지만, 내 머릿속에 집어넣은 지식과 내 근육에 배인 노동의 요령은 누구에게도 반납할 필요 없는 온전한 내 것이다.
비록 지금은 초라한 컵라면일지라도, 이것은 내가 내 돈으로 산 '진짜 식사'다. 빚으로 쌓아 올린 저들의 '가짜 만찬'보다, 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이 뜨끈한 국물이 훨씬 더 진국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부디, '좋아요' 숫자가 행복의 전부는 아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