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본 연재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 종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작가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에세이임을 밝힙니다."
'청춘(靑春)'이라는 단어가 멍 자국처럼 시퍼렇게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젊음이 자산이라지만, 지갑이 텅 빈 젊음은 그저 형벌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 무렵 나는 지독한 가난과 동거 중이었다. 점심은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게 예사였고, 버스비 몇백 원이 아까워 웬만한 거리는 무조건 걸어 다녔다. 낭만적인 산책이 아니었다. 생존을 위한 행군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동전 몇 개가 손끝에 잡히질 않았다. 버스를 타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집까지는 세 정거장. 평소라면 거뜬할 거리였지만, 하루 종일 굶은 탓에 다리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터덜터덜 걷는 내 그림자가 유난히 길고 초라해 보이던 오후였다.
눈앞에 가파른 육교가 나타났다. 저 고개만 넘으면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헉헉거리며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올라가 육교 정상에 섰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케 하는 기이하고도 잔인한 풍경과 마주했다.
육교 한가운데, 한 걸인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의 행색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걸인의 전형이었다. 헝클어진 머리, 때 절은 옷가지, 바닥을 향해 푹 숙인 고개. 하지만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그 남루한 행색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오브제'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의 앞에는 구걸용 바구니나 찌그러진 깡통 대신, 빳빳하고 깨끗한 와이셔츠 상자 뚜껑이 정갈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펼쳐진 광경은 마치 은행 창구의 현금 정리함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푸르딩딩한 만 원짜리 지폐들과 천 원짜리 지폐들이 오와 열을 맞춰 칼같이 정돈되어 있었다. 꼬깃꼬깃 구겨진 돈이 아니었다. 누군가 정성스럽게 다림질이라도 한 것처럼 반듯했다. 지폐들 옆으로는 500원짜리와 100원짜리 동전들이 종류별로 분류되어 수북하게 탑을 쌓고 있었다.
나는 순간 걷는 것을 잊고 멍하니 그 '돈의 제단'을 바라보았다. 곁눈질로 대충 계산해 봐도 족히 5만 원, 아니 10만 원은 훌쩍 넘어 보였다. 그 당시 물가를 생각하면 웬만한 직장인의 며칠 치 일당이, 아니 나의 한 달 생활비에 육박하는 거금이 그 상자 뚜껑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위장이 쪼그라드는 듯한 허기를 느끼며 서 있는 내 주머니 속엔 먼지뿐이었다. 반면, 길바닥에 앉아 고개를 숙인 저 걸인의 상자는 풍요로움 그 자체였다.
순간, 머릿속에서 '쾅' 하고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도대체 누가 진짜 걸인인가.
형식적으로는 바닥에 앉아 손을 벌리는 그가 걸인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자본의 크기로 보자면, 당장 밥 한 끼 사 먹을 돈이 없어 비틀거리는 내가 진짜 걸인이었다. 그는 '가난'을 연기하며 부를 축적하고 있었고, 나는 '평범'을 연기하며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는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릴 때마다 더욱 애처롭게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와이셔츠 상자 위, 그 가지런히 정돈된 지폐들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젊은 놈이 사지 멀쩡해서 뭐 하냐? 네 주머니보다 내 상자 뚜껑이 더 따뜻한데."
그의 '연출된 가난'은 나의 '진짜 가난'보다 훨씬 더 힘이 셌다. 사람들은 그의 연출된 비참함에는 기꺼이 지갑을 열었지만, 나의 진짜 궁핍함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내가 저기 앉아 있다면 "젊은 놈이 일은 안 하고"라며 손가락질했을 것이다.
나는 도망치듯 그 육교를 내려왔다. 배고픔 때문이 아니었다. 다리가 아파서도 아니었다. 세상이 내게 보여준 그 노골적인 아이러니, 가짜 눈물이 진짜 땀방울을 이겨먹는 그 더러운 현실이 너무나 서글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와이셔츠 상자 속의 가지런한 지폐들. 그 질서 정연한 풍요로움이, 내 인생의 무질서한 빈곤을 철저히 조롱하던 그날 오후.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때로는 가짜가 진짜의 뺨을 아주 세게 후려치기도 한다는 것을.
"차라리 그가 퇴근길엔 외제차를 타는 반전이 있기를... 그래야 내 진짜 가난이 덜 억울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