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가짜 농부와 땅을 뺏긴 사람들

제2부. [현장] 땀방울이 배신당하는 순간들

by Napolia

* 2부 연재를 시작하며

기득권의 수혜가 커질수록 이웃들의 피해와 아우성도 커지는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저는 침묵 대신 울분의 펜을 잡았습니다.
​알아야 당하지 않고, 분노해야 회복할 수 있으며, 외쳐야 바꿀 수 있습니다.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동하기 위해, 아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바꾸기 위해 글을 씁니다.
​이 연재가 우리 사회를 조금 더 정정당당하게 만드는, 작지만 단단한 초석이 되기를 바랍니다.


​06. 가짜 농부와 땅을 뺏긴 사람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옛말이다. 요즘 세상에 농부가 밭을 탓하지 않으면 바보 천치 소리를 듣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밭의 '용도 변경' 가능성을 미리 알지 못한 자신의 정보력 부재를 탓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여기 평생 흙만 파먹고 살아온 칠순의 노인이 있다.
그의 손마디는 밭에 구르는 돌멩이처럼 투박하고, 손톱 밑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검은 흙물이 문신처럼 배어 있다. 그는 새벽별을 보고 나가 저녁별을 보고 들어오며, 자식 키우듯 배추와 무를 키웠다. 그에게 땅은 팔아치울 수 없는 자존심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 어귀로 낯선 고급 SUV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등산복을 빼입었지만, 흙냄새 대신 값비싼 향수 냄새를 풍겼다. 그들은 호미 잡는 법도 모르는, 손이 하얀 '가짜 농부'들이었다.
​그들은 노인의 밭 옆, 잡풀이 무성하던 맹지(盲地)를 사들였다. 그리고 기이한 풍경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트랙터로 땅을 대충 갈아엎더니, 묘목을 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심는 모양새가 가관이었다.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 필요한 간격 따위는 무시했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숨도 못 쉴 정도로 촘촘하게 묘목을 박아 넣었다.
​용버들, 왕버들, 에메랄드그린.
그들이 고른 나무들은 하나같이 '빨리 자라고', '보상 단가가 높은' 수종들이었다. 그들은 나무를 심는 게 아니라, 땅에다가 '현금 보관증'을 꽂고 있었다.
​진짜 농부인 노인은 혀를 찼다.
"저렇게 심으면 나무 다 죽어. 뿌리가 엉켜서 숨을 못 쉰당께."
하지만 가짜 농부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들의 목적은 나무의 생장이 아니라, 곧 발표될 신도시 개발 구역의 '토지 보상금'이었으니까. 나무가 빽빽할수록 보상금을 더 많이 쳐주는 이 기막힌 행정 시스템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부 정보를 이용해 개발 예정지를 선점한 공기업 직원들이었고, 전문 투기꾼들이었다. 그들은 밭에서 땀을 흘리는 대신,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사무실에서 지도를 펴놓고 '돈이 자라는 땅'을 경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도시 개발 발표가 났다.
마을은 뒤집어졌다. 평생 땅을 지켜온 진짜 농부들은 헐값에 가까운 공시지가로 땅을 수용당하고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내 땅에서 못 나간다"며 트랙터를 몰고 시위를 해봐도, 법이라는 거대한 불도저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반면, 가짜 농부들은 축제를 벌였다.
그들이 꽂아둔 묘목들은 엄청난 '영농 보상비'로 둔갑해 돌아왔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흙 한번 제대로 만져보지 않은 그들이 수십억 원의 차익을 챙겨 떠날 때, 진짜 농부는 보상금 몇 푼을 쥐고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다.
​쫓겨나는 날, 노인은 밭을 뒤로하며 눈물을 훔쳤다.
그가 울었던 건 땅을 뺏겨서가 아니었다. 평생을 바쳐 흙을 섬겨온 자신의 인생이, 고작 투기꾼들의 '알박기' 기술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이 서러워서였다.
​"흙은 거짓말을 안 한다더니, 사람이 흙을 가지고 사기를 치는구먼."
​투기꾼들이 심어놓은 빽빽한 묘목들. 그것은 숲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만들어낸 징그러운 '욕망의 바코드'였다.




​[작가의 한마디]

"흙은 거짓말을 안 한다는데, 사람이 흙으로 거짓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