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현장] 땀방울이 배신당하는 순간들
대한민국의 모든 공사 현장과 공장 입구에는 초록색 십자가와 함께 이 네 글자가 대문짝만 하게 박혀 있다.
'안전제일(安全第一)'
그 문구만 보면, 이 나라는 사람의 목숨을 세상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는 천국처럼 보인다. 현수막은 빳빳하고, 글씨는 힘이 넘치며, 그 아래 적힌 '무재해 달성 3650일'이라는 숫자는 자랑스럽게 빛난다.
하지만 그 현수막의 그늘 아래, 진짜 현장의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면 풍경은 기괴하게 뒤틀린다.
여기, 톱니바퀴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앞.
스물네 갓 넘은 청년이 서 있다. 그의 작업복은 기름때와 땀으로 절어 천근만근이다.
기계에는 본래 '인터락(Interlock)'이라는 안전센서가 달려 있었다. 사람이 문을 열거나 위험 반경에 접근하면 기계가 자동으로 멈추게 설계된 장치다. 이것은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자 '진짜 안전'이다.
그런데 이 센서 위에는 청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거나, 아예 전선이 끊겨 있다. 누가 그랬을까.
"야, 센서 때문에 기계 자꾸 멈추잖아! 물량 언제 뺄 거야? 오늘 납기 못 맞추면 네가 책임질 거야?"
관리자의 고함 소리가 그 센서를 죽였다. 센서가 작동해 기계가 멈추는 시간, 그 '1분'은 회사의 입장에서는 돈이 새 나가는 시간이다. 그들에게 안전은 '제일(First)'이 아니라, 생산성을 갉아먹는 '비용(Cost)'이자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일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진짜 안전장치'를 끄고, 벽에다 '가짜 안전 구호'를 붙인다.
"작업 전 안전 점검, 생명 지키는 첫걸음."
소를 잃기도 전에 외양간을 부숴놓고는, 소에게 도망가지 말라고 써 붙여놓는 꼴이다.
사고는 예고 없이, 그러나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피로에 지친 청년이 잠깐 중심을 잃거나, 기계에 낀 이물질을 빼내려 손을 뻗는 그 찰나의 순간. 살아있는 센서라면 멈췄어야 할 기계는, 죽어있는 센서 덕분에 멈추지 않고 청년의 옷자락을, 그리고 팔을, 마침내 몸통을 집어삼킨다.
비명은 기계 소음에 묻히고, '무재해 기록판'의 숫자는 그제야 0으로 돌아간다.
사고 직후의 풍경은 더욱 가관이다.
사람이 죽어 나간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건 119 구급대가 아니라, 회사의 임원들과 로펌 변호사들이다. 그들은 피 묻은 기계를 닦아내거나 작업 일지를 조작하기 바쁘다. 노동자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 따위는 없다. 그들의 머릿속은 오직 하나, '중대재해법 처벌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로 꽉 차 있다.
뉴스에는 '본사, 유감 표명'이라는 건조한 자막이 흐르고, 높으신 분들은 빈소에 찾아와 봉투를 내밀며 합의를 종용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않겠습니까."
그 말은 곧 "죽은 사람은 잊혀져야지 않겠습니까"라는 뜻이다. 한 사람의 우주가 멸망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손실 처리'해야 할 재무제표의 숫자 정도로 취급한다.
그리고 며칠 뒤, 현장에는 다시 기계가 돌아간다.
죽은 청년의 자리는 또 다른 헐값의 노동자로 대체된다. 마치 닳아버린 나사 하나를 갈아 끼우듯, 너무나 매끄럽고 신속하게.
입구에 걸린 '안전제일' 현수막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펄럭인다.
그 뻔뻔한 초록색 깃발을 찢어버리고 싶다. 그것은 안전을 위한 다짐이 아니었다. 사고가 났을 때 "우리는 할 만큼 했다"라고 변명하기 위해 걸어놓은 '면피용 부적'이자 알리바이였다.
사람이 비용보다 저렴한 세상.
그곳에서 '안전제일'은 '이윤 제일'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가짜 현수막이 펄럭일 때마다, 진짜 목숨들이 소리 없이 꺾이고 있다.
"안전 '제일'이라 쓰고, 안전 '비용'이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