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안전제일' 현수막 아래의 죽음

제2부. [현장] 땀방울이 배신당하는 순간들

by Napolia

07. '안전제일' 현수막 아래의 죽음


​대한민국의 모든 공사 현장과 공장 입구에는 초록색 십자가와 함께 이 네 글자가 대문짝만 하게 박혀 있다.
'안전제일(安全第一)'
​그 문구만 보면, 이 나라는 사람의 목숨을 세상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는 천국처럼 보인다. 현수막은 빳빳하고, 글씨는 힘이 넘치며, 그 아래 적힌 '무재해 달성 3650일'이라는 숫자는 자랑스럽게 빛난다.

​하지만 그 현수막의 그늘 아래, 진짜 현장의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면 풍경은 기괴하게 뒤틀린다.
​여기, 톱니바퀴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앞.
스물네 갓 넘은 청년이 서 있다. 그의 작업복은 기름때와 땀으로 절어 천근만근이다.
기계에는 본래 '인터락(Interlock)'이라는 안전센서가 달려 있었다. 사람이 문을 열거나 위험 반경에 접근하면 기계가 자동으로 멈추게 설계된 장치다. 이것은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자 '진짜 안전'이다.

​그런데 이 센서 위에는 청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거나, 아예 전선이 끊겨 있다. 누가 그랬을까.
​"야, 센서 때문에 기계 자꾸 멈추잖아! 물량 언제 뺄 거야? 오늘 납기 못 맞추면 네가 책임질 거야?"
​관리자의 고함 소리가 그 센서를 죽였다. 센서가 작동해 기계가 멈추는 시간, 그 '1분'은 회사의 입장에서는 돈이 새 나가는 시간이다. 그들에게 안전은 '제일(First)'이 아니라, 생산성을 갉아먹는 '비용(Cost)'이자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일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진짜 안전장치'를 끄고, 벽에다 '가짜 안전 구호'를 붙인다.
"작업 전 안전 점검, 생명 지키는 첫걸음."
소를 잃기도 전에 외양간을 부숴놓고는, 소에게 도망가지 말라고 써 붙여놓는 꼴이다.

​사고는 예고 없이, 그러나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피로에 지친 청년이 잠깐 중심을 잃거나, 기계에 낀 이물질을 빼내려 손을 뻗는 그 찰나의 순간. 살아있는 센서라면 멈췄어야 할 기계는, 죽어있는 센서 덕분에 멈추지 않고 청년의 옷자락을, 그리고 팔을, 마침내 몸통을 집어삼킨다.
​비명은 기계 소음에 묻히고, '무재해 기록판'의 숫자는 그제야 0으로 돌아간다.


​사고 직후의 풍경은 더욱 가관이다.
사람이 죽어 나간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건 119 구급대가 아니라, 회사의 임원들과 로펌 변호사들이다. 그들은 피 묻은 기계를 닦아내거나 작업 일지를 조작하기 바쁘다. 노동자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 따위는 없다. 그들의 머릿속은 오직 하나, '중대재해법 처벌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로 꽉 차 있다.
​뉴스에는 '본사, 유감 표명'이라는 건조한 자막이 흐르고, 높으신 분들은 빈소에 찾아와 봉투를 내밀며 합의를 종용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않겠습니까."
그 말은 곧 "죽은 사람은 잊혀져야지 않겠습니까"라는 뜻이다. 한 사람의 우주가 멸망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손실 처리'해야 할 재무제표의 숫자 정도로 취급한다.

​그리고 며칠 뒤, 현장에는 다시 기계가 돌아간다.
죽은 청년의 자리는 또 다른 헐값의 노동자로 대체된다. 마치 닳아버린 나사 하나를 갈아 끼우듯, 너무나 매끄럽고 신속하게.
​입구에 걸린 '안전제일' 현수막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펄럭인다.
그 뻔뻔한 초록색 깃발을 찢어버리고 싶다. 그것은 안전을 위한 다짐이 아니었다. 사고가 났을 때 "우리는 할 만큼 했다"라고 변명하기 위해 걸어놓은 '면피용 부적'이자 알리바이였다.

​사람이 비용보다 저렴한 세상.
그곳에서 '안전제일'은 '이윤 제일'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가짜 현수막이 펄럭일 때마다, 진짜 목숨들이 소리 없이 꺾이고 있다.




​[작가의 한마디]

"안전 '제일'이라 쓰고, 안전 '비용'이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