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장마, 그리고 미꾸라지 소동

제1부: 여름, 초록색 야생

by Napolia

아카시아 꽃비가 다 내리고 나자, 장수동 하늘은 묵직한 회색 구름을 머리에 이기 시작했다. 공기는 물을 머금은 솜처럼 축축하고 무거웠다.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 끈적한 땀이 배어 나오는, 본격적인 '장마'의 시작이었다.
'투둑, 툭.'
시작은 굵은 빗방울 몇 개였다. 곧이어 하늘이 뚫린 듯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타다다닥! 타닥!' 종점 상회의 낡은 양철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는 기관총 소리 같았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바로 옆 사람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나는 가게 문턱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빗줄기를 구경했다. 마당의 흙바닥은 금세 누런 황토물로 변해 개울처럼 흘러내렸다. 버스 종점의 버스들도 전조등을 켜고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 들어왔다.
지루했다. 나가 놀 수도 없고, 만화책도 다 읽었다. 그때였다. 빗속을 뚫고 누런 비닐 우비를 뒤집어쓴 녀석이 마당으로 뛰어들었다.
"야! 서울뜨기! 양동이 챙겨!"
똥장군이었다. 녀석의 얼굴은 빗물범벅이었지만 눈은 형광등처럼 빛나고 있었다.

"비 오는데 뭐 하게?"

"지금 논물 뒤집혔어! 미꾸라지 잡으러 가야지!"
비가 와서 논에 물이 불어나면, 흙 속에 숨어 있던 미꾸라지들이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할머니, 나 갔다 올게요!"

할머니가 "비 오는데 어딜 나가!" 하고 소리치셨지만, 나는 이미 똥장군을 따라 빗속으로 달리고 있었다.

우리는 셋째 삼촌네 논으로 향했다. 논두렁 옆 도랑(수로)에는 황토물이 콸콸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여기다. 여기가 명당이야."
똥장군은 도랑 한쪽을 흙으로 대충 막고는, 반대쪽에서 발로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웅덩이의 물이 줄어들자, 바닥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잡아!"
나는 손을 뻗었다. 매끄러운 감촉이 손바닥을 스치고 지나갔다.

"으악, 징그러워!"

"야, 꽉 잡아야지! 모래를 묻혀서 잡으란 말이야!"
미꾸라지는 생각보다 빨랐고, 비누처럼 미끄러웠다. 잡았다 싶으면 손가락 사이로 쏙 빠져나가 흙탕물 속으로 숨어버렸다. 나는 아예 진흙탕 속에 털썩 주저앉았다. 옷 버리는 건 이미 포기했다.
'첨벙!' 내가 몸을 날려 도망가는 놈을 덮쳤다. 손 안에서 파닥거리는 힘찬 생명력. "잡았다!" 내 손아귀에 갇힌 미꾸라지가 요동을 쳤다. 수염이 난 입을 뻐끔거리는 놈을 양동이에 골인시켰다.
"오, 제법인데?" 똥장군도 질세라 양손으로 흙을 퍼 올리며 미꾸라지를 걷어 올렸다. 빗줄기는 여전히 등짝을 때렸지만, 우리는 추운 줄도 몰랐다.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서로의 얼굴을 보며 낄낄거렸다. 누가 미꾸라지인지 모를 꼴이었다.
"어이쿠, 녀석들. 많이도 잡았네."
언제 나왔는지 셋째 삼촌이 논두렁 위에서 우산을 쓰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정도면 동네잔치 하겠다. 그만하고 들어가자."
우리가 잡은 양동이 안에는 팔뚝만 한 미꾸라지들이 그득했다. 놈들은 서로 뒤엉켜 꿈틀거렸다. 징그럽다기보다는, 묘하게 배가 부른 풍경이었다.

그날 저녁, 종점 상회 부엌 가마솥에는 장작불이 활활 타올랐다. 할머니는 우리가 잡아 온 미꾸라지를 푹 삶아 체에 거르고, 우거지와 부추를 듬뿍 넣어 추어탕을 끓이셨다. 제피 가루(산초) 냄새가 알싸하게 코를 찔렀다.
"먹어라. 여름엔 이만한 보약이 없다."
할머니가 퍼주신 뜨끈한 국물을 한 숟가락 떴다. 얼큰하고 구수한 맛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빗속에서 떨었던 몸이 순식간에 노곤하게 풀렸다.

"캬, 시원하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아저씨 같은 감탄사가 나왔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이제 자장가처럼 들렸다. 똥장군과 나란히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국밥을 비웠다. 흙냄새, 비 냄새, 그리고 구수한 추어탕 냄새가 뒤섞인, 장수동의 진짜 여름 맛이었다.


* 이미지 출처 : Created by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