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여름, 초록색 야생
장수동에서 자전거를 타고 둑방길을 한참 달리면, 짠내 섞인 바람이 코끝을 훅 치고 들어오는 곳이 있었다. 물이 빠지면 끝도 없이 펼쳐지는 회색빛 세상. 소래 갯벌이었다.
"야, 오늘은 만선이다! 알았지?"
똥장군이 자전거 뒷자리에서 소리쳤다. 녀석의 등에는 대나무 낚싯대 두 개가 엑스(X) 자로 매여 있었고, 내 자전거 핸들에는 빨간 플라스틱 양동이가 덜그럭거렸다.
우리의 타깃은 '망둥어'였다. 어른들은 "숭어가 뛰니까 망둥어도 뛴다"며 무시했지만, 우리에게 망둥어는 최고의 사냥감이었다. 못생겨도 입질 하나는 끝내줬으니까.
갯벌 입구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우리는 장화를 신었다. 하지만 몇 발자국 못 가서 장화는 짐이 되었다. "에이 씨, 그냥 맨발로 가자!" 똥장군이 먼저 장화를 벗어 던졌다. 나도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렸다.
'철퍽.'
발가락 사이로 미지근하고 부드러운 진흙이 밀려 들어왔다. 걸을 때마다 갯벌이 발목을 쭈욱 빨아당기는 기분. 그 묘한 흡입력을 느끼며 우리는 물길을 찾아 들어갔다.
갯지렁이는 똥장군 담당이었다. 녀석은 징그러운 갯지렁이를 맨손으로 뚝뚝 끊어 낚싯바늘에 꿰었다. 나는 옆에서 비위가 상해 코를 찡그렸지만, 똥장군은 태연했다. "이게 있어야 놈들이 환장하고 달려들지."
낚싯대를 드리우자마자 반응이 왔다. '투둑, 툭!' 손끝으로 전해지는 투박한 진동. 찌가 물속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왔다!"
내가 낚싯대를 채 올리자, 허공으로 회색 물체 하나가 튀어 올랐다. 커다란 입, 툭 튀어나온 눈알, 미끌미끌한 피부. 정말 억울하게 생긴 놈이었다. 망둥어는 갯벌 바닥에 패대기쳐진 뒤에도 파닥거리며 내 다리로 기어올랐다.
"으악! 저리 가!" 내가 펄쩍 뛰자 똥장군이 배를 잡고 웃었다.
"서울뜨기 촌놈, 그게 무섭냐? 이리 줘 봐."
똥장군은 익숙한 솜씨로 망둥어 아가미를 잡고 바늘을 뺐다.
"야, 봐라. 입이 대문짝만해서 아무거나 잘 먹게 생겼지? 꼭 너 같다."
"시끄러, 임마. 너 닮았구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망둥어는 던지면 물었다. 우리는 '일타쌍피(한 번에 두 마리)'를 낚기도 하고, 서로 누가 더 큰 놈을 잡나 내기도 했다. 어느새 빨간 양동이는 못난이 물고기들로 가득 찼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자 갯벌이 황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온몸이 머드팩을 한 것처럼 엉망이 되어 있었다. 얼굴에도, 러닝셔츠에도, 걷어 올린 바지 밑단에도 회색 진흙이 덕지덕지 말라붙었다.
"이제 가자. 할머니가 매운탕 끓여주신댔어."
우리는 개선장군처럼 양동이를 들고 둑방길을 걸어 나왔다. 갯벌 수돗가에서 대충 진흙을 씻어냈지만, 짠내와 비린내는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 냄새가 싫지 않았다. 그건 우리가 오늘 하루 갯벌과 치열하게 뒹굴었다는 훈장 같은 냄새였으니까.
"할머니! 우리 왔어요!"
종점 상회 마당에 들어서자 셋째 삼촌이 평상에 앉아 있다가 우리를 반겼다. "오냐, 갯벌 특공대 왔냐? 어디 보자, 실한 놈으로 잡아 왔나." 삼촌이 양동이를 들여다보며 킬킬거렸다.
그날 저녁, 종점 상회 안채에서는 얼큰한 냄새가 진동했다. 무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끓인 망둥어 매운탕. 살은 부드러웠고 국물은 달았다. 할머니는 "못생긴 것들만 골라 잡아 왔네"라고 타박하시면서도 내 밥그릇 위에 하얀 살점을 발라 얹어 주셨다.
창밖으로 캄캄한 어둠이 깔리고, 멀리서 버스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입안 가득 퍼지는 매운탕 국물 맛과 똥장군과 나누는 눈웃음. 장수동의 가을이 그렇게 맛있는 냄새와 함께 익어가고 있었다.
* 이미지 출처 : Created by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