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사각의 링과 코피 터진 우정

제1부: 여름, 초록색 야생

by Napolia

장수동의 오후는 무료했다. 매미 소리마저 지쳐서 끊어질 즈음, 종점 상회 옆 느티나무 아래에는 어김없이 그들이 있었다. 장수동의 잉여 인력, 일명 '동네 형들 4인방'.
기타 줄을 팅팅거리는 '왕눈이 형', 키가 전봇대만 한 '꺽다리 형', 만화책에 코를 박고 있는 '곰보 형', 그리고 쉴 새 없이 머리에 빗질을 해대는 '뺀질이 형'.
"아, 심심하다. 뭐 재밌는 거 없냐?" 왕눈이 형이 하품을 쩍 하며 기타를 내려놓았다. 그때 마침 나와 똥장군이 쭈쭈바를 빨며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형들의 눈이 번쩍였다.

"어이, 서울뜨기! 똥장군! 일로 와 봐라."
우리는 본능적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꺽다리 형의 긴 팔에 덜미가 잡히고 말았다. "니들, 남자라면 주먹으로 대화해 봐야지 않겠냐?" 형들은 낡아빠진, 솜이 삐져나온 빨간 권투 글러브 한 쌍을 어디선가 꺼내 왔다. 땀 냄새와 가죽 냄새가 퀴퀴하게 배어 있는 그 물건이 내 눈앞에 툭 떨어졌다.
그렇게 '제1회 장수동 타이틀 매치'가 성사되었다. 경기장은 느티나무 아래 공터. 링 줄은 뺀질이 형이 가져온 노란 고무줄 몇 개를 나무와 전봇대에 대충 묶은 게 다였다.
"청 코너! 서울의 자존심, 샌님!"

"홍 코너! 장수동의 야생마, 똥장군!"
왕눈이 형이 심판을 보고, 나머지 형들은 낄낄거리며 내기를 걸었다. 나는 똥장군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벌써 상의를 탈의하고 근육도 없는 가슴을 팡팡 치며 몸을 풀고 있었다. 젠장, 저 녀석은 산을 타는 놈인데 내가 어떻게 이겨.
"파이트!"
종소리 대신 왕눈이 형의 입방귀 소리와 함께 시합이 시작되었다. 똥장군은 잽싸게 주먹을 날렸다. '쉭, 쉭!' 녀석의 주먹은 내 코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나는 잔뜩 겁을 먹고 두 팔로 얼굴을 가린 채 뒷걸음질만 쳤다.
"야! 서울! 도망만 다니냐? 주먹을 뻗으란 말이야!" 곰보 형이 답답한지 소리를 질렀다. 나도 폼 나게 뻗고 싶었다. 하지만 내 주먹은 허공을 가르거나 똥장군의 어깨를 스칠 뿐이었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공터에서 우리는 엉겨 붙어 뒹굴었다. 이건 권투라기보다 개싸움에 가까웠다.
그때였다. 똥장군이 회심의 일격을 날리려다 발이 미끄러져 앞으로 고꾸라졌다. 나는 얼떨결에 내밀고 있던 주먹을 거두지 못했고, 내 주먹은 정확히 똥장군의 코에 '퍽' 하고 꽂혔다.
정적이 흘렀다. 똥장군이 고개를 들었다. 녀석의 코에서 붉은 선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으아앙!" 천하의 똥장군이 울음을 터뜨렸다. 코피를 보자마자 야생마 같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영락없는 일곱 살짜리 꼬마가 되어버린 것이다.
"야! 서울뜨기가 이겼다!" "아이고, 내 돈!"
형들은 환호하고 탄식하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나는 얼떨떨하게 서 있었다. 승리감보다는 미안함이, 그리고 똥장군이 할머니한테 이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시합은 허무하게 끝났다. 우리는 느티나무 수돗가에 나란히 쭈그리고 앉았다. 나는 똥장군의 코를 씻어주었고, 똥장군은 훌쩍거리며 코를 풀었다.
"야, 아프냐? 미안하다." "안 아파, 임마. 발이 미끄러져서 그런 거야." 녀석은 코에 휴지를 틀어막고는 씩씩거렸다.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그때 왕눈이 형이 다가와 우리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잘 싸웠다, 짜식들. 자, 파이트머니 받아라." 형이 내민 건 미지근해진 '환타' 한 병이었다.
우리는 퉁퉁 부은 얼굴로 환타를 나눠 마셨다. 톡 쏘는 탄산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땀 냄새도 흙먼지도, 억울한 코피도 다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다음에 또 붙어. 그땐 안 봐준다." 똥장군이 휴지로 막은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그래, 덤벼라." 나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노을이 지기 시작한 장수동 하늘이 똥장군의 코피처럼 붉게 물들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흙투성이 등을 털어주며 집으로 향했다. 내일은 또 무슨 일로 이 골목을 누비게 될까. 붉은 글러브의 가죽 냄새가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