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여름, 초록색 야생
장마가 물러간 자리에 무시무시한 놈이 찾아왔다. 바로 '땡볕'이었다. 장수동의 대지는 아침부터 이글거렸다. 마당에 물을 뿌려도 '치익-' 소리를 내며 금세 말라버렸고, 매미들은 더위에 미쳐버린 듯 악을 써댔다.
오늘은 초복이었다. "아, 덥다. 더워." 나와 똥장군은 종점 상회 평상 그늘에 늘어져 혀를 빼물고 있었다. 아이스크림도 소용없는 날씨였다.
그때였다. 셋째 삼촌이 땀을 뻘뻘 흘리며 밭에서 돌아왔다. 삼촌은 우리를 보더니 은밀하게 윙크를 했다. "조카들, 몸보신하러 가자."
삼촌의 등에는 커다란 쌀 포대가 지워져 있었는데, 안에서 뭔가 "구구구" 하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삼촌, 그거 뭐예요?" "쉿. 할아버지한테는 비밀이다. 더위 먹어서 비실거리는 놈 하나 데려왔다."
삼촌의 '비실거리는 놈'이라는 말은 믿거나 말거나였다. 포대 안의 녀석은 꽤나 힘차게 퍼덕거렸으니까. 우리는 공범이 된 기분으로 솥단지와 냄비를 챙겨 들고 삼촌을 따라나섰다.
목적지는 소래산 줄기에서 내려오는 깊은 계곡이었다. 숲 속으로 들어갈수록 공기가 서늘해졌다. 나무 그늘이 햇볕을 가려주었고, 바위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청량했다.
"자, 여기다." 삼촌은 넓은 바위 옆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익숙한 솜씨로 주변의 돌멩이를 모아 임시 아궁이를 만들었다.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불을 피우자, 매캐한 연기와 함께 솥단지의 물이 끓기 시작했다.
삼촌이 쌀 포대에서 꺼낸 건 토종 씨암탉이었다. (녀석의 최후는 우리의 동심을 위해 생략되었다. 삼촌은 저 멀리 숲 속에서 일을 처리하고 깨끗하게 손질된 고기를 가져왔다.)
"풍덩." 뽀얀 닭 한 마리가 끓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마늘 한 줌, 대파 몇 뿌리, 그리고 굵은소금. 들어간 건 별로 없었지만, 냄새는 기가 막혔다.
"익을 때까지 놀고 있어라."
우리는 옷을 입은 채로 계곡물에 뛰어들었다. "으악! 차가워!" 뼛속까지 시린 계곡물이 더위를 단번에 날려버렸다. 우리는 물장구를 치고, 잠수를 하고, 납작한 돌을 주워 물수제비 뜨기를 했다.
한참을 놀다 보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다 됐다! 와서 먹어라!"
바위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백숙이 차려져 있었다. 삼촌은 닭다리 하나를 뚝 뜯어 내 밥그릇에, 또 하나는 똥장군에게 주셨다. "자, 이거 먹고 여름 나는 거다."
소금을 살짝 찍어 입에 넣었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살코기. 씹을수록 고소한 육즙이 배어 나왔다. "와, 진짜 맛있다." "야, 국물도 마셔봐. 죽인다."
우리는 말도 없이 코를 박고 닭고기를 뜯었다. 입가에는 기름이 번들거렸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열치열(以熱治熱). 뜨거운 국물이 들어가니 오히려 속이 시원하게 풀리는 기분이었다.
"삼촌, 할아버지가 닭 없어진 거 알면 어떡해요?" 내가 닭 날개를 뜯으며 걱정스레 묻자, 삼촌이 씩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라. 족제비가 물어갔다고 하면 된다." "에이, 족제비가 솥단지까지 걸고 끓여 먹고 가요?" 똥장군의 말에 우리는 계곡이 떠나가라 웃음을 터뜨렸다.
배를 채운 우리는 바위 위에 대자로 누웠다. 나무 사이로 파란 하늘 조각이 보였다. 물소리, 매미 소리, 그리고 삼촌의 코 골며 낮잠 자는 소리.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장수동의 복날은 그렇게 뜨거운 국물과 차가운 계곡물 사이에서 노곤하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닭장에는 빈자리가 하나 생겼겠지만, 우리의 여름 기억 속에는 꽉 찬 포만감이 채워졌다.
* 이미지 출처 : Created by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