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8
조금 부끄럽지만, 조그마한 영화 동호회를 하고 있다. 1990년 영화 <시네마 천국>을 패러디한 <시네마 지옥>이라는 방송은 어느덧 2주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주 깜찍한 예명도 쓰고 있다.) 매주 금요일 밤 11시, 각자의 집에 자리를 잡고, 마이크를 켠 지도 어언 1년 반. 코로나도 무의미해진 지금, 매주 금요일은 일정을 묻는 질문들로 가득하다. 나의 대답은 언제나 “방송을 해야 한다”였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거 하니? 참 오래한다”라는 의문스러운 질문을 내뱉는다.
생각해보면 나조차도 참 의문스러운 일이다. 일체 끈기가 없어 엉성하게 세워놓은 계획마저 수시로 갈아엎고, 미루는 나란 인간이… 무려 1년 반 동안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 아주 칭찬할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재수 생활 1년도 학원에 묶여 있으니 할 수 있었지. 혼자 내버려뒀다면 분명 얼마 못 가 발을 멈추고, 방황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내가 1년이 넘는 시간동안 꾸준할 수 있었던 이유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매주 영화를 보고, 영화 감상을 기록해서 누군가에게 말하는, 황금 같은 금요일 밤 꾸준히 나의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영화와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도 분명 큰 이유이겠지만, 큰 결심이 필요하지 않은 ‘미약한 시작’이기 때문이 아닐까? <시네마 지옥>은 ‘한 번 해볼까?’라는 막연하고 소소한 발언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거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었다. 단지 영화가 좋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던 사람들이었을 뿐. 큰 욕심은 없었다. 1년 반이 넘는 시간동안 <시네마 지옥>을 찾는 고정 청취자는 고작 4명이다. 그 중 2명은 나의 친구이고, 나머지 2분은 다른 크루의 지인이다. 누군가는 ‘겨우 4명?’이라며 놀라겠지만, 우린 이 시간이 너무 즐겁다. 청취자를 모으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다면, 애초에 우린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설령 시작했다고 해도 얼마 못 가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겠지.
나는 아무런 짐도 꾸리지 않았기에 부담스럽지 않았고, 자유로웠기 때문에 오래 걸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시작’이라는 단어는 말로 쉽게 내뱉을 수 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는 것까지는 꽤나 큰 결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작’이 무거워질수록 걸음은 느려지고 지쳐 얼마 못 가 손을 놓아버리고 말 것이다. 누군가는 말하기 힘들 정도의 좌절감을 느끼겠지. 그러니 우리 조금 가볍게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늦여름 밤공기를 만끽하며 산책하는 것처럼, 옷과 신발만 챙겨 발걸음을 옮겨보자. 무언가를 이루고, 정해진 순서를 따르지 않아도 괜찮다. 발걸음에 따라 흘러가는 풍경을 만끽하다 보면 언젠가 원하는 곳에 닿아 있을지도.